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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부활의 복음(막 16장) 이정식 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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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의 첫 머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입니다. 그 복음의 시작은 바로 마가복음 16장 끝에서 시작됩니다. 이 복음은 부활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부활은 창세 이후 예수님이 처음입니다.

  2009년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연꽃 씨앗이 발견되었습니다. 3-4m 지하에 있던 것인데 지질연구소에서 그 연대를 측정해봤더니 700년이 나왔습니다. 썩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피어나지도 않고 700년을 땅 속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함안 박물관측에서 이 연꽃을 발아시켜 보기로 했고 10개의 씨앗 중에 3개를 싹틔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별한 조건을 준 것도 아니고 일반 연꽃씨앗이 발아하는 데 필요한 진흙과 섭씨 35도쯤 되는 물 속에 둔 것입니다. 희귀한 일이라 '아라연꽃'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700년 만에 핀 아라연꽃을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맘모스의 DNA를 채취하여 수년 후에 살아있는 맘모스를 만든다고 해도 맘모스가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비유로서일 뿐입니다. 부활은 세상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빗대어 이해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처음 가져다준 사실입니다.

  처음 있은 그 부활이 온 세상에 기쁨이 되고 영원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죽음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죄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은 죽음에 사로잡힐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증인이십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기 때문에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감당하셨고, 고통 중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장례식을 하고, 무덤에 묻히기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신 죄를 담당하신 분이시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틀 동안 죽음에 잡혀 있었던 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답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처음부터 그분께는 죄가 없으셨고, 죄가 없는 분을 죽음이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류에게 복음을 선포하기를 "주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그러니 이 복음을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모든 창조세계에게 전파하라(막16:15)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마귀의 말을 듣고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생명에 대해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사람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생명 나무의 길이 막혔습니다. 생명이 막힌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5:17). 죄가 들어오고 죽음이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죽음은 모든 자연만물의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라 죄가 들어온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죄가 없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사는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봄입니다. 이 세상의 생명의 모습은 영원한 생명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도 이렇게 좋고 아름답고 소망이 있는데 그 참된 생명은 얼마나 기쁨이 되며 소망이 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이 이 세상에 열린 것이 복음입니다. 그 생명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찬양합니다.

  안식 후 첫날에 막달라 마리아와 여자들이 예수님께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 두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히 십자가 위에 죽으신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을 세마포로 사서 바위 속 무덤에 두고 돌을 굴려놓았습니다(막15:43-47참조). 아직 장례절차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염을 하기 위해서 향품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무덤으로 올라가면서 걱정거리가 무엇인가 하면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막16:3). 하지만 눈을 들어보니 이미 돌이 굴려져 있었고 그 돌은 아주 큰 돌이었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런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웬일인가 하고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무엇을 찾으려고 들어갔는가.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들어가 보니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저 사람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막16:6a). 여자들에게 직접 확인하게 했습니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b). 빈 무덤.

  청년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막16:7). 단지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복음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갈릴리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갈릴리가 어디입니까?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처음 제자들과 만난 곳입니다. 마가복음 1장 16-17절에 "갈릴리 해변으로 다니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하신 곳입니다. 처음 만난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는 처음 만난 곳이고, 실망해서 다시 돌아간 원점입니다. 실망한 채 예전처럼 그물질을 하던 곳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참된 복음,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원하셨습니다. 부활의 복음, 영생의 복음이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인류 역사는 6천년 동안 죽음에서 끝났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절대명제처럼 절대장벽처럼 서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말을 들은 여자들은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더라"(막16:8). 들었지만 입밖으로 어떤 말도 새어나오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주의 사자인 청년이 대신 전했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고 목사님을 통해서 대신 전해진 말이기 때문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또 다른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준 마리아입니다. 이 마리아는 좀 달랐습니다.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죽음을 비통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달려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자기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듣고도 믿지 아니"(막16:11)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단 한 사례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걸어서 자기들의 시골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마리아에게 들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제는 달랐습니다. 두 제자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막16:13).  빈 무덤을 본 여인들은 무서워서 말도 못했고, 다른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전했지만 믿지 않았고, 그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보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을 때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때로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친히 여러분과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기를 원합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b).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이것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고,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냐.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이 사람은 죽음의 세계에 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사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 앞에서도 소망 가지고 삽니다. 심지어죽음의 위협과 두려움에 떨어져도 "주여 내 영혼을 주님께 맡깁니다"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처럼 스데반집사처럼 그리고 수많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치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대신 죄 받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않으니 자기가 자기 힘으로 죄받는 것입니다. 대신 죄를 받으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죄에게서 해방되니 죽음에게도 해방됩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16:19).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라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막9:9)에서 처음 죽고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신 이후에 9장 31절에 다시 말씀하셨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면서 다시 말씀하셨고(막10:34),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14:28)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 그들에게 부활하신 후에 세 번이나 나타나셔서 보이셨습니다. 지금이 믿을 때입니다. 지금이 부활의 주님, 부활의 복음을 믿고 침례에 순종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믿음이었는가는 상관이 없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가지십시오.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고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고통들이 있습니다. 헤어지는 고통, 부모 없는 고통, 장애의 고통, 병마의 고통, 죽음의 고통 등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 시간들을 넘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로서라도 그 힘겨운 시간을 버티며 넘어가보는 것입니다. '세노야 세노야~' 하면서 노래합니다. 고기잡이의 어려움을 넘기려는 노래입니다. 이 세상의 노래들이 대부분 그런 노래들입니다. 그러나 고통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영혼을 힘들게 합니다. 소망 없이 살게 합니다. 생명 없이 살게 하는 것입니다. 방황하게 하고 취하게 하고 욕하게 하며 분노하게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도 이런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다른 것은 어떤 순간에든지 영원한 생명의 기쁨과 소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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