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믿음이 강한 사람(롬 14장) | 이정식 | 2015-06-09 | |||
|
|||||
에어컨이 충분히 강해야 차 안을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얼음이 충분히 두꺼워야 차가 건너갈 수 있습니다. 비가 충분히 내려야 농작물이 자랄 수 있습니다. 햇빛이 충분히 강해야 빨래가 깔끔하게 마릅니다. 몸의 건강이 충분해야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멘탈'이 강한 사람 곧, 정신력이 강한 사람의 11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놓았습니다. 첫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다. 둘째,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는다. 셋째,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넷째, 변화를 회피하지 않는다. 다섯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여섯째,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일곱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여덟째,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아홉째,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곧바로 표현한다. 열째, 예상했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담하다. 열한째, 즉각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강한 사람이란 여러 가지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과 소망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 어떻게 하든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승리를 해도 그리스도를 위해 승리하고 실패를 해도 그리스도를 위해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구약에 있는 제사법과 정결법에 따라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제사 드리는 예법을 잘 지키려고 했고, 부정한 음식과 부정한 짐승, 부정한 사람까지 멀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승패가 걸려 있고, 회사의 존망이 달려 있으며, 나라의 국운이 달려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어떻게 해서든 하늘의 도움을 입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음 가짐을 바로 하고 정신이 방종하지 않도록 못된 곳, 방탕한 곳과는 가까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선한 말씀인데, 그 선한 말씀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행하면 득의할 것이다, 받아들여질 것이다 믿었습니다. 옛 선비들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행하려고 했던 것도 하늘의 뜻과 통하며 또 사람과도 통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에는 죄 아래서 율법으로 금지했던 부정한 음식들도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심으로 폐하셨습니다. 전에는 죄 아래서 특별히 안식일을 정하여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모든 날 매 순간을 거룩하게 복 주셨습니다. 무엇이나 먹을 수 있고 어느 날이나 안식일과 같이 동일한 날이었습니다. 죄와 율법 아래서 구분하던 정함과 부정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폐하여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그런 구분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깨끗해졌습니다. 이방인들이 먼저 이런 자유를 누렸습니다. 다른 어떤 지킬 것도 없었으나 오직 그리스도만을 지키기 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징어도 먹고, 비늘 없는 물고기도 먹고, 굽이 갈라진 짐승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런 짐승과 음식들이 부정하다고 믿어왔던 유대인들은 여전히 이런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 한 쪽에는 채소만 먹고 고기는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쪽에는 고기나 채소나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시시비비가 일게 되었습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고 업신여겼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롬4:3a).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롬14:3b)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 그 자매는 당신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롬14:4a참조). 왜냐하면 그를 세우는 것이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롬14:4b참조). 그러면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먹지 않는가 하는 것과, 또 특별한 날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날을 동등하게 여기는가 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 확정할"(롬1:5b)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주를 위하여 그렇게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롬14:6참조).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롬14:8). 고기를 먹는 자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살으셨고, 채소만 먹는 자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살으셨습니다. 안식일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살으셨고, 모든 날을 동등하게 여기는 사람을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살으셨습니다. 곧 이 사람도 주의 것이 되도록 하고 저 사람도 주의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 하든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사람이라면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평가는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접 말할 것이며 하나님의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블로그에서 한 분이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 생각해보세요.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는 않는다'며 대쪽 같은 선비 정신이 필요한 걸까요? 요즈음 대쪽 같은 기개를 가져서 어디다 쓸 건가요? 다 걸고 자기 한 몸 던져서 싸우면 끝입니까? 가족은? 부모님은? 남은 식구들의 슬픔은 상관없고요? 회사에서 상사에게 머리 숙이고 고객에게 머리 숙이고 사는 우리네 아버지들은 대쪽 같은 기개가 없어서 그렇게 비굴하게 사는 거랍니까? 지킬 게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 던지고 싸움닭처럼 싸우지 못한다고요!" 가슴 깊이 이해되는 너무도 절절한 항변입니다. 지킬 게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마음에 속 들어옵니다. 나만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아이들을 생각하는 가장의 고민이 묻어나옵니다. 그러나 정말 이게 전부여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겉사람은 그렇게 말하더라도 우리 속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내가 내 것이라면 내 가족의 것이라면 좋지만, 그리스도를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둘째, 무엇이든지 형제를 위해 삼가할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형제 앞에 거칠 것을 두지 않으며(롬14:13참조), 형제를 근심하게 하지 않습니다(롬14:15참조). 형제는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형제는 결혼하지 않은 교인을 부르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형제를 훨씬 더 크게 봅니다. 성경에 따르면 형제란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입니다. 그리스도의 값을 가지고 있는 형제입니다. 물건 값을 물을 때 우리는 "얼마짜리죠?"라고 묻습니다. 사람에 대해 특별히 형제에 대해 그 값어치를 물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짜리입니다". 그런데 이밖에 신앙생활에서 여러 가지 신념이나 중요시 하는 내용들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일을 하는 것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지만, 여러 가지 신앙의 습관에 있어서는 형제를 생각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신앙의 습관은 내가 확신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 평가받을 것입니다. 다른 형제가 확신한 신앙의 습관은 역시 하나님 앞에서 그 형제가 평가받을 일입니다. 각자 하나님 앞에 선하고 올바른 것인데 그것으로 서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해야 합니다(롬14:16). 만일 이런 신앙습관으로 서로를 비방한다면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는 일이 됩니다(롬14:20a).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롬14:17,20a).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8). 맹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득도다조'(得道多助)니 성이 높고 해자도 깊고 무기가 날카롭고 갑옷이 단단하고 군량미가 많아도 전쟁에서 지는 것은 사람들이 그 성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도망가버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군사들이 모든 장비가 좋아도 도망가는 것은 장수가 군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승리란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을 때 얻게 되는 것이니,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는 것도 형제 자매들이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돕고자 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자신 사랑의 사도가 되도록 연단되었던 인물입니다. 바울이 형제들 앞에 거칠 것을 놓지 말라 그는 주의 것이니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의 간증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마가라 하는 요한이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장 13절에 보면 다른 동행자들은 바울과 계속 함께 했는데,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후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났습니다(행15:37-40). 사도 바울은 마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함께 일하지 못할 형제로 믿었습니다. 결국 따로 떨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의 나이를 추정해본 사람들에 따르면 30대 초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는 그후 15년여가 지난 40대 중반이었고, 로마서를 쓴 때는 그후로 또 7-8 년 지난 50대 중반쯤으로 볼 수 있습니다. 60대가 넘어서 쓴 디모데후서에 보면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3:11b)고 썼습니다. 바울은 이미 30대 초반에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선포하며 담대히 복음을 말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일을 해가는 가운데 그의 강함이 형제를 대하는 데 약할 때가 있었습니다. 마가는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로마서를 50대 중반에 썼다고 보면 이미 믿음 생활 20여 년이 지나오면서 형제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형제를 믿음으로 권면할 수 있지만, 그 형제를 세우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주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는' 또한 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생활 속의 믿음의 습관은 서로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섬길 것을 도전하고 격려하되, 그것이 형제를 실족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멈추어 서서 주께서 행하실 일을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복음의 일은 복음에 헌신된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 먹는 것과 특별한 절기에 대해 자유함을 누리던 사람들이 다른 형제를 위해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14:21).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이 죄니, 자기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지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형제를 위해 삼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성장이란 복음의 영광을 알고 형제를 사랑하는 데 자라가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소상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하십시오. 형제자매에게 거침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나의 믿음은 내가 믿는 대로 하나님 앞에 평가를 받게 됩니다. 나의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나의 선함이 다른 사람에게 비방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그렇게 행할 때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18절에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8).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해 합시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무엇이든지 형제를 위해 삼가할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그는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워 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