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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성령의 권능으로 넘치는 소망(롬 15장) 이정식 201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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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들이닥친 메르스같이 목숨을 위협하는 사태를 만나면 어떤 소망을 품을 수 있을까요?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소망은  '잘 될꺼라'는 '무사할 꺼라'는 희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망은 성령의 능력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 주머니가 따로 있다면 거기서 꺼내 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우리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예전에 시골집에서는 은행이 아니라 장판 한 귀퉁이에 소망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몫돈을 숨겨두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꺼내보지 않는 것이지만 중요한 일이 생기면 부모님은 어김없이 거기에 손을 넣습니다. 웬만한 일이 우리를 성가시게 해도 끄떡없는 이유는 소망 주머니가 따로 있기 때문이죠.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성령의 능력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이고 성령의 능력에 따라 소망이 넘치는 사람이 사는 법이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1-2).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낫다고 하든지, 유대인들이 이방인보다 낫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받은 사람들이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누구든 믿음의 뿌리에서 진액을 받아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더 낫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 못지 않게 우리가 하는 일이 귀하고 존경할 만하다고 스스로 높일 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사람을 낮추고 자기를 높이는 데 쓰이면 교만이 됩니다. 그것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이웃을 기쁘게 하며 살아갑니다. 첫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15:3).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신 그 신분을 자랑하시지 않고, 오직 자기를 낮추어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칭송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기 위해 도리어 비방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이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신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들을 위로하신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롬15:4). 노아 당시에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지면을 쓸어버릴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지만, 노아와 그 식구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자기를 위해 살던 40년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40년 동안 고난 받았지만,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복을 얻으며 120세까지 쓰임을 받았습니다. 열 정탐꾼은 눈에 보이는 대로 바라보다 멸망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며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광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하나님을 원망하다 죽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처럼 붙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죄악 중에 있어도 하나님은 인내하셨고 하나님을 바라보는사람에게는 위로를 주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 그 사람들에게 임한 위로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패역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끊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인내와 위로입니다.

  평생 악착같이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인생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2013년에 한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밥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베풀고 떠나려고 해. 일제시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이 남지만 그래도 이북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삶이었지." 고철을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온 참전용사 최귀옥 옹은 그동안 모아온 900여 만원을 사후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한 사람은 인간성회복운동 관계자였습니다. "나 자신도 어릴 때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런지 수십 년 전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들을 위해 쓰고 싶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만 사는 것은 인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성경의 모든 기록을 보며 배우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그를 향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은 성경 퀴즈 잘 맞히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웃을 기쁘게 할 때 인내와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하십니다. 죄악 중에 넘어지는 인생이어도, 자꾸만 실패하는 인생이어도 하나님의 인내는 그를 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헌장이 있다면 로마서 15장 5-7절입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15:5-7).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그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 할례의 사도가 되셨고, 이방인들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위해 그들의 사도가 또한 되셨습니다(롬15:8-9참조). 그러므로 이새의 뿌리 곧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만 위함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백성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롬15:12).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말은 우리 삶이 180도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던 삶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에는 두 가지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오해와 비방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랬듯이 우리도 그렇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간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롬15:18-19a). 내가 이룬 업적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간증으로 말하게 하십니다. 이 복음은 가까운 이웃을 향해 있지만 더 확실하게는 세계 만민을 향해 주신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고 썼습니다. 그 일을 하는 데 내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매도 맞지만 하나님께 돌아온 간증으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우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만 가시라"고 팔로 떠밀려 나기도 하지만 예수님을 믿겠다고 순종하는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복음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의 소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1만 7천 km에 달하는 거리를 복음 전하기 위해 다녔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방인이었던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던 성도들이 유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헌금을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믿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유대 땅에서 시작하여 터키를 지나 그리스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알바니아 땅인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 소식을 듣고 저들에게 헌금을 요청했습니다. 흔쾌히 응답했습니다. 그 물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전해주고 다시 더 멀리 있는 이탈리아 반도 로마에 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가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롬15:22-29참조). 그는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유대에서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도록, 그리고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시 로마에 갈 수 있도록 기도부탁했습니다(롬15:30-32참조).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 성령의 권능으로 넘치는 소망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지난 주에 모든 사람을 감동케 한 한 간호사의 편지입니다.

  "저는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메르스 라는 질병의 첫 사망자가 나온 한림대 동탄 성심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제 옆에 있던 환자도, 돌보는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돌보던 환자는 황망히 세상을 떠났고 나중에야 그 환자와 저를 갈라놓은 게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메르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를 격리실 창 너머로 바라보며 저는 한없이 사죄해야 했습니다. 의료인이면서도 미리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따스하게 돌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낫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20년간 중환자실을 돌보며 처음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조차 미안하고 죄송스럽던 시간들.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격리 대상자가 되었지만 남은 중환자들을 돌보아야 했기에 저는 '코호트격리'라는 최후의 방법으로 매일 병원에 출근합니다... 애송이 간호사 시절, 심폐소생술 때문에 뛰어다니는 제게 어느 말기암 할머니는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라는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처럼 지금까지의 시간은 정말 악착같이 저승사자에게 '내 환자 내놓으라'고 물고 늘어졌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요즈음은 무섭고 두렵습니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N95라는 마스크를 쓰고 손이 부르트도록 씻으며 가운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고 나서야 남은 중환자들을 돌봅니다. 마스크에 눌린 얼굴 피부는 빨갛게 부어오릅니다. 비닐로 된 가운 속으로는 땀이 흐릅니다... /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도 이 직업을 사랑하느냐고. 순간, 나를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들이 지나갑니다. 어느 모임에선가 내 직업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내 모습이 스쳐갑니다. 가겠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서 있는 제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 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고생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 갇힌 채 어쩔 수 없이 간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게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차가운 시선과 꺼리는 몸짓 대신 힘 주고 서 있는 두 발이 두려움에 뒷걸음질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참 아름다운 싸움입니다. 두려움에 뒷걸음질치고 싶은 시간을 감당하는 용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의 섬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는 치열한 격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모든 격투를 마치고 가난한 영혼이 되었을 때, 그래서 주님 앞으로 겸손히 돌아오고자 할 때 그들을 환대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삶을 인도해달라고 떼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사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논과 호수 바닥이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져있습니다. 단비를 기다리는 타는 갈증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이 주시는 간증을 그렇게 기다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성령의 권능으로 넘치는 소망을 가지며, 복음을 위해 일할 때 하나님은 그런 간증으로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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