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군림하는 은혜(롬 5장) | 이정식 | 2015-0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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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있습니다. 우리 민족 중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은 '김연아',우리 민족 중에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은 '이순신'. 그렇다면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은? 하고 묻고는 답을 달기를, '접니다. 만 년 동안 나랑 똑같은 사람은 없잖아요. 만 년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구요.'하고 끝맺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아니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단 한 번만 등장하는 귀하고 귀한 인물들입니다. 소중한 인생 귀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귀중한 인생에 대해서 성경은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롬5:2)는 것입니다. 또한 이 즐거움은 어떤 즐거움인가 하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믿음으로 살아갈 때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게 되지만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고통은 인내라는 열매를 만들고, 인내는 우리 마음을 단련시키며, 그런 단련 속에서 소망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아 생각 속에만 있는 소망이라면 부끄러움이 되겠지만, 우리가 가진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의 연단도 감사하고, 그 연단을 만들어내는 인내도 찬양이 되며, 그 인내를 요구하는 환난조차도 즐겁게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롬5:5)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5:6). 존경할 만한 사람, 생명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뛰어난 점을 갖추고 있습니다. 위대하고 대단한 일들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소망이 없음은 어찌된 일일까요? 성경은 이를 말하기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롬5:7). 최근 우당 이회영과 6형제 전이라는 전시회가 2달 넘게 열리고 있습니다. 100년 전 나라를 팔아먹은 76명이 을사늑약을 맺어 나라를 잃었을 때 우당 이회영과 그 형제들은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으로서 조선의 최고 갑부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형제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슬픈 일이외다. 우리는 명문의 자손으로 대의를 위해 죽을지언정 일제 치하에서 생명을 부지하려 한다면 어찌 짐승과 다르리오" 해외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에 참여하자는 이회영의 제안에 형제들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우리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가문 차원의 헌신이었습니다. 온 가산을 팔아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죽음을 감내한 투쟁을 통해서라도 나라를 되찾고자 했습니다. 유교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개인이 어떠한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치공동체를 꿈꾸는 혁명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석영, 회영, 호영 3형제는 만주와 중국에서 잔혹한 일제의 고문으로 장렬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밖에도 우리 나라에서 난 의인들이 있습니다. 이상설, 윤봉길, 신채호, 좀더 시대를 거슬러 이 황, 이 이, 좀더 올라가 정몽주, 최치원 등 우리 나라에도 수많은 학자와 의인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민족을 위하여, 또는 이치를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들로 인해 같은 한민족으로서 자랑스러워하게 되고 또 그 정신을 배워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참된 소망을 얻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또한 확인하게 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롬5:7).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졌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수많은 죄인의 억겁같은 죄를 다 씻으시는 사랑이며, 그것도 자기 잘못을 깨닫지도 못했을 때 먼저 그 죄를 위해 형벌을 당하셔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붉은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들이 의인을 위하여 죽었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은 것은 범인을 뛰어넘는 일이지만, 여기 죄인을 위하여 죽은 사람은 온 세계 전 역사를 통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 날 때부터 죄인이니 그의 마지막이 소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롬5:9). 우국열사의 피와 예수님의 피는 어떻게 다릅니까. 우국열사의 피는 의로움을 위하여 흘리는 피지만, 예수님의 피는 죄인의 죄를 위하여 흘리는 피입니다. 우국열사의 피는 민족을 살리는 피가 되어 숭상을 받지만, 자기 자신과 수많은 죄인을 구원하지는 못하는 피지만, 예수님은 우국열사를 포함하여 모든 죄인과 연약한 사람을 소망 안에 즐겁게 하는 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졌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되었기 때문에 원수된 자를 사랑할 사람은 없되, 오직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원수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습니다. 이 사랑의 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께 죄스러운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남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그렇다고 믿는다면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롬5:11)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즐겁고, '나는 언제까지 인내해야 되는가 하는 사람'도 이 확실한 소망으로 인해 기쁨이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처럼 죄 안에 갇혀 있었던 자도 하나님의 화목제물로 인해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믿은 사람은 은혜가 왕노릇합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은혜가 우리를 다스립니다. 죄가 우리 위에 군림하지 못하고 은혜가 군림하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두 시대를 나눈다면 아담시대와 예수 그리스도 시대입니다. 아담부터 모세시대까지, 곧 범죄한 이후 율법이 다스리던 시대까지는 죄가 군림하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롬5:15a) "심판은 한 사람의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롬5:16a)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노릇하였은즉"(롬5:17a).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롬5:19a).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5:20a).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롬5:21a).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안에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5:15b)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롬5:16b)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롬5:17b)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b)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b)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b)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ㄹ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5:21). 여기 시대를 알지 못한 사람의 슬프고 황당한 두 사람의 인생이 있습니다. 이미 끝난 전쟁이어서 승리와 패배가 뚜렷이 구별된 전쟁인데, 여전히 전쟁 중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마지막 일본군이라 불리는 사노 토시아키씨입니다. 1943년 사망한 줄 알았던 소령 사노 토니아키는 전투에서 낙오된 뒤 밀림에서 숨어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사노 토시아키는 항복하기보다는 지원군을 기다리기로 했고, 마을의 가축들을 몰래 끌어가면서 연명했습니다. 사노씨의 하루 일과는 5-6시경에 일어나 군복을 갈아입고 일본도를 차고, 제식 소총을 메고는 일본을 향해 합장합니다. 식사는 바나나와 주변 민가에서 약탈한 식량으로 떼웠습니다. 일정한 거처는 두지 않았고, 적군에게 발각될 것을 우려해 하루 종일 이동해 다녔으며, 머문 곳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려 33년 동안 필리핀 밀림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또 다른 일본군 군인은 퇴역 소위 오노다 히로오씨입니다. 1945년 10월에 "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났으니 일본군은 투항하라"는 전단을 보았지만 미군의 속임수로 생각하고 거절했습니다. 그해 12월에 동일한 전단을 발견했을 때 살아남은 부대원 43명 중 대부분이 돌아갔지만, 오노다를 포함한 4명만은 거절했습니다. 그후 먼저 돌아간 부하들이 섬 전체를 다니며 "오노다, 어디 있나? 나와라. 전쟁이 끝났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고 찾았고, 또 가족들이 가족사진과 편지 전단을 뿌리면서 돌아올 것을 권유했지만, 미국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거부했습니다. 결국 옛 상관이 전해준 "패전했으니 귀국하라"는 특별 명령서를 받고서야 투항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필리핀에 29년 동안 숨어지냈습니다. 일본인들은 오노다 히로오씨를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여전히 전쟁을 하는 오노다 소위의 칼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것과 흐트러지지 않은 눈빛을 보면서 놀라워했습니다. 일본인 탐험가는 놀라움 속에서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미학 같은 것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참 불쌍함의 연속입니다. 왕노릇하는 것은 최고의 신하가 가질 수 없습니다. 왕노릇은 오직 왕만이 행하는 것입니다. 왕은 다른 신하들, 직급이 높거나 낮거나에 상관없이 그들을 다스릴 권한이 있습니다. 조선조 때 가장 높은 벼슬인 영의정도 왕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왕과 신하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알력이 있습니다. 신하들이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간청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종 결정권은 언제나 왕에게 있습니다. 왕은 명령하고 신하와 백성은 그것을 따르는 것이 도리입니다. 군림하는 것은 최고권력자만이 군림합니다. 일찌감치 인생의 목표를 정한 사람은 그 목표가 왕이 되어 다른 일들을 다 복종시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이성간의 친구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둘째요, 친구들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셋째요, 알바를 해서 돈을 버는 일도 괜찮지만 넷째입니다. 한때 교계에서 유행했던 말처럼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위에 군림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진 것은 은혜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 위에 군림하는 것을 보고계십니까?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지느니라" 너무 많은 불법만을 보고 계십니까. 우리 안에 너무 연약한 점만을 보고 계십니까 우리 안에 너무 죄스러운 일들만 바라보고 계십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원수될 만한 죄 때문에 번민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은혜의 시대, 사랑의 시대, 영원한 구원의 시대가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어찌 다시 죄에게 종노릇하며, 우리 연약함에 가슴아파 하며 우리 원수된 부패한 마음에 끌려다니겠습니까. 함께 선언합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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