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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어린 왕 요시야(왕하22-23장) 이정식 201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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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기적>은 거창국제학교 함승훈 이사장이 홀로 두 아들을 키운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 빈자리를 간직하면서 두 아이를 양육했습니다. 자신이 35세였고, 5살 3살 아이 둘이 남았습니다. 선친의 교육철학이 '남자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본인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도르트문트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이들도 의학으로 유명한 헝가리 의대에 진학을 시켰습니다. '80%만 채워주자. 그리고 나머지 20%는 아이들 스스로 채울 부분이라' 생각했습니다. 함승훈 이사장은 자녀들에게 두 가지를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나는 지식입니다. 지식은 세상 어디에 가서도 굶어죽지 않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의사로서 외국어 3-4개 정도를 구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하나는 신앙입니다. 신앙은 어려움을 극복할 때 큰 힘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특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말할 수가 없어서 "엄마는 피아노 공부하러 다시 독일로 갔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자기 자신도 실감이 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더 이상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의 산소에 "네 엄마가 여기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큰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빠 난 엄마가 세 개로 보여. 오늘 간 산소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지금 여기에도 있어요. 하나도 안 슬퍼요." 다섯 살 짜리 입에서 어떻게 이런 기특한 말이 나왔을까요? 하늘이 낸 아들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35살에 첫 사랑을 잃고 그를 향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홀아비로 사는 아버지, 그리고 그 홀아버지 밑에서 양육받아 지식과 신앙을 겸비하며 성장한 두 아들, 모두 우리에게 격려와 도전이 됩니다.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가정사가 도리어 행복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 어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 만합니다.

   요시야는 8살 때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갈 나이에 왕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왕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요시야 왕은 단지 왕의 직무만 행한 것이 아닙니다. 요시야 왕은 39세에 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의 31년간의 통치 기간은 유다 역사에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왕들과는 달랐습니다. 첫 번째 비밀은 그의 어머니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댜야의 딸이더라"(왕하22:1b). 나이 어린 왕이 임금이 되면 대개 그 어머니가 섭정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요시야의 어머니 여디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기 아들이 왕으로서 견고히 설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왔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디다에 대한 기록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시야의 이후 삶을 보면 성경에 한 줄 흔적만 남겨진 어머니 여디다는 아들이 왕으로 담대히 설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온전히 세울 수 있도록 헌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아버지는 선대 왕 아몬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 왕의 기록 속에 아버지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습니다. 오직 어머니 여디다만이 요시야를 하나님께 바르게 자라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 어머니의 그 아들'입니다. 물론 부모님 두 분 다 신앙과 지식을 자녀에게 전수하며 헌신적으로 양육한다면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요시야 왕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22:2).

  우리의 자녀들도 기특할 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저 아이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왔을까' 할 정도로 감탄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사람의 바탕, 그 아들의 마음 바탕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단지 한 두 번의 기특한 행동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배우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경학교 아이들이 모두 그것을 진실된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정직할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직함'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함입니다. 영어로 정직함은 upright입니다. '위를 향해 올바르다'는 말이죠. 작년 헌아식 때 우리 젊은 부부들이 자녀들을 향한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배우기를 즐거워 하는 아이로 자라게 해주세요, 마음이 넉넉한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해주세요.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 등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네 좋은 기도입니다. 좀더 힘을 써서 요시야 왕을 본받아 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가 하나님 말씀에 정직히 행하는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

  물론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이렇게 순탄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남자에게는 동굴 속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동굴 속에 자기만의 공간에 있을 시간이 필요한 것같습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은 어떤 시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이런 걸 몰랐지만 사실은 우리는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의 공부나 생활을 일일이 간섭할 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부모들은 여러 가지를 다 챙기려고 합니다. 공부, 생활, 습관, 친구관계 등등. 아마도 우리의 많은 관심이 꼭 필요한 동굴 속 공간 엄마의 뱃속 같은 공간을 빼앗는 일은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큰 틀을 제시하며 우리 자신이 먼저 말씀 앞에 살아가는 겁니다. 어머니 여디다가 요시야를 교육할 때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요시야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속이 좀 상하더라도 세세한 간섭을 하기보다는 믿음의 큰 틀로 자녀를 인도합시다. 자녀들이 자기 엄마 아빠를 보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엿볼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도 하나님을 찾겠고, 또 하나님도 그를 찾으실 것입니다.

  어머니 여디다가 얼마나 요시야를 잘 교육하였는지 8년 만에 결실이 나타났습니다. 곧 16세 되던 해, 우리로 치면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대하34:3a) 그동안 왕의 업무와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여러 스승들에게 배웠을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사회, 경제, 문화, 군사, 외교, 정치, 윤리 등을 배웠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누구에게서 배우며 누구를 따라 살아야 할지를 궁금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16살에 드디어 찾았습니다. 내가 따라 가며 배우며 살아야 할 분은 한 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 곧 다윗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우쳤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으니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로 작정된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며 익혔습니다. 그리고 둘러보니 유다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여러 가지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4년 동안 그 실상을 낱낱이 조사하면서 자기 자신의 담력을 길렀습니다. '아, 내가 과연 이 나라 전체를 상대로, 제사장을 상대로, 레위인들을 상대로, 이 나라 정치인들을 상대로, 이 나라 기업인들을 상대로, 그리고 온 국민을 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인가. 내게 그런 담대함이 있는가.'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지 12년 곧,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어그러진 것들을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제 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 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대하34:3b). 왕의 종교개혁은 계속되었습니다.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 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서도 그렇게 행하여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대하34:4-7).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습니다. 혼란에 빠졌습니다. 많은 반대하는 상소와 시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요시야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세우려는 요시야의 마음은 더욱 확신 속에서 나아갔습니다.

  하늘은 돕는 자를 돕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십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73:27-28).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도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고 또 찾을 때, 하나님도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맡길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또 찾습니다. 예배자를 찾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하나님의 진심을 맡길 사람을 찾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요시야 왕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율법책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이 율법책은 선대 왕인 므낫세와 아몬 대부터 감추어졌던 것입니다. 사실은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토라를 버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를 찾으신 하나님은 율법책을 다시 보게 해주셨습니다. 힐기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그것을 주며 또 서기관 사반은 요시야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찾고 계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를 찾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나님의 진리를 맡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맡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충성된 일꾼이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은 돕는 자를 돕습니다. 여선지자 훌다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왜 이렇게 잘못되었는지를 율법의 말씀으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이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왕하22:15-17). 요시야 왕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탄력을 받아 더욱 속도가 붙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들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기로 선포하며, 이방 제사의 모든 상은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묘지에 뿌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집은 헐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 사무엘 선지자 이후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었는데 요시야 왕 때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대한민국은 윤리적인 회개가 필요하다고 교황 프란체스코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이키려는 중심에서 모든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유력하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적을 맞본 사람도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절망스러운 환경에서도 최고의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맡길 만한 사람입니다. 담대함으로 그 말씀대로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요시야 왕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요시야 왕의 인생의 중요한 전기는 출생(0세), 왕위(8세), 하나님찾고(16세), 종교개혁 시작(20세), 율법책 발견(26세), 유월절 지침(36세), 죽음(39세)입니다. 그런데 이 인생에 가장 중요했던 시기가 태어나서 하나님을 찾게 된 사춘기 시기까지였습니다. 어머니 여디다의 신앙교육이 있었고, 요시야가 하나님을 찾는 바로 그때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는 자녀들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는 학생들이 되기 원합니다. 누구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어린이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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