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2020년, 이 별난 해를 사는 법(요엘2:14-32) | 이정식 | 2020-05-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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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에서 최근에 광고를 이렇게 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세상에서도 진정 소중한 것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은 건 뭐냐고 보니 ‘가정의 즐거움, 자녀에 대한 사랑,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놀이의 즐거움, 영상으로 공부하는 것이지만 학습, 생일 축하와 같은 축하하는 것’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기업이 “우리가 모두의 일상을 응원합니다.”하면서 광고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가지 않고 만나지 않고 했지만, 또 할 일은 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배하려고 애썼고, 현장에 나오지 못할 때에는 영상예배를 드리려고 했고, 영상예배도 못하는 경우에는 가정예배나 성경말씀을 묵상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전염병이라는 이 일을 만나서 삶의 많은 부분들이 통제되었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중단됨이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우리가 왜 예배를 드렸을까요? 물론 습관적으로 예배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예배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2주간 외에는 예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일을 자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심으시기도 하시지만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주시지만, 때로는 전쟁을 주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파괴하기도 하시고 회복하기도 하십니다. 올해와 같은 이 일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실 때에는 어떤 일이 닥치게 하십니다. 원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큰 일이 닥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을 알아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만 이런 일을 임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시고, 평화를 주시고 전쟁도 주시며, 파괴도 하시고 회복도 주십니다. 요엘서 바로 이런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엘서를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인 남유다 예루살렘을 멸망케 하시기 전에 메뚜기 떼를 통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축복은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파괴시키신다는 것은 쉽게 연결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구약에 여러 번 반복적으로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파괴시키시고 황폐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목적은 파괴에 있지 않았습니다. 황폐함도 목적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게 하기 위한 회복에 있었습니다. 요엘 2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고 하셨는데 다른 번역에 보면 ‘중심이 뜨거우시다’, 또는 ‘극진히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일을 베푸시면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이 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들게 하실 때 어느 정도로 심하게 하시는가 하면, 그해 농사를 지어 수확할 나무들 곧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각종 실과가 자라 열매를 맺으려 할 때에 메뚜기 떼 한 떼를 보내어 먹어버리고, 곧바로 이어서 두 번째 메뚜기 떼를 보내어 갉아버리고, 또 이어서 세 번째 메뚜기 떼를 보내어 쑥대밭을 만들고, 또 다시 네 번째 메뚜기 떼를 보내어 모든 농작물을 초토화시켜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끔 동물의 세계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채널을 보면 아프리카의 개미떼도 엄청나게 무서운 곤충임을 볼 수 있습니다. 개미떼가 지나가는 자리에 남아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메뚜기 떼는 그보다 더욱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나라에도 남도 지방에 메뚜기 떼가 출몰한 영상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어가는 들녘에 수 천 수 만 마리 메뚜기 떼가 농로에 수북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장난에 불과합니다. 최근 10년 내에 지구상에 가장 큰 재앙들을 순서대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메뚜기 떼 재앙이 순위에 올라있습니다.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4천억 마리의 메뚜기 떼가 이동 중에 있다고 합니다. 메뚜기 떼가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묘사하기를 해와 달, 별이 빛을 잃어버린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빛이 통과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통과할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수가 하늘을 뒤덮었다는 말입니다. 아프리카 사막 지대에서 시작된 메뚜기 떼가 중동을 지나 중국과 한국까지 사정권에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메뚜기 떼가 나와서 무화과나무를 갉아먹기를 잎과 과실만이 아니라 나무껍질까지 하얗게 벗겨버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이런 가공할 재앙을 내리는 이유가 파괴 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진정한 마음으로 돌아오라는 데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번 봄이나 가을에 날아와서 황폐케 하면 그 해에 먹을 양식은 없겠지만,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있듯이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선조들이 그랬듯이 풀뿌리 캐먹고 송진 벗겨 먹고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엘서에서는 메뚜기 떼 재앙 이후에 다시 기근을 보냈습니다. 요엘서 1장 17절에 보면 내년을 위해 남겨둔 곳간의 씨앗이 그 곳간 안에서 썩어버린다고 했습니다. 내년이 되어도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내 후년에는 소망이 있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몇 해 동안 그와 같은 일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올 가을에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있을 수 있다고 몇몇 학자들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를 포함하여 전염병과 이상기온 등으로 수확량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질투하시기까지 사모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산다는 것,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는 것을 얼마나 열렬히 원하시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가운데서 저는 크게 감동이 되고 축복이 되었습니다. 소상공인들을 비롯하여 여러 어려운 형편에서 계시는 분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높이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말씀 안에 묵상해 볼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움직이는 모습을 높이고 계십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대한민국으로 대표될 아시아적 가치가 앞으로 전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선도적인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주목할 곳이 못되면, 일본은 신사를 섬기면서 온갖 신들을 섬기고 있고 경제적인 저력이 충분하지만 세계를 선도할 가치를 이끌기에는 언론이나 민주적 절차가 불투명합니다. 오직 대한민국에 대해서만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19와 싸울 의료진들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전국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원해서 몰려갔습니다. 우리가 ‘대구’ 하면서 좀 비난할 때 그들은 돕기 위해서 자원했습니다. 도시락 업체들은 밥과 간식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을 당할 때 이렇게 섬기는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시대까지 올라가면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한국전쟁 때에도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던 민간인들이 그랬고, IMF때도 금모으기 운동을 해서 간직해두던 귀중한 금을 내놓았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여겼고, 또 개인의 삶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재난당할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몰려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국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다가 재난을 만나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그렇게 나타나는 겁니까. 태안반도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역한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돌 하나하나 일일이 닦아가면서 정상화시켰습니다. 그때도 세계 언론이 주목했었습니다. 한두 건이 아닙니다. 이번에 코로나19가로 어려움이 왔을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도움과 봉사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모든 것이 멈춘 세상에서도 진정 소중한 것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라는 광고처럼, 2주간의 영상예배 후에는 정부가 정해준 지침을 지켜가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나가지 말라고 하면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수칙을 지켰고 정부의 지도를 따라 순종했습니다. 결국 전 세계 어떤 국가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고, 확진자 그래프는 평평하게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팩트풀니스>라는 책으로 세미나를 할 때 아시아적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모님을 섬기며 가부장적인 사회문화는 시대가 흘러갈수록 사라질 것이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이미 부모님 곁을 떠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제사문화도 최근 2-3년 사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묘소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돌볼 후손이 없으니 묘소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시아적 가치는 앞으로 유럽과 서구사회를 쫓아가면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한가운데서 코로나19가 닥쳐서 아시아적 가치가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부친들 가운데 감기 기운이 있거나 어지러움증이 있을 때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오지 말라고 합니다. 두 달 이상 집안에 갇혀 지내는데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 누가 그분을 돌볼 수 있습니까? 우리 부모님들을 누가 돌봅니까? 가장 가까운 자녀들이 돌보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돌보기 원했습니다. 몇몇 성도님들이 떡과 과일로 섬겨주시고 집사님들이 운행해주셔서 일주일에 한 번 간식도 전해드리며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강력한 재난이 닥칠 때에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밝혀지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가치야말로 소중한 가치구나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과 이후 섬김의 방식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또한 세상은 돈이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경제적인 소득 곧 수입이야말로 그 사람의 인생의 행복과 문화적인 삶을 누리고 이 땅에서의 대부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믿어왔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폭탄처럼 우리에게 던져주십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제가 최고라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있다고 전염병 걸리지 않느냐 아닙니다. 철옹성 같은 요새를 만들어서 숨거나 도망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은 부자나 권력자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총리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습니다. 돈과 권력은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서는 순간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모든 대처수단이 아무런 쓸모없이 땅에 떨어지도록 하십니다. 먼저는 자연재해를 사용하십니다. 앞에서 소개해드렸듯이 최근 10년 동안 지구상에 일어난 10가지 재앙을 보시면 쓰나미, 허리케인, 지진, 홍수와 화재 등이 가공할 만합니다. 이들 앞에 사람의 수단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맙니다. 그 다음 두 번째가 기근입니다. 곡식을 씨앗부터 썩어지게 만든다면 우리는 어떤 방편도 없습니다. 우리는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드릴 경황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3년 동안 포위공격 당했을 때 아이를 삶아먹는 비참한 일이 있었습니다. 리고 또 하나 하나님의 방법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입니다. 이 세 가지는 말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장치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일이 어떤 이유 어떤 잘못 때문에 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오직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원인분석이 아니라 이 일이 닥쳤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도 갑자기 닥치게 하시지만, 심한 재앙도 갑자기 들이닥치게 하셔서 우리로 생각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수고하면서 발을 동동거리면서 살며, 좀더 안정된 삶을 위해서 살아온 세월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일부를 뚝 떼어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참된 것인지를 아는 데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다음과 같이 종종 안일한 고백을 많이 해왔습니다. ‘인간들의 문제는 사람 속에 있는 깊은 문제다. 영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 자체가 문제다.’ 우리가 인간의 마음이 문제라고 말하는 순간 해결책은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정신 차리게 하십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깊은 문제이면서 영적인 문제이고 사람의 마음 자체가 문제이지만, 하나님은 홀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God alone can change).” 여러분, 하나님은 홀로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돕지 않아도 하나님은 온 땅을 변화시키시고 운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마음의 부패를 하나님께서는 가만두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기를 꺼리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일이 행해지기까지 주님은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우리의 안일한 판단과 행위를 보고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런 인생이 있다면 그는 슬픈 인생입니다. 선을 베풀지 못하는 인생, 사랑할 수 없는 인생은 슬픈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살라고 낳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런 슬픈 인생으로 살라고 하나님 형상대로 짓지 않았다고 깨우쳐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왜 이런 어려움을 반복해서 당하는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축복의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파괴하시고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게 만들고 죽게 만드시나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축복의 하나님이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축복하시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을 세워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의 모양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축복을 향한 일념은 있지만, 긍휼한 이웃에 대해 생각하고 돌보며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축복은 우리의 것이고 이방인들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갈라세웠습니다. 자기들만 복을 입을 것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해결은 명확했습니다. 메뚜기 떼를 보내어 황폐하게 만들고, 곳간의 씨앗은 썩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게 하시기 원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나에게 돌아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섬김을 받아 이웃들을 섬기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 세상 만민을 화목케 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맡긴 것입니다. 교회에게 하나님과 세상을 중보하며 화목케 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교회도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생각입니다. 한국교회가 50년 100년 동안 흥왕한 후에 90년 이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할 때, 교회만 세웠습니다. 교회와 교회, 성도와 성도 끼리만 축복 안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축복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추구는 하나님의 중심에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잘못 갈 때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게 하시고, 교회의 부패상을 세상에 들추어내시고, 맛을 잃은 소금은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하시고 그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왜요? 교회가 미워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교회를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일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한데, 첫 번째는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사실로 감사합니다. 세상이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무정하게 대하는 소식을 아무리 많이 전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것이며, 자녀는 부모를 순종하고 존경하라는 하십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은 이런 말씀이 가부장적인 사회 안에서 쓰여진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은 안돼,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거야’ 하면서 비방하며 비난하는 데 익숙한 일을 많이 봅니다. 하나님도 이런 일에 동의하실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세태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너무 부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범죄와 나쁜 소식이 가득한 세상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세상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징계를 사용하든 어떤 재앙을 사용하든지 간에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가족의 가치가 변했다고 하지만, 가족만큼 소중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대형교회의 큰 섬김도 좋지만,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작은 교회들의 섬김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어렵게 한다고 한참 문제가 되었는데, 이번에 코로나19로 골목상점에 줄을 길게 서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위험하니까 말입니다. 한 푼 두 푼 모아봐야 얼마 되겠는가 생각해왔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가치, 좀 더 작은 공동체의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19로 많이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과 저는 기뻐할 수 있기 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세상에 밀려, 세상 가치에 밀려서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올바로 사는 것인가’하며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했던 우리에게 “나는 처음부터 동일한 말씀으로 통치해온 하나님이다”라고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심하게 대하셨던 하나님께서 요엘서 2장 21절부터 축복과 회복을 선포해주십니다.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2:21-27)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모든 육체가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28-32) 뉴스에서 시민들에게 재난기본소득을 나누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각 시마다 정책이 다른데, 안산 어딘가에서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재난기본소득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속이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속이 뒤집힐 일이 아닙니다. 잘한다고 해야 옳습니다. ‘에이 목사님, 그래봐야 경제가 힘들어지면 외국인들, 노약자, 어린이들, 여자들이 다시 곤란해지는 게 이치 아닙니까.’ 아마도 그렇게 되기 쉽겠죠.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어떻게 세상에 빛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살펴야 합니다. 코로나19를 통해서 충분히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해관계를 잘 따지는 법도 배우십시오. 그렇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경험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결론에 우리 마음 중심을 내어주지 마십시오. 주님은 말씀이 보여주시는 대로 우리를 돌이키시고 다시 건져내시고 불러내셔서 말씀을 순종케 하실 것입니다. 그런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때로는 세상에 능멸도 받게 하십니다. 기쁘게 받읍시다. 잠깐 경고처럼 왔다 가는 전염병을 축복으로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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