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그러므로 사랑의 빚을 지라(롬 13장) | 이정식 | 2015-04-28 | |||
|
|||||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가난에 빚진 사람처럼 느낍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지식에 빚진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권세가 없는 사람은 권세에 빚진 자처럼 삽니다. 빚진 사람의 특징은 채권자 앞에서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때에는 주인처럼 천상천하유아독존인 것처럼 살다가도 그 사람 앞에서는 꼼짝없이 풀이 죽습니다. 그게 너무 싫어서 빚진 사람은 빚 갚기 위해 살아갑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식을 채우기 위해, 권세를 얻기 위해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 내가 몹시 마음 속으로 갈망하는 그것은 내가 '빚진' 그 무엇입니다. 그런데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9-30). 더욱 이상한 일은 이것들을 얻고 난 후에도 똑같은 일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대학교수들의 목을 쳐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는 성공도 얻었고 부도 얻었고 권세도 얻었지만, 무정함과 무자비함이 그 속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힘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니 믿음을 주세요 하며 기도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께 자라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부족감을 부요케 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우리의 간절한 노력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을 보니 부와 장수와 지혜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부와 장수와 강한 나라를 이룰 복을 함께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어렵지 않게 선한 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히 행하며, 사람 앞에 단정히 행하는 겸손한 사람의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계시지만 연약한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옳지 못한 길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제는 계셨는데 오늘은 안 계신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13:13)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한 권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확신있게 뿌리 내리지 않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 우리 속에 계신 사람은 삶의 부족감은 여전하여도 감사와 평강 속에서 섬길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9-1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요한 자입니다. 한편, 로마 교회 성도들 곧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였던 유대인입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기도한다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 이제 이 땅에 살지만 천국시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확신있게 다가왔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예배할 때는 성전세를 내었고, 또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로마교회에서 모일 때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은 천국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로마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는 타락한 나라요 장차 멸망할 나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로마 교회에 속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종말의 더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롬13:11참조). 사도 바울은 이런 모습에 대해 강하게 권면합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말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이면, 하나님께 드릴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나라를 섬기는 것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며 또 하나님의 정하신 바(롬13:1)이며, 심지어 세상 권세자들이 세금을 거두며 악한 자를 심판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사역자"(롬13:4)요 "하나님의 일꾼"(롬13:6)라고까지 했습니다. 우리 송포성서침례교회 성도들은 국가에 내는 세금을 착실하게 내십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전할 이유가 별로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천국을 향한 확신,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 확신이 더욱 강건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사용하는 집기류나 여러 설비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개척교회 시절에는 이것저것을 집에서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듯이,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아쉬운 대로 쓸만한 것을 가져다 교회에 봉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집과 세상 나라를 위하여 가꾸는 마음을 더 넓게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도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서울수도권 교회 연합찬양제를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가졌습니다. 그 장소가 주는 느낌은 우리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좋은 옷을 입을 때나 좋은 집에 살게 되면 어떤 자존감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은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더 좋은 것으로 가꾸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신앙의 2세대, 3세대를 위해서도 교회가 누추함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가족경제도 대한민국 경제도 불황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해서 존경하라고 하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지라는 말은 '빚갚으라'는 말이 아니라, 은혜를 보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은인에게는 어떻게든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목숨을 구원하였든지, 외톨박이 외로움을 위로해 주었든지 우리에게는 은인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지금 당장은 그렇게 못하더라도,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과 세상에서 우리를 섬기는 권세자들에게 대해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세상 나라를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방탕한 일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2-14). '단정히 행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지, 사람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외경심으로 살고,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단정히 행하는 사람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달은 성도들을 바라보며 사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단정히 행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또한 가물에 콩 나듯 하지만 신실한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굳게 세워지지 못한 사람들의 연약함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믿음의 표준이 떨어지고 맙니다. 자랑하거나 수군수군하거나 비난하게 됩니다. 때로 술 취하기도 하고 음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날 때마다 주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사람 마음 속의 죄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신실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이 보일 때 그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압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서로 사랑의 빚을 집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