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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하나님의 토라Torah(롬 3장) 이정식 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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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 곧 토라(Torah)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토라는 좁은 의미로는 모세오경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구약성경 전체를 말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온에서 나왔고 예루살렘에서, 곧 이스라엘 땅에서 나왔습니다. 유대 민족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런던이나 파리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뉴욕이나 베이징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서울이나 도쿄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나 아테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이스라엘 땅 유대 민족에게 먼저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영원한 자랑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에는 후회가 없으시기 때문에, 비록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고 있지만, 마지막 날에 다시 믿음을 가진 유대인에게 구원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더 나은 점 가운데 가장 귀한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맡은 하나님의 토라가 진정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을 분명히 밝혀주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참되시고(롬3:4참조), 또 의로우십니다(롬3:5참조). 하나님이 참되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거짓된 모든 것은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롬3:4참조)라고 했으니 사람의 거짓됨이 하나님 말씀, 곧 토라를 읽을 때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우십니다.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의한 모든 것은 드러나게 됩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시51:4; 롬3:4).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따져묻는 어떤 반대나 공격에도 하나님은 능히 이기십니다. 하나님은 참되시고 의로우신 말씀대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말씀대로 경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이집트 바로에게 말씀대로 경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솔로몬 왕이 갑자기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길로 가라고 권면하셨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갑작스런 불행을 주지 않으십니다. 물론 때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일 뿐이지 저주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합니다(롬3:5-8참조). '거짓된 사람이 있으면 참된 사람이 가치가 더욱 드러납니다. 불의한 사람이 있으면 의로운 사람의 가치가 더욱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거짓된 사람이 여전히 있어야 하고 불의한 사람도 나름대로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철학자들과 거짓 종교들은 말합니다. 어둠이 있으니 빛이 있다고 말입니다. 거짓이 있으니 참이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음이 있으니 양이 있다고 말입니다. 남자가 있으니 여자가 있다고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구분해야 합니다.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는 것은 남자가 있기 때문에 여자가 있거나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거나 빛이 있기 때문에 어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둠과 빛을 지으셨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밝은 면이 있고 어두운 면이 있으니 '명암(明暗)'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는 명암이 없습니다. 세상에 항상 참과 거짓이 있으니 하나님이 이 둘을 다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참입니다. 왜냐하면 거짓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울며, 회개하고 버리고 떠나야 할 죄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어도 되는 줄로 생각한다면 그가 '하나님께 정죄받는 것은 마땅합니다.'(롬3:8b).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3:9).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선언했습니다. 우리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개는 다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주 점잖게, 또는 대수롭지 않게 인정합니다.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식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결코 점잖게 말하지 않습니다. 시편의 말씀과 이사야 말씀을 각각 인용하면서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전7:20)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14:2-3)"(롬3:10-12). 그리고 날선 검처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시5:9-10)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140:3)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시10:7)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사59:7)"(롬3:13-15). 또한 그 죄악의 결과를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사59:7-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시36:1)"(롬3:16-18).

  이런 참되신 말씀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3:19). 모든 입이 입막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말이 어눌한 사람이 성장하고 사람들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 말문이 트입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랏님 흉도 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숨죽여 소리치고 싶은 일도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입바른 소리도 다 입막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둘러서 무리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그 소리에 돌 하나씩 들고 살기를 띠었던 무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모든 입이 막혔습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돌 심판'을 직감한 것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권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권능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b). 율법의 행위 곧 율법을 지키려고 할 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그러나 이제'(nuni de)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자랑할 자가 없고, 아무도 입을 열어 자기의 선함을 주장하지 못할 때,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할 말을 잃고 낙담할 때, 내가 거짓된 사람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여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롬3:21). 곧 구약 말씀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미리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밝혀낸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실 한 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사람들이 모두 영광을 꿈꾸지만, 죄인인 이유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가 없을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롬3:24)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유대인들도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말씀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도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에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참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과 거짓된 사람, 불의한 사람 사이에 도무지 서로 통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참되심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전에 우리가 지은 죄를 간과해주시기 위해서 드린 값이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로 제물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게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아브라함이 자기 손에 아들 이삭을 죽일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아들에게는 자기를 불태울 번제 나무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냥 가도 가슴이 답답할 터인데,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어요?" 가슴이 미어터질텐데 아브라함은 족장답게 자기 아들을 잡으려고 칼을 내밀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급히 부르며 말하기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창22:12a)라고 하여 중단하게 하신 후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b).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물로 드리려 한 것을 보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는 제물로 드리도록 하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이삭은 스스로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죽임당함을 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믿는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삼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건지려고 독생하신 아들 예수를 내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가 하나님 경외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지극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에 대한 값은 반드시 치러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값이 치러진 후에는 우리 죄를 간과하시는 은혜가 이루어집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3:26). 우리는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이 은혜를 받습니다. 거짓되고 불의한 사람들은 세상에 불법이 판을 치면 점점 그 불법에 감염되어 갑니다. 하지만 참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악의 깊이와 허다함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참되시고 의로우시므로 영향 받지 않는 데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죄 있다는 고백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록된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고, 의롭다는 고백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록된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참되기 때문에 우리의 거짓을 드러낼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불의를 의로움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은 유대인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시인하는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도 굳게 세워지고 의롭다 하실 하나님의 의도 더욱 굳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곧 토라가 겨냥하는 두 가지 진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참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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