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 하나님말씀 >
<3월 1일>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가려면(롬 6장) 이정식 2015-03-03
  • 추천 0
  • 댓글 0
  • 조회 667

http://spbbc1.onmam.com/bbs/bbsView/43/118694

  신앙생활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변화하지 않을 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데 직장 일이 너무 많아질 때, 순탄하던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질 때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 자신이 거룩한 사람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찬양과 말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거룩한 삶을 꿈꿉니다. 이제 이만하면 좀 변화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비슷한 죄를 다시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 때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을까요?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가려면 첫째, 죄에 대해 죽었다 선언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b)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은혜로 용서하신다. 또한 도리어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이신가 하는 것이 더욱 드러난다. 그러니 우리가 죄를 지어도 괜찮아' 아닙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연약하여 죄를 짓는 것이 우리에게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죄 안에서 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롬6:1). '메 게노이토'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니라,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로 번역되는데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God forbid 하나님이 금하신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2b).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알 때 우리가 우리 영혼에게 그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죽었고!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단을 밟고 오다가 아버지가 신랑에게 넘겨주면 신부는 신랑의 여인이 됩니다. 잔디는 소나무 그늘을 떠나야 살고, 신부는 신랑의 손으로 넘겨져야 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죽었고' 라고 할 때에만 거기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생각하기 싫지만 죄는 나타납니다. 우리는 죄를 꺼리지만 죄는 우리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금식기도를 하여 죄에서 벗어나려고 최선의 의지를 발휘하여도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는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당하는 죽음을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수치스러운 삶에 꼭맞게 수치스럽게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으면 예수의 죽으심과 우리가 합해진 것이 됩니다(롬6:3). 우리는 예수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아 예수와 함께 묻혔습니다(롬6:4a).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본받아 그의 죽을 몸에 연합하였습니다(롬6:5a).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이유는 죄의 몸이 멸망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롬6:6).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죄에서 해방됩니다. 또한 죽되 예수와 함께 죽었으면 의롭다는 인정을 얻습니다(롬6:7). 다른 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죄값을 갚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죄를 씻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어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고백할 때 단번에 그 모든 죄가 씻김받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가 우리를 자꾸 건드리고, 죄가 우리를 자꾸 충동질하여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몇 번 들어주었어도 눌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율법 아래 살지 않고 은혜 아래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롬6:11a). 여전히 죄는 자꾸 우리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의 욕망을 따라 행동하라고 자꾸 충동질을 합니다(롬6:12). 죄라는 놈을 모를 때에는 우리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드렸습니다(롬6:13a). 그런데 죽고 말았으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고, 죄가 승리한 것이 됩니다. 죽고 말았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죽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셨습니다(롬6:4b). 우리는 예수의 죽으심만 본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이 되었습니다(롬6:5b).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리스도의 사심과 함께 산 것입니다(롬6:8b).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다는 말은 다시는 죄가 그를 죽이지 못하며 사망이 다시 그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롬6:9). 죽음의 결박을 풀어버렸습니다. 사망의 형틀을 벗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으신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신 것이니, 우리가 예수와 함께 다시 살면 하나님께 대하여 산 것입니다(롬6:10b). 이제는 우리 자신을 죄에 헌신하지 않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설 명절 때 돌아가신 아버님 산소에 갔습니다. 산소 주위에 개나리를 심으면 좋겠다는 형님의 제의가 있어 갔는데, 소나무 산이었지요. 누런 솔잎이 떨어져 산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형님이 하는 말이, "소나무 사는 곳에는 다른 나무가 살기 어렵지, 떨어진 솔잎이 다른 식물 빛도 못 받게 하고 또 솔잎이 독하니까." 식물은 빛을 받지 못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정말 소나무밖에 없고 땅 위에는 촘촘하게 가득 떨어진 솔잎밖에 없었습니다. 산소에 가봤더니 솔잎이 떨어져 있는데 잔디가 맥을 못 추고 있었습니다. 웬만하면 잔디가 사는데 솔잎 밑에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타감작용(allelopathy)이라는 것이 있어서, 소나무 뿌리와 솔잎 등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이 다른 식물의 호흡과 광합성, 영양분 흡수와 호르몬이나 단백질의 합성을 방해합니다. 잔디를 살리려면 소나무를 베든지 솔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지를 쳐 주어야 합니다. 살려면 소나무의 그늘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제 은혜가 시작되었으니 은혜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다시는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율법, 죄의 법,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의 법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가려면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은혜 아래 있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다시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6:15). 사도 바울은 다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짓는 우리에게 '그럴 수 없느니라!' 죄가 자꾸 드러나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그럴 수 없느니라!" 늑대들에게 쫓겨 다니다 한 사람씩 죽어가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눈 덮인 산에서 외줄 타다가 떨어져 다쳤습니다. 살려고 하다가, 기어이 살아서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다친 몸째 드러누워서 주변을 바라보니, 사방이 가로막힌 산이었습니다. "내 인생이 꼭 이랬어, 살아나가도 의미가 없어" 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 자신의 영혼을 향해 선포합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지금이 어떠하든지 앞을 바라보라. 이미 결론이 났다. 누구에게 순종하면 그의 종이 되는 줄 모르느냐 죄에게 순종하면 죄가 주인이 되어 그 장래는 죽음이지만, 순종의 종으로 드리면 그 장래는 의에 이르지 않느냐(롬6:16).

  여러분, 예수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내 마음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죄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눈 떠 보면 이제 감사가 됩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으니 우리가 죄 짓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놀라기도 하고 크게 실망하기도 하면서 알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꿈꾸어 본은 죄의 본(本)이었구나. 그렇다면 이제 그러지 말고 우리에게 전해진 교훈의 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순종하자. 예수와 함께 죄에게서 해방되고, 예수와 함께 의로움과 거룩함을 이루는 사람이 되자(롬6:17-18).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훈의 본"(투폰 디다케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 몸에 이루신 본(本)이십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라! 주께서 순종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主)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골1:29)것입니다.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하나님과 상관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나와 상관 없었습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롬6:20).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것이며,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롬6:22).

  마음으로 순종할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이전 일, 곧 뒤를 돌아봅시다. 우리 육신이 연약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에 우리가 우리 몸을 부정한 일에 불법에 드렸더니 불법이 될 뿐이었습니다. 시기가 나서 시기했더니 못난 사람이 될 뿐이었습니다. 수군수군할 일이 있어서 수군수군했더니 돌아오는 길에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뿐이었습니다. 참다 참다 한 번 폭발한 것뿐인데 옹졸해진 모습에 쥐구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고 했는데 비판했다가 오히려 똑같은 말로 비판받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무엇을 얻습니까? 부끄러움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그 일들이 부끄러운 일(롬6:21)이었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누려도 그 끝은 수치스러운 죽음이니, 누릴수록 부끄럽고, 가질수록 허망하고, 성공할수록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 할아버지를 욕하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글을 써 장원까지 한 김병연, 곧 김삿갓과 같은 것입니다. 벌거벗은 줄도 몰라라 하면서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고 뽐내는 임금과 같습니다. 높이 날수록 떨어질 때 처연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우리가 여전히 주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의 열매가 아니라 거룩한 열매, 영생의 열매를 얻는 것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기 때문입니다(롬6:23).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3월 8일> 사망의 몸에서 건지시는 주님(롬 7장) 이정식 2015.03.10 0 295
다음글 <2월 15일> 군림하는 은혜(롬 5장) 이정식 2015.02.16 0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