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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장) 이정식 201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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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그린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빈센트 반 고흐, 그는 말했습니다. "화가라는 초라한 직업을 흔들림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아무도 사지 않는 독창적인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음 직전에 간직하고 있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생명을 걸었다." 고흐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사랑했습니다.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은 여유가 조금 되면 그림을 그리거나 화랑에 가서 전시회를 보는 취미를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유가 없다면,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로 미루겠지요. 그러나 그림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사람 고흐는 여유도 상황도 아무것도 맞지 않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는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사후에 천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밀고나가는 힘은 그림에 대한 사랑, 자기가 그려가는 그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힘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고난입니까? 고통입니까? 핍박입니까? 기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롬8:35) "참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통치자들도, 현재 일들도, 장래 일들도, 능력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여러분,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놀라는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세상을 구원하셨는가 어떻게 나같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는가 놀라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서 놀라고 세상에게서 놀라는 일입니다. '나는 왜, 저 사람은 왜, 세상은 왜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가' 이런 것이 빽빽하여도 나를 향한, 저 사람을 향한, 세상을 향한 주 예수의 사랑은 탄탄하여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생명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나오미와 룻은 기근 때문에 이방인의 땅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살 길을 찾아 내려간 그곳에서 도리어 남편 잃고, 자식도 잃고, 돈도 잃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스스로 말하기를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룻1:20-21). 자기를 괴롭히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할 만큼 고통과 기근과 헐벗음이 심했습니다. 자기 이름마저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오미와 룻에게서 끊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이름도 명예도 다 떨어졌을 그 때, 이 가문을 새롭게 할 보아스를 만나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왕후 에스더는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많은 "아리따운 처녀들"(에2:2) 중에서 왕에게 더 사랑을 받아서 왕후가 된 것입니다(에2:17). 어린 시절에 부모 없는 고아로 친척 모르드개의 손으로 자란 여인(에2:7)이 대제국의 왕후가 되었으니 부귀와 영화를 얻은 인생 대성공입니다. 그러나 하만이라는 사람의 계략으로 에스더와 모든 유대인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만이 유대민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습니다. 하지만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에4:11)뿐이었습니다. 이런 위험과 칼과 죽음이 에스더를 결국 망하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하며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자기를 꺾고 나아갔을 때 주님은 도리어 원수들을 폐하고 에스더와 유대민족 모두를 살리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우상숭배로 70년간 바벨론 포로로 넘겨질 것과 예루살렘이 황폐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단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범죄도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하나님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32:36-41).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2).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배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시7:11-13). 하나님은 죄에 대해 매일 분노하십니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하나님은 죄에 대해 분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말씀하시고 이루십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1-22). 어떤 미술작가가 신문지에 흑연연필로 계속 그었더니 신문지라고 생각할 수 없을만큼 시커먼 빛이 반들반들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덮어쓰고 또 덮어쓰고 가로줄 세로줄 왼 빗금 오른 빗금으로 써서 죄가 광이 나도 하나님은 그것을 깨끗이 거두어가십니다.

  그 약속이 이스라엘 역사에 계속 되었고, 그 최후 확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인류의 죄는 아담부터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있을 것입니다. 빽빽한 구름처럼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각 사람의 범죄, 국가적인 범죄, 각 세대의 범죄, 행위의 범죄, 생각의 범죄, 의도적인 범죄, 알지 못하고 범하는 범죄 그 모든 범죄에 대한 정죄를 예수님의 몸에 다 쏟아부으셨습니다. 가까운 그리스도인에게 실망했습니까 그 실망을 준 죄까지 정죄를 끝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인류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잘 아십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롬8:3-4)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망없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본성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위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8:5-8참조).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따라 행하면 율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따르면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의 생각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입니다. 결국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4-9참조). 더욱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8:10). 우리의 본성은 세상 지혜에 대해서는 밝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선악을 판단하고 예술을 할 만큼 뛰어나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만큼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 자신으로는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바로 여기에 가득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용서받지 못하고 은혜를 입지 못한 모든 사람은 이미 죽었고, 또한 죽을 몸입니다. 우리는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죽었을지라도 다시 살고,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예수 안에 믿음직한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신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반복되는 고난과 고생을 격려하십니다. 믿음으로 잘 살지 못하는 고생 말입니다. 안 믿는다 부족하다 연약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꾸 나 자신을 믿으려는 이 못된 습성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 여러분 육신대로 살아보시면 압니다. 말씀에 감동이 없고, 은혜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했다는 건가요? 세상이 주는 생각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내일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오늘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판단대로 하려는 생각에 지지 말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삽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신앙의 싸움 속에 있으면 우리가 혼동이 생깁니다. 내 생각에 지면 죽을 것이니 하나님이 두렵고, 육신의 생각을 이기고 영의 생각대로 승리할 때는 살 것이니 삽니다. 오늘은 죽고 내일은 살고 오늘은 죽고 내일은 살고... 이렇게 해서 뭐하나 생각이 들 만할 때,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종의 영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하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

  왜 이런 고난이 오나? 구원받고 나면 평강이 넘치고 감사가 끊이질 않아야 정상인데 왜 고생이 있고, 번민이 있고 공부 걱정, 취업 걱정, 건강 걱정, 노후 걱정은 더 심해지나?  인생은 왜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싸움인가? 하나님은 전혀 다른 까닭을 말씀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공부 잘 하려는 싸움도 감당하기 벅찬데,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 공부를 다스리는 싸움을 합니다. 주일을 구별하여 예배하며 안식합니다. 취업해서 직장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싸움도 만만치 않은데,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직장 일을 2순위에 두는 싸움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싸움도 돈이 많이 들고 신경 쓰이는 것인데, 그리스도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한 싸움을 합니다. 퇴직 후 노후 30년 이상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 노후 준비가 숨을 헐떡일 만큼 힘겨운데, 노후가 예수를 닮는 아름다운 은빛이 되기 위하여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멸하시고 마귀를 멸하시고 죽음을 정복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영접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영광을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 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삶을 위해 믿음을 쭈구려뜨린다면 그는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며,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롬8:19-22참조). 그러니 우리 마음과 몸에서 행해지는 이 전투가 우리를 탄식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피조물이 이런 탄식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도리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3). 구원받은 우리도 우리 썩을 몸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그날을 탄식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탄식할까요? 긴 한숨을 쉬며 장탄식을 하며 쓰러질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거룩함을 이루어가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이루실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내 안에 힘이 없으니 탄식하고 쓰러지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이니라"(롬8:26). 성도의 삶은 종종 허둥대는 삶입니다. 축구선수가 골문 혼전 상황에서 헤딩을 했는데 공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알지 못해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스꽝스럽고 바보처럼 보입니다. 살아가면서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이렇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죄많은 인생, 우스꽝스런 인생으로 마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그분이 인도해 가십니다. '내 마음도 내 속도 모르면서 뭘 인도하신다고 하실까' 아닙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 우리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사단의 뜻이나 육신의 뜻이나 죄의 뜻이나 사망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 죄를 이기기 힘들어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의 완악함과 고집 센 본성이 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욱 감격스러운 일은 이 일이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해서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선택하셔서 되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청사진을 이미 완성하셨고, 우리를 미리 아셨고, 미리 정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또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려고 주님을 맏아들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생으로 고생하고, 고난 가운데 힘들어하며, 현재 일 속에 괴로워하며,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청사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롬8:28참조). 굴러가는 컬링이 목표점에 도달하도록 누가 앞에서 쓸고 닦아 주실까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죄와 허물은 여전히 우리의 몸과 정신을 괴롭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의 권세, 마귀의 유혹을 멸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얻었습니다. 아들까지 내어주셔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견딜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주십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시민으로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가다가 넘어져서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과 고소를 받고 있습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아니 아직 남의 절망의 깊이도 모르고 입으로만 떠드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8:36). 정상적인 성도의 거룩한 생애는 이렇게 치열한 적진 속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포화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도 우리는 승리의 함성으로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그러므로 죄를 이기신 사랑, 마귀를 멸하신 사랑, 잃은 양 한 마리도 찾아 나서시는 목자의 사랑을 알고 믿고 계시다면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해 힘있게 도전하십시오. 말씀을 열심히 읽었지만 매일의 생활 속에 적용하지 못했다면 경건의 시간QT를 시작합시다. 돈 벌 생각 조금만하고 경건할 생각 많이 합시다. 썩을 것을 위해 헌신하지 말고 썩지 않을 것을 위해 헌신합시다. 우리의 대장은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죄를 멸하기 위해 다시 사셔서 영생으로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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