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택하심의 비밀(롬 11장) | 이정식 | 2015-04-14 | |||
|
|||||
살면서 남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있으면 참 신이 납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신이 납니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될 것 같습니다. 내게는 없을 것같던 인생의 빛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기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랑거리를 주시면 말합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조금 질투가 나더라도 넉넉히 축하해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집시다. 얼마나 오랜만에 받은 축복이겠습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혜가 있으면 이야기하세요. 조금 부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듣고 축하해 드리겠습니다. 은혜 아니면 될 수가 없으니 질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이를 악물고 노력한다고 찾아오는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 축복이 그를 높이고 나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를 높여주는 것이 나를 낮추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날에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혹 주님이 내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삶에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태생이 이방인이어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겼습니다. 로마 교회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내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버림받은 자로 태어나지 않고 선택받은 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무시당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죽은 개 취급당하던 내 인생에 하나님의 빛이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아지고, 내 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어진 것입니다. 전에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내 귀가 응답을 한 것입니다. 전에는 아무리 들어도 깨달아지지 않던 내 가슴이 감격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들으려고 하고 내가 믿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더니 그냥 믿어지는 은혜가 나타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면 딱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이방인들,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 이상으로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11:20) 때로는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안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롬11:25a).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니 이방인들이 잘 되는 것은 그에게 기쁨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을 넘어 세계 선교를 하였습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11:13). 하지만 성도들의 자랑이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감사를 넘어서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이 되고 말 때 하나님은 엄하심으로 다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리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11:22). 지난 토요일에 함께 신앙생활하던 서울의 젊은 집사님 부부 몇 분을 만났습니다. 15년 정도 함께 하던 분들이라 마음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캠퍼스를 둘러보며 식사하고 차 한 잔 하면서 교제했습니다. 한 자매님이 유아실을 수 년째 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류마티스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도 섬길 수 있는 곳을 찾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자매님이 예배 시간에 예배당에 앉지 않고 유아실에 들어와서 계속 머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맡아 섬기는 이유는 그 부모가 마음 놓고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신앙 생활이 벌써 오래된 자매가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받았을까요?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택하심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는 걸까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가끔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처럼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은혜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이렇게 뒤로 물러나면 다른 성도들을 평가하는 일과 주어진 현실과 믿지 않는 세상을 비판하는 일이 전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방인 교회인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좀 책망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지금 불순종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엘리야의 일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a).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과 싸워 승리를 했습니다. "송아지 한 마리를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붙게 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왕상18:24). 바알 신의 이름을 불러도 안 되고, 뛰어놀아도 안 되고, 칼과 창으로 자해한 후 미친듯이 떠들어도 종일토록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의 순서가 되었을 때 송아지 놓은 나무 제단에 물을 세 번 붓고 또 도랑에 물이 가득차도록 한 후에 주의 이름을 불렀더니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셨습니다. 나무도 태우고 돌도 태우고 흙도 태우고 심지어 도랑의 물도 불길이 핥았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그 큰 승리 후에 이세벨 여왕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찾을 때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사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 그때 하나님 답하신 말씀이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롬11:4).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신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 있느니라"(롬11:5) 택하심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택하심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했듯, 이제 이방인인 로마교회 성도들이 마치 자시들이 유대인들보다, 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지혜롭다고 여긴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싫어 버린 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항상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말고도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 아직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 중에, 불신자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실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는 믿는 자에게 나타납니다. 믿을 때 내것이 됩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롬11:6-7).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꺽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롬11:20a). 이스라엘은 참감람나무였지만, 믿지 않고 행위로 나가려던 이스라엘의 가지는 베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돌감람나무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믿은 이방인들을 접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로 여김을 받게 된 그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할 것이 있는가 하면 없습니다.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롬11:18)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롬11:22a).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자녀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지혜나 자격,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시작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시작된 것이면, 믿음의 과정도 그 결국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나왔고, 모든 만물이 성장하고 숨쉬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모든 만물이 결국 이르는 것도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믿음의 사람도 시작은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나와서, 사는 동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며, 그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돌아갑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입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수도권친교회 학생연합예배가 있었습니다. 독산동교회의 예배당이 젊은 호흡으로 꽉찬 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각 개교회의 청년부가 그와 같이 만당이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전에 목사님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큰빛교회 천병성목사님은 종종 '큰빛교회'를 '큰빚교회'로 소개합니다. 예배당을 건축할 때 빚이 지금도 상당부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지난 2년 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교회를 섬기던 김형수목사님을 담임으로 세워 목동에 개척한 것입니다. 그때 천병성 목사님은 2억의 개척헌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1억4천 만원의 헌금이 드려졌다고 합니다. 교회의 빚은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금년 5월에 광교에 또 하나의 개척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함께 3년 정도 협력하던 목사님을 담임으로 세우는 이 일에 교회는 4천 만원의 헌금을 드리고자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은 그 목표 이상 넘치도록 헌금을 드렸습니다. '큰빚교회' 집사들과 성도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대화 중에 개척교회에 필요한 여러 인테리어 설비 가운데 스피커가 백오십 만원 정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독산동교회 주견식목사님은 '그거 우리가 하겠습니다' 하고 10여 분 환담한 후에 흰 봉투를 꺼내들고 2백만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경기가 불황인 지금, 헌금이 줄고 있는 지금, 개교회 형편들도 그다지 단단하지 않는 지금,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그렇게 마음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뭔가를 할 때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신앙생활도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를 따라 된 것을 안다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일이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리와 우리의 자리를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기도는 기도를 많이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2년 후면 우리 교회가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들어서 교회를 세워가실 수도 있습니다. 벌써 머리 속에 계산이 뻔히 나와서 다른 소망을 갖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우리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가 교회를 통해 왕성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구합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