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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으려면(롬 2장) 이정식 201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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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십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롬2:11). 그런데 요즈음은 기업들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을 줄 아는 것 같습니다. 학력이나 학벌이나 해외유학 경력이나 수상 경력 같은 포트폴리오만으로 취업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에 의지하여 사람을 뽑으면 무난한 선택이 되기는 하지만, 기업의 사활이 걸린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선택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전에 준비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서 그 질문에 대한 순간적인 답변 속에 한 사람의 준비된 능력과 잠재력을 발견하는 인재선발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은밀한 행위를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롬2: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2:16). 판단의 기준은 선한 일입니다. 선한 일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인데, 그 일이 선한 일이 되려면 마음 속이 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기업은 인격적인 사람을 원하기도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을 더 원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은밀한 행위를 판단하시는 분이신데, 또한 판단 후에 심판과 진노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5).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하게 살 수 있으면 선하게 살고 바쁜 세상에 그렇게 못하더라도 별 수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선한 행실에 대해 분명한 상급을 주시고, 악한 행실에 대해 분명한 환난과 고생을 주십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2:9-10).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은밀한 행위를 판단하시며, 심판과 진노를 행하시지만, 동시에 칭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9).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이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칭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웬말입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선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 칭찬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만그만한 사람이면 모를까 천만 인 앞에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판단은 분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할례를 받았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여 선을 행하지 않으면 진노와 분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도, 그리하여 이방인이라도 선을 행하여 진리를 따르면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하는 영생으로 갚아주십니다(롬2:7-8참조).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은 악을 행하면 환난과 곤고가 따르게 되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은 선을 행하면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습니다(롬2:9).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낮추시고 이방인들을 높이고 계십니다. 먼저 이방인들을 높이십니다.

  "(율법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본성이란 말은 어떨 때에는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이때에는 긍정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 '그 사람 마음밭이 착하다'고 하는 그런 본성을 말합니다. 그 선한 본성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이 없어도 그 양심이 서로 고발하고 변명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철학자들이나 현자들이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동서양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과 교훈을 남긴 스승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자, 맹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모니 등등. 이런 분들의 책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깊이가 있고 바른 교훈들이 많습니다. 어질게 사는 것에 대하여, 자비롭게 행하는 일에 대하여 써놓았습니다. 우리 중에 한 분 부친은 <시경> <서경> <대학> <논어> <춘추> 할 때의 '대학'의 초입까지 배운 분이 계십니다. 이런 책 속에는 일생을 두고 생각하며 실천할 만한 경구가 적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도 우리의 양심이 잘못된 일을 행할 때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때로는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용서를 빌게도 했습니다. 본성(롬2:14)에 따른 마음(롬2:15)과 양심(롬2:15)으로 율법에 맞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2-13) 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난 후에 사도 바울은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낮춥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롬2:17-20)고 자랑합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높여서 자기들이 과연 이 세상 어떤 민족과도 구별된 민족이라는 교리와 자부심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자랑스런 주장에 대하여 '스스로 믿으니'(롬2:20)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데 스스로 '우리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화자찬을 한다는 말입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스스로를 존귀하게 높이지만 실상은 어떤가.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2:21-23). 실상은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할례를 받아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됩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증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4).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표방하는 유대인, 곧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말입니다. 할례는 마음에 행할 것이며,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당을 짓지 말고 하나님께 칭찬받기 위해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율법이 없고 할례가 없는 이방인을 높이고 율법과 할례가 있는 유대인을 낮추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롬2:16)고 하였습니다. 본성과 양심에 따라 율법을 지키며 사는 이방인들을 우리는 존경하며 박수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마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한 때 옳은 말과 행실을 한다고 하여도 또 다른 순간에는 자기가 했던 그 말을 어기는 경우를 우리 안에서 종종 봅니다. 교사직을 내려놓고 은퇴 후에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분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포장마차에 들어올 때는 아주 친한 말로 정겹게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술이 한 순배 두 순배 들어가다 집에 돌아갈 때쯤 되면 싸우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사람이 그러면 못써!"라는 상대방에게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뭐라고!"하고 받아치면서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성과 양심에 따라 한 의견과 주장을 내세운다고 할 때 그것을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주장이 강해질수록 더 충돌은 격렬해집니다. 선한 생각이 악한 결과로 끝마치게 됩니다. 한편,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누구든지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칭찬이 있지만, 누구든지 악을 행하면 진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누구든지 우리의 잘못된 행실을 회개케 하심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시니, 그 하나님이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마주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회개의 기회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얼마나 풍성하며, 하나님의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롬2:5)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은 내 본성과 양심의 수고로 다른 사람에게 해주지 않으며 바르게 살아왔다고 고집 부려서는 안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라는 그 이유로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인 양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모습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비켜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나타난 하나님이 우리를 영접하신 그 자비와 사랑 안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랑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게 됩니다. 고집부리지 맙시다. 회개 없이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리라 스스로 믿지 맙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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