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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0일> 예수님의 인재선발과 양성(막3:13-19) | 이정식 | 2013-1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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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앓아야 하고 통과해야 하는 관문입니다. 전세계가 그 열기에 놀라워하는 수능이 끝났습니다. 학생들 많이 수고했고, 부모님들도 많이 애쓰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능에 애가 타 하는 이유는 그 시험이 한 사람의 장래를 가늠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수능을 통해 인재를 선발합니다. 더 좋은 인재를 선발하려는 대학과 거기에 부응하여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 학부모가 있습니다. 시험을 본 학생들은 듣기도 싫은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 상위 3%, 수능 상위 1% 안에 들면 어떤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숫자 놀음이 조금더 발전하고 있는데, 어떤 대학에서는 수능 상위 0.03% 안에 드는 사람은 교수직을 보장해주겠다고 합니다. 또 공부의 신이라는 한 사람은 수능 상위 0.01%에 드는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다 물 건너간 일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내가 그런 인재가 될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이 확 바뀌었을텐데' 하는 생각은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함께 서울대학교로 들어가 볼까요? 서울대학교에서는 교육의 세 가지 가치를 내세웁니다. 첫째, 행복한 배움의 터전이 되며 둘째, 새로운 학문적 가치 창조의 요람이 되며, 셋째 실천적 지성의 전당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하게 배우는 인재, 새로운 학문적 가치를 창조하는 인재, 실천적 지성을 가진 인재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를 위한 표어로는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공동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학생들을 모아서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공동체를 만들겠다니 만들어질 겁니다. 그러니까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인재들의 집합소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대학도 이에 뒤질세라 열심히 따라가겠지요. 과거시험을 보아서 인재를 등용했던 아주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더 나은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특목고는 어떻고 일반고는 어떻고, 과외는 어떻고 강남은 어떻고, 학원은 어디가 좋고 나쁘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도 인재를 선발하시며 하나님도 교육의 세 가지 가치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실 세 가지 가치는 첫째,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엡5:1-2)이며, 둘째 예수님을 닮는 사람(롬8:29)이며, 셋째, 거룩하고 흠이 없는 빛의 자녀(엡1:4,5:8)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깜짝놀랄 만큼 거창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귀에 잘 안 들어오실테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이루시고자 하는 세 가지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고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되며 거룩하고 흠이 없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따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서울대, 하버드대, 동경대, 옥스포드대, 베이찡대 세상의 어떤 대학 출신도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없고, 또 이 세상 대학의 교육 과정으로는 단 한 사람도 졸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하나님의 인재 선발 기준에 합격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인재를 알아보는 인재보다 더한 인재, '쉐프의 쉐프'가 있기는 하겠는지요?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전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서울 대전 부산 대구 광주 어디서도 중풍병자를 고치고 문둥병자를 낫게 하고 열병을 떠나게 하고 손 마른 병을 즉시 고치신 분을 보러 몰려왔습니다. 모여드는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베푸시는 놀라운 기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그렇게 병자를 고치시고 놀라운 일을 하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예수님은 다른 일,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제자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잠깐만요,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이해가 갑니다만, 사람들을 세워서 뭣하시려고요? 그냥 예수님께서 쭉 살아계셔서 하시던 일을 계속 하시면 안 될까요?' 이러고 싶은데, 예수님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제자들을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으로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처럼'입니다.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앉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가룟 유다, 이상 12사람은 앞으로!" 성경에는 굳이 이 사람들을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막3:13)이라고 했고, 일부 성경에는 "그들을 사도로 지명했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면면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 안드레는 형제인데 고기잡는 어부였고,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인데 고기잡는 어부였습니다. 마태는 세금을 거두는 세무소 직원이었고, 또 다른 야고보와 다대오는 분명한 직업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빌립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 얼마만큼이 있어야 할지 셈해보라고 했으니까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도마는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 않겠다고 한 걸 보니까 의심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는 길도 두드려보며 건너가는 사람이었지요. 가나나인 시몬은 열심당원이었으니까 정치적으로 꽤 열성이 있는 사람이었고, 가룟 유다는 셈에 밝은 사람이니까 좀 똑똑했던 것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학생이나 청년이 아니라 결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그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은혜를 입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주님께서 택한 사람은 이 열두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숫자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만 명의 헌신자를 단 300명으로 줄여놓은 기드온의 군대가 생각이 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들 가운데 최고의 인재가 누굴까요? 대충 생각해보아도 좀 더 배운 것같은 빌립이나 도마, 가룟 유다나 마태 정도 될 것같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0.01%의 인재는 누구였는가 하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고 이들은 모두 어부였습니다. 세상 인재 선발 기준에 비추어 보면 단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아! 그러니까 예수님은 요즈음 하는 이야기로 최고의 인재를 뽑아 보통 인재로 만들어내는 분이 아니라, 보통 사람을 선발하여 최고의 인재로 만들어내시는 교육 철학을 가지신 분이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최고의 인재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본받는 인재, 예수님을 닮는 인재, 거룩하고 흠이 없는 빛의 자녀로 사는 인재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12제자의 면면을 보면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같습니까? 사람이면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안 될까요? 아닙니다.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타고난 어떤 충성된 인격이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람이면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약하고 천한 사람이라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사람이면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구원을 얻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런 인재를 어떻게 만들어가시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인재 양성 비법의 첫 번째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는 것입니다(막3:14).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기업에서 후계자를 세울 때도 먼저 일을 경험하게 하고, 선대의 회장의 가르침을 배우며, 하는 일에 함께 수행하는 것을 봅니다. 탁월한 쉐프가 되려면 먼저 된 유명한 쉐프와 함께 생활하기도 하며 가르침을 배우며 함께 다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축구선수가 되기 원한다면 유명한 팀에 입단해서 거기서 먹고 자고 가르침을 받고 함께 배우는 것입니다. 뭐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소질이 있는 것이 눈에 띄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똑같은 인재 양성 과정이지만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함께 하시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이어도 예수님과 함께 하면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됩니다. 배운 게 적어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그는 지혜자요 명철한 사람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인재는 소질을 보지만, 예수님의 일은 소질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의 일을 할 때는 소질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소질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대항하실 때 말씀을 가지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합니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도 죄인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권위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가르칠 때 주께서 하듯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태권도장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태권도는 대한민국 스포츠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무도입니다. 그런데 전국에 9천 개까지 성장했던 태권도장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태권도계가 어린이 수련생을 대상으로 성장한 것에 있었습니다. 태권도 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과 부족한 학교 운동 교육까지 담당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성인이 되면서 아니 중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대부분 도장을 떠납니다. 그러니 계속 유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무술 연마의 방식을 다 버리고 유소년들의 특별 체육 프로그램, 심지어는 놀이에 가까운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예가 전수되고 연마되려면 원생들이 무예와 함께 해야 합니다. 무술이 어린이에게 가까워지면 그건 무술이 아니라 오락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이 하는 말이 '미래 세대를 위한, 다음 세대를 위한'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곳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말을 미워합니다. 교회는 자기 세대, 바로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관입니다. 그것이 온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이 전수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태권도장 같은 방식을 쫓아가면 결국 교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떠나고 결혼을 하면 떠나도 되는 곳쯤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내 일생에 예수님과 함께 행하며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 곳입니다. 잘 보십시오. 예수님의 12제자는 모두 성인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은 안 된다 청소년은 안 된다 청년은 안 된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그만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전인격적이며 한 인생 전부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17일날에 시제를 가야할까요 예수님과 함께 해야할까요. 예수님의 두 번째 인재 양성법은 전도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며"(막3:14b). 제자가 하는 일은 스승의 도를 배워서 그것을 다시 전하는 일입니다. 전도는 도를 전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도는 어떤 도입니까? 이때는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입니다. 예수님의 도는 이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리 인생이 잘 풀리고 평안할꺼야 뭐 이런 게 아닙니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사람치고 잘 된 사람 못봤다. 뭐 이런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도는 우리 영과 혼을 향해 우리 심장을 향해 정통으로 말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어두운 데서 행하던 삶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기이한 빛의 삶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떠나 성령의 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옛 성품을 벗어버리고 새 성품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 산 자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난 달에 우리가 전도를 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닌 것을 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사람 만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로 만나려고 하면 벌써 마음을 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전할 만큼 내 삶이 부끄럽지 않은가' 올바른 질문이며 정직한 마음의 소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살 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나가려 할 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정신은 살짝 긴장이 되며, 평소에 그렇게 술술 나오던 말도 말문이 잘 터지지 않습니다. 첫 마디 꺼내는 것이 그렇게 신경쓰일 수가 있을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생활이 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시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는 경험도 합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케 되며 대담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뒤로 숨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갑니다. 초등학교 동창들이 밴드를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일인데 산에 가는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아침에 비가 온다길래 제가 썼습니다. "예배하기 딱 좋은 날이다" 관심이 없습니다. 더 열심히 산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구는 누구차를 타고 가고 그러면 어디에서 기다리라는둥, 누구 집에서 닭을 세 마리를 잡는다는 둥, 정식아 우리끼리 재미나게 가서 미안하다 따뜻하게 입고 일 잘해라는 둥 야단들입니다. 산에 안 가도 재미있습니다. 옛친구들하고 추억담을 나누는 것도 즐겁지만 그렇게 한들 무슨 낙이 있습니까. 조금 불편해도 분위기 조금 어색해도 계속 현재를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높은 산에 아슬하게 걸린 구름다리를 타야 스릴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전도지를 한 장 들고 나가기만 하면 스릴을 맛봅니다. 동시에 내 영혼이 정결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기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전도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본받게 하고, 예수님을 닮게 하고, 거룩하고 흠없는 빛의 자녀로 살게 합니다. 천상천하에 없고 그 어떤 교육기관도 이룰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의 인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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