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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민6:22-27) 이정식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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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과 저는 복이 항상 궁금하고 또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바라는 복이 행운권 추첨하듯이 우리에게 온다면 대중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복을 주시되 제비뽑기 식으로 주신다고 해도 예측할 수 없고 준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여러분과 제가 인생을 살다보면 도대체 복이라는 것이 어떻게 오고 누구에게 오는가생각해볼 때, 하나님 잘 섬긴다고 마냥 복이 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하나님 몰라도 복이 갈 사람에게는 복이 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똑똑하기 때문에 좀 미래를 알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미래를 점치기 위해 점집에 가기도 합니다. 예측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과 저도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라 점을 치러 갈 수는 없죠. 가끔 우리는 성탄절 저녁에 행운권 숫자를 거머쥐고 기다려봅니다. 어떤 사람은 추첨에서 당첨됩니다. 당첨된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어떤 분들은 끝까지 번호표를 쥐고 있어 봅니다. 큰 선물은 아니어도 기분이 좋을 거니까 말이죠. 하지만 자주 아무 일 없이 지나가고 맙니다. 우리들 중에도 그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평생 저런 거 당첨된 적이 없어하고 말이죠. 아쉽기도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나갈 때 우리는 어떤 원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아무나에게 행운권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정말 격려가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생각 말입니다. 한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 성탄축하행사에 나와서 행운권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저 사람에게 선불처럼 선물을 주시는구나 수긍이 됩니다. 내가 못 받아서 안타깝지만, 받을 사람에게 선물이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경험 때문에 자주 속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복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복은 합당한 사람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해볼 때 충분히 수긍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운이 좋은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라 그에 합당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622-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6장까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진영을 짰습니다. 유다와 두 지파를 동쪽에, 다른 세 지파를 남쪽에, 또 다른 세 지파를 서쪽에, 나머지 세 지파를 북쪽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앞으로 진행하게 하셨는데, 그 진영 한가운데는 제사장인 아론의 아들들과 레위 지파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진영이 부정하지 못하게 하시고, 나실인의 법을 두었습니다. 나실인은 어떤 기간을 두고 하나님 앞에 헌신한 사람을 말합니다. 6개월이든 1년이든 정해진 기간을 따라 서원대로 지켜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이 오늘 보게될 민수기 622절부터 27절까지입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예배의 법도를 세우시고, 제사장을 세우고 레위지파를 통해 성막을 섬기고 봉사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굳이 시간을 내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미 모든 목적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예배자들이 복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복을 주기 원하십니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6:24)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기를 워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6:25)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어떤 복을 주시나요?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6:26)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원하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기도하면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주시기를 기원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시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원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제사장의 기원 이전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바로 여러분과 저에게 평강과 은혜와 복과 보호하심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앞서 뭐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이 복은 합당한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7절에 말씀하기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6:27) 이 번역은 조금 의역이 되었습니다. 이 번역에 따르면 제사장이 축복하면 하나님이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원어 번역에 따르면 내 이름을 이스라엘 자손 위에 두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이스라엘 자손 위에 둘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이 말씀은 제사장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제사장도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삶 위에 둘 때 그의 축복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삶 위에 둘 때 하나님의 복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은 행운권 추첨처럼 운이 좋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합당한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겪은 우리의 경험은 도대체 복이 어떻게 오는지 모르겠고, 언제 오는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오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복을 받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주님을 신뢰한다고 하면 이제 마음에 결단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이 그 어떤 것보다 우리 위에 있기를 원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위에있다는 건 영어로 ‘on’인데 그건 위에 착 달라 붙어있다는 말이라고도 했습니다만, 그건 좀 과한 말이죠. 어쨌든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복이 되는 길입니다.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행운권 추첨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합당한 사람에게 가듯이, 하나님의 복은 더욱더 수긍이 가며 합당한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이제는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에 대해 예를 들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브온 족속의 예를 좀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들어갔습니다. 이미 모세가 요단 서쪽에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다 물리쳤습니다. 이후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넜고, 첫 성인 여리고 성을 기적처럼 무너뜨렸으며, 아이 성에서 실패를 맛보았지만 결국 무너뜨렸습니다. 이 사건을 들은 가나안 다섯 왕들은 두려워서 똘똘 뭉쳐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때 기브온 족속들은 계산을 해보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 났습니다. 신적인 도움을 받는 민족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신에게 곰팡이 핀 빵과 헤어진 옷을 입혀서 이스라엘 민족과 화친을 하러 보냈습니다. 행색을 보면 근처 이웃이 아니라 어디 먼 타국에서 온 것처럼 보이도록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속아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친구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짓말한 것이 들통이 났지만, 기브온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머리 위에 둘 줄 알았기 때문에 언약을 체결한 이상 같은 식구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기브온 민족의 배반을 알게 된 가나안 다섯 왕은 기브온을 치러 올라갔습니다. 그때 일어난 일이 태양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라! 달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하는 여호수아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종일 싸워 가나안 민족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아닌 기브온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머리 위에 두었기에 복을 입은 것입니다. 이방 민족도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니 복을 받은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 왕은 이스라엘을 위한 열심히 기브온 민족을 쳤습니다. 사울 왕이 죽고 난 후 다윗 시대가 되었을 때 세 해 동안이나 흉년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그 곡절을 물으니, 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 그 신탁을 들은 다윗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무엇으로 보상을 하여야, 주의 소유인 이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시겠소?" 기브온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울이나 그의 집안과 우리 사이의 갈등은 은이나 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사울은 우리를 학살한 사람입니다. 그의 자손 가운데서 남자 일곱 명을 우리에게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께서 택하신 왕 사울이 살던 기브아에서, 우리가 주 앞에서 그들을 나무에 매달겠습니다." 결국 사울 왕의 일곱 아들을 내주며 속죄하게 한 후에야 가뭄이 그쳤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살펴볼 대목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 왕은 하나님이 택하셨나요, 택하지 않으셨나요?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불순종하게 되었을 때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울 왕을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받을 복은 끝까지 사울에게 주셨습니다. 다윗은 끝까지 사울 왕을 지켰고, 사울 왕이 죽었을 때 7일 동안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일곱 아들을 내어줄 때에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요나단과 다윗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울 왕의 분복을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복을 받기 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울 왕도 그가 받을 분복을 받았습니다.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그 본심이 복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복은 합당하게 주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머리 위에 두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자기 분량을 따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분복은 정해져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분량을 따라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사는 삶에 따라 받을 복도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아십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은 시돈 사람이니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 와서 자기 딸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은 짐짓 매정하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7: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인이 물러가지 않고 말하기를,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한 행동은 자기 위에 주님의 이름을 둔 것입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그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복을 받은 것입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있었습니다.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니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전공을 많이 세워 최고 군사령관이 되었지만, 그 몸에 문둥병이 있었습니다. 병에서 나음을 얻으려고 얼마나 수소문을 많이 했을까요? 엘리사에가 찾아가게 되었는데, 요단강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만했던 나아만 장군이 그 말을 무시하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어느 여자 종의 간청을 듣게 되었고 마지못해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순종했더니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무엇을 했기에 복을 입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이름 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아만 장군을 칭찬하며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오직 나아만 한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돈 땅에 사르밧 과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시돈 땅은 두로 근방의 시리아 땅입니다. 역시 택한 백성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개처럼 여겨졌던 이방인입니다. 먹을 양식이 다 떨어져서 마지막 남은 떡과 기름을 먹고 아들과 함께 죽고자 했습니다. 그런 중에 엘리야가 가서 그것으로 나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사르밧 과부가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당신 주랴!’ 했습니까? 아닙니다. 먼저 엘리야를 공궤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삶 위에 둔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 떨어진 항아리에 곡식과 기름이 가득 차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역시 이 사르밧 과부도 칭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과부들이 많았지만, 시돈 땅 사르밧 과부 한 사람만이 복을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민수기 627절의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을 이스라엘 머리 위에 둘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 위에 공평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 머리 위에 두는 것은, 합당하게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자기 분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을 받으셨나요? 맞습니다. 대박 큰 복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 분명히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했을 때에도 우리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이름을 우리 삶 위에 두었을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런데 살다보니까 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생각이 되고, 또 살다보면 행운권에 또 마음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운이 좋으면 돈을 좀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러지 맙시다. 혹 그렇게 해서 큰 복을 얻는다고 해도 참된 복이 못되니 그런 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떤 복을 받아야 할까요? 수긍이 되는 복, 합당하게 여겨지는 복이야말로 복 받는 나에게도 복이 될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되는 복입니다. ‘저 분이 언제 복을 받을까 궁금하더니 이제야 복을 받는구나!’ 하고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박을 꿈꾸십니까? , 대박을 꿈꾸십시오. 그렇지만 대박을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그것을 받는 유일한 조건, 하나님의 이름을 그 무엇보다 우리 위에 둘 때 주님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십니다.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받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고도 평강을 주시는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얼마나 확실합니까?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 확실한 복을 주셨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에게도 분명한 복을 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도 확실한 복을 주셨습니다. 기브온 족속에게 하나님의 확실한 복을 주셨습니다.

   실천적으로 몇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예배를 습관적으로 드립시다. 예배 하나 못 드리는데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대박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가지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항상 똑같은 권면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 배우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이 복 되기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떳떳합니다. 하나님 앞에 당당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에도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위에 두기를 작정하지 않았습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 내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원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약속하신 대로 복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가 좀 잘못된 길로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제사장의 기도처럼 목사의 기도를 받으면 잘 될 것이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축복이 복의 통로가 아니라, 그 목사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첫 자리에 두는 목사의 축복이 주님 앞에 상달이 됩니다. 또한 목사가 비는 복이 참될지라도 그것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첫 자리에 두지 않으면 그 복은 그 사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원리입니다. 제사장도 주님의 이름을 첫 자리에 두고, 기도를 받는 사람도 주님의 이름을 첫 자리에 둘 때 주님의 복이 우리 모두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은 우리의 분량을 따라 주십니다. 더 많이 복되기 원하는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주십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복을 원하신다면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누가 봐도 합당하며 수긍이 가는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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