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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선택의 갈림길에서 들어야 할 깃발(레위기 26장) 이정식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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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미 중요한 선택을 많이 해왔습니다. 또한 지금 목전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싸르트르라는 사람은 선택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선택에는 역설적인 상황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 청년이 국가를 구하는 전쟁에 나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애국 청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에게 봉양해야 할 노모를 있는 것입니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돌볼 수 없는 어머니입니다. 갈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국청년이 될 것인가 어머니를 봉양할 것인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뜻이 좋지만 그 전쟁에서 살지 죽을지 알지 못합니다. 국가를 구하게 될지 국가를 잃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명분은 확실하지만 추상적인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노모를 부양하는 것은 구체적인 선택이며, 그 선택의 결과가 매일매일 확실한 것입니다.

   추상적인 선택과 구체적인 선택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런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모든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도 많은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라는 사람은 선택은 고르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선택이란 좋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선택한 것만 남게 되는 것이죠. 그게 최선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 26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 약속된 축복이 기록되어 있고, 14절부터 46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약속된 징계와 저주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약속된 축복을 얻는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레위기 2614절 이후에 있는 것처럼 망하는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성공하더라도 더 깊이 패망하게 되는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지켰을 때 받게 되는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26:3-4) 이번에 비가 왔습니다.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멘입니다. 이어서 5절에 보면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26:5) 포도를 따고 또 따도 딸 것이 남아 있는 풍성한 열매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반절에 보면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라고 하시면서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약속까지 하고 계십니다. 6절에는 더욱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의 수고와 땀으로 얻은 것이 아닌, 갑작스럽게 돈을 갖게 되면 두려움이 온다고 합니다. 이 돈이 언제 사라질 것인지, 누가 그 돈을 빼앗으려고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지만 전쟁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7-8절에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26:7-8)라고 했습니다. 일반 역사 속에서도 숫적 열세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을 승리한 경우가 있습니다.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스파르타 군 300명이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끝까지 버티며 장렬한 최후를 맞은 사실이 있습니다. 영화 300을 통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불멸의 영웅 이순신 장군도 소인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하는 말을 하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세상도 이런 보호하심을 입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약속을 주고 계십니다.

   9절 보니까,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주님의 응답이 빨리 오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분들이 계시겠지만, 주님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돌볼 것이다. 내가 너희를 번성하게 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11-12절에 이 모든 약속을 확증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26:11-12) 여러분과 나의 중심 속에 하나님께서 안전히 거하시고, 그분이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 모든 삶을 주관하고 다스리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교회 위에 하나님의 보좌가 굳건히 서서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하반절에는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비뚤비뚤 절름발이처럼 걷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서서 걷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약속이 참 좋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를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웬걸요? 14절부터 46절까지 길게 나와 있는 저주에 관한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향할 모든 축복은 적에게로 가고, 적들에게 향할 진노의 일곱 배나 이스라엘에게 향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 긴 말씀의 요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쪽을 택해서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14절부터 주신 말씀을 선택한 것처럼 행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어두운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들어야 할 깃발입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들의 직접적인 관심사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 너무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레위기서에서 하신 말씀을 예배를 바로 드리고, 부정한 예물을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도 자기 스스로를 속죄하고 혹시 부정한 것을 만졌다면 스스로 씻어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예배에 관한 말씀을 하고 난 후 삶에 관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웃과 화해해야 할 일이 있거든 먼저 가서 화목하고 난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한 예로, 기업 활동에서는 이윤을 추구합니다. 지불해야할 비용, 투자해야할 인력,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장소, 그 일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공평한 저울을 사용해야 하고, 남을 억울하게 하는 일을 하지 말며,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를 선대하는 등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 이윤을 추구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차라리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내가 하기로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밤잠을 잘 자지 못하면서 고민하고 준비한 일에 올인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내 모든 마음의 열정이 이 일에 다 들어가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대로 내 삶에 집중해야할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선택과 집중도 우리가 알고, 정말 헌신적으로 그 일에 매진하지 않으면 그 일이 만족할 만큼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은 압니다. 내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일이 굳이 외면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 드리는 습관을 드리는 것, 그것이 왜 어려워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것, 그것이 왜 내 삶의 이유 때문에 뒤로 미루어야 할까요? 왜 꼭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야 하나요? 막상 해보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주님을 찾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시간에 쫓겨 살며 상황에 몰려가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관심도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을 알아야겠다는 데 대해서도 마음이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요? 레위기 266절을 보시면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에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있으면 두려움과 염려를 몰아내준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이 좋은 약속을 멀리하고 내 일에만 집착하다 보면 몰아내 준다고 하신 그 두려움과 염려가 나의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서, 해소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내가 선택한 불안, 내가 선택한 일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야 할 시간만 많아질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언약의 말씀은 우리 피부에 와닿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와 열매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날 고민하며 힘겹게 밤잠을 설쳐가면서 고민하며 내린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정 이후에 더욱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기회를 선택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설령 오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유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설령 실패하게 된다고 하여도 그 일이 내게 양분이 되고 축복이 되지 그 실패로 내 인생의 고민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심도 때가 차서 오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작정하실 때에도 올라가기로 되어 있으니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951절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고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달리사 피흘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의 주님이 되시는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8, 12, 서른 살 청년이 되기까지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할 때에는 결심을 하시고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로 볼 때 우리가 선택하고, 선택한 그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정말 시간이 필요하고 헌신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내와 남편을 선택했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꼭 내 아내를 선택해야 했습니까 꼭 내 남편을 선택해야 했을까요? , 그래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꼭 그래야만 할 이유란 없습니다. 선택에 대한 100% 확실한 근거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까?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가 결혼을 위해서 적어가는 확실한 조건이나 목록이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꼭 이 사람이 내 사람입니까?’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떤 결심을 해서 그 결심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심한 후에는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결혼을 허락하셨다 믿고 두 사람이 함께 믿음 생활을 해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송포성서침례교회를 택하셨나요? 택하지 않으신 분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 교회로 오게 되기도 했겠죠. 여하튼 우리는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선택했습니다. 선택했기 때문에 이 교회가 가진 모든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 있는 태도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를 선택하긴 했지만 다 선택한 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요즈음 시대는 유튜브를 통해서 다른 교회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의 대표도 아니고 전부도 아니니, 다른 많은 분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하시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교회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십시오. 한 발 물러서서 교회생활을 한다면 이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의 뼈는 관절로 결합되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듯이, 함께 결합되어 있어야 축복과 은혜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같이 고생도 하고 같이 고민도 하는 것입니다. 관절이 늘어져 있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선택한 것입니다. 담임목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선택했기 때문에 책임감 있는 태도로 서로에게 요구할 수도 있고, 때로 다툴 수도 있고, 책임감 있게 서로를 만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습니다. 서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선택한 것처럼 책임감 있게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선택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된 축복이 나의 것이 되어야겠다는 사모함마저 옅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도 선택할 수 있고, 담임목사도 선택할 수 있고, 아내도 선택할 수 있고, 남편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공정하거나 불공평하지 않게 야곱을 내가 선택했다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많은 민족이 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선택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을 때 나는 하나님이다, 내가 옹기장이다.”라고 말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곧 이 말은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선택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을 택할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 앞에 서면 우리에게 한 가지 기도제목이 나옵니다. ‘하나님,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믿어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죠? 큰 믿음입니다.

   요즈음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선수의 길을 가다가 프로선수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프로선수가 되었어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큼의 선수가 된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매일 달리기 등 기초 운동을 반복합니다. 기초 운동 소홀히 하면 실력이 더 늘 수 없습니다. 식단 조절도 해야합니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해서 프로선수가 되었는데도, 아직 아닙니다. 요즈음 SNS에서는 근본없는 선수라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프로선수인데 왜 근본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실력은 인정받아 주목받으며 리포터의 인터뷰까지 하는 선수지만 그때부터 삐딱선을 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유혹이 있는데 첫 번째 유혹은 겉멋이 드는 것입니다. 외모를 꾸미고 보이는 것을 의식하다 보면 오래 못간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돈에 환장하는 것입니다. 한 구단에 소속된 선수에게 다른 구단에서 더 많은 스타우트 비용을 투자해서 데려가겠다고 하면 갈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돈에 눈 뜨게 되면 폼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혹은 여자친구입니다. 미모의 모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최고의 스타선수들이 많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좋지 않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선수의 근본을 지켜나가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유혹을 이길 준비가 되지 않은 선수, 장기적 관점에서 선수의 능력치 발휘에 있어서는 멘탈이 중요하며 그 멘탈을 어느 정도 보장해줄 수 있는 힘이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촉망받던 선수들이 지금 보통선수가 되고만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일 반복하는 훈련으로 기초체력을 끌어올리고 식단을 절제하는 것은 선수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운동실력을 계속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자기 마음에 웬만한 유혹에는 이끌리지 않을 중심을 준비하는 것은 딱히 상관이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더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드러나는 것이 근본입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근본을 준비하는 것이 실제로는 아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레위기 26장을 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선택한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온 마음이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주님 안에서 영적인 성장의 일을 중단한다면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제가 선택한 일이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이후로부터는 내가 선택하고 집중하는 간절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더 알아가고자 하는 일을 멀리 하지 마십시오. 그런 태도를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혹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베토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작곡을 열심히 했습니다. 운명교향곡이라든지 합창교향곡이라든지 하는 곡들은 귀가 들리지 않을 때 작곡된 곡들이고 유명한 곡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이 되어 작곡하는 곡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곡들이었습니다. 푸가 135장에 있다고 하는 음악을 들어보니까 저도 처음 듣는 음악이었습니다. 인생의 연륜이 들어갈수록 남들 눈에 확 띄는 그런 일을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런 유명세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내 마음 속에 작곡하기 원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마지막에 작곡했다는 푸가 135장 악보에는 이런 글이 씌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할까?’(Muss Es sein?) 영어로는 Must it be?입니다. 음악적으로 해석하면 이 음 다음에 꼭 이 리듬이 나와야할까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 영어로는 It must be!입니다. 누구에게 주목받거나 못 받거나 간에 이 음 다음에는 이런 리듬이 와야만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야만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합니까? 내가 선택한 일에 집중해서 살아야 하는데도 예배를 지켜야 합니까? 없는 시간 쪼개어서 꼭 그래야만 합니까? 물읍시다. 그때 레위기 26장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래야만 한다! 나는 정말 주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선택한 일에 주님 약속하신 축복을 누려야겠다고 결론 내리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을 위해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주님처럼, ‘그래야만 할까?’ ‘그래야만 한다!’고 굳게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레위기 261-14절에 있는 말씀으로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얼마나 절절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는가 보겠습니다. 레위기 2611-12절에 보시면,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3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21:3) 계시록에서 주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지으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말씀이 구약말씀이니 너무 오래된 말씀인가요? 잊어도 되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먼 장래에 이루실 일에 관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성막이 성전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영원토록 레위기 말씀대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교회 위에 하나님이 좌정하시기 원하십니다. 온 교회 위에 온 땅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짧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면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확신하지 못한다면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맙시다.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되기를 사모합니다. 나를 돕기 원하시는 주님, 내가 선택하고 집중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성도가 마땅히 들어야 할 깃발입니다.

   하다못해 미용실에 가서 이발하러 가더라도 미용 기술만 좋다고 계속 가지 않습니다. 손님인 우리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가 손님을 대하는 태도, 손님에게 던지는 이야기나 말과 표정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사람됨을 다 봅니다. 세상 어떤 곳에도 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전인격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총체적이며 전인격적으로 우리를 가장 잘 인도하실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내 일이 급해도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고자 하는 일을 힘 있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굳게 서서 똑바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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