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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선한 일에 지혜로운 성도들(롬 16장) 이정식 201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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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 이성재씨는 태어나서 30년 동안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해서 아는 수준은 4-5세 수준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일산의 한 대형교회를 다니면서 연기에 충실하고 있었는데, '마음의 기쁨과 평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어느 날 영성훈련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소위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옥수동에 3-4명 나오는 개척교회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말씀훈련과 기도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배우이지만 주일예배,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를 다 참여하였습니다. 시련이 와서 전원주택을 팔아야 했을 때는 일주일 동안 그 집을 돌면서 여리고 기도를 한 후 팔리기도 전에 감사헌금을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전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택시를 타면 그 안에서 전도를 하면서 한 달에 30명을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그는 "연기는 아르바이트고, 세계선교는 본업이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신앙생활에 꼭 있어야 할 네 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그 결과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는 것이고, 넷째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했던 성도들은 모두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여성 사역자였습니다. 로마서를 뵈뵈의 손에 들려서 로마교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겐그레아 교회 여러 성도들과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는 보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뵈뵈에게 있었습니다. 돈으로 필요를 공급하고 또한 교회 성도들을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 중등부 학생들을 돕고 있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글씨가 그림인지 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정자로 또박또박 써 오면 1만원씩 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글씨가 제법입니다. 학생부에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섬기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섬김이 영혼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그 일 이전에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또 사랑에서부터 나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4)고 칭찬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학자였던 아볼로가 예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예배가 끝난 후에 그 아볼로를 가만히 집으로 초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전해주었고, 이 부부의 말에 감동을 받은 아볼로는 더욱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초대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는 정도였습니다. 자기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삶의 변화도 얻지 못하고, 결국 마음의 기쁨과 평화도 없는 채로 교회를 다닙니다. 그렇게 평생을 보낸다고 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험해야겠다'하고 결단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엉뚱한 신앙생활만 계속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기 집에서 가정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만 도운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 가정교회를 세워서 사람들을 말씀으로 도왔습니다.

  에배네도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를 말하면서 "내가 사랑하는"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사랑하는'이라는 말은 어떻게 나올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삶 속에서 확실히 드러날 때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이 우선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예배와 영혼을 돕고 세우는 일이 가장 먼저가 되는 사람입니다. 에배네도는 사도 바울의 첫정이었기 때문에도 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처음 익은 열매니라"(롬16:5b). 사역은 항상 열매로 평가받습니다. 장래에 미리 될 열매를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자라가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종의 마음이 격려받습니다. 그가 첫 열매였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말씀이 자라고 삶 속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버시가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롬16:6)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롬16:12b) 사람입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많이 수고했습니다. 어떤 수고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성도들이 보기에 그는 교회가 세워지도록 '많이 수고했'습니다. 힘에 부치도록 수고했습니다. 어떻게 이 바쁜 세상에 그럴 수 있습니까? 교회가 그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연기는 알바요 세계선교가 내 본업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있습니다. 부부일 수도 있습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두 사람입니다.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까지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말씀이 따라나옵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롬16:7b). 사도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입니다. 또한 이들은 사도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는 열두 제자 말고 모든 사도들이 나옵니다. 주석자들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바나바나 실바를 포함한 더 넓은 사도에 속한다고 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얼굴로 만날 수는 없으나, 우리 죄를 깨달으면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세상 영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소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로 죽으시고 다시 살으셨듯이, 나도 복음을 위해 감옥에 들어가도 좋다는 믿음입니다.

  암블리아와 우르바노, 스다구가 나옵니다. "내 사랑하는""우리의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노예 신분에 해당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노예인데 바울의 사랑하는 동역자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교회는 사회적 신분의 차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 것이 상관되면 복음을 흐리게 만듭니다.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올름바(롬16:14-15) 등도 모두 노예나 평민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별도의 교회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주에 교회 마당에 앉아 있을 때 길에 외국인노동자들 셋이 지나갔습니다. 최근 들어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인도의 라자가 왔었지만 추방되어서 교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누가 들어와야 할까요? 좀 유력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면 교회 형편이 좋아지겠지요? 아닙니다. 형편은 좋아져도 교회는 분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갑니다. 신실함은 아무 신분도 아무 스펙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신실함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 삶 속에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 복종된 사람에게서만 나옵니다.

  아벨레가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롬16:10a) 사람입니다. 인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헨드릭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인정을 받은 자란, 최고의 재판관에 의해 철저한 심사를 받은 후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며 칭찬하신다는 것을 아는, 만족스러움을 가진 자이다"(헤드릭슨 <로마서 하>(아가페) p.295). 철저한 심사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시련을 겪었다는 말입니다.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부터 해결하고 난 다음에 당신을 따르겠습니다'고 말하지만, 이 사람은 그 터널 한 가운데를 걸어가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예배에 본을 보이며,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섬길 것을 찾아 섬기는 사람입니다. 지금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좋은 것을 줄줄 알았더니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하지만 스스로에게 선언하십시오. '내가 어떤 형편이든, 내 하나님과 사람들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이다.' 아무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벨레는 인정받았습니다.

  루포와 그의 어머니도 바울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을 칭찬한 후에 바울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으리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그러면서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을 말합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16:19b).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섬기되,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섬기며, 많이 섬기며, 다른 사람들의 보호자가 되며, 사도들 중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되며, 인정받는 자가 되는가? 선한 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선한 일 곧 복음과 교회를 세우는 일에 민첩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발빠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어리석게 대하는 사람입니다. 모른 척하는 사람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면서 또 저물어가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성도 사랑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에는 게으르고, 세상을 배우는 일에만 발빠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가 어찌 구원받았다고 하겠으며, 첫 순종 때와 같이 믿음이 여전히 순전하다 말하겠으며, 깐깐한 사람들에게라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만남 후에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30년 신앙생활을 했다고 다 안다고 여기지 맙시다. 이성재는 자기가 주님을 찾기 전에는 30년 동안이었어도 아무것도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니 내가 다시는 이런 믿음으로 살지 않겠다'고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 마땅히 우리의 삶은 전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제가 꿈꾸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평신도가 아닙니다. 성도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의 복음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절반 이상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 이런 성도들을 향해 바울이 축복하기를,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나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다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16:25-27)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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