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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현실을 이기는 기적(막1:21-45) 이정식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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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라는 말은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를 뜻합니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힘들 때 우리는 꿈을 꾸고 소망을 찾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 그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거기에 적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꿈과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꿈과 소망은 어딘가 천리만리 깊은 마음 속 어느 한 켠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한강의 기적이 많은 약한 나라들에게 소망을 주듯이 기적은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줍니다. 기적이라는 영어 단어 miracle은 라틴어 'mirari'에서 왔는데, 이 말의 뜻은 '놀라다'입니다. 기적은 현실의 한계나 기대를 넘어서는 일로, 사람을 놀라게 만듭니다. 기적은 상식을 무릎꿇게 하고 합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적 속에 산다는 말입니다. 기억합시다. 사람의 일상은 현실로 채워지지만 하나님의 일상은 기적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며 섬기는 이유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제자4명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셨는데 그때가 안식일이어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보통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서기관들인데 이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말씀을 전할 때는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자 이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말씀의 권위가 상식을 뛰어넘는 신적인 말씀이어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귀신은 더러운 영(unclean spirit)입니다. 더러운 영이 그 사람을 주관합니다. 머리는 산발한 채 오랫동안 감지 않았고 옷은 한 번도 갈아입은 적이 없는 것처럼 너덜너덜하고 얼굴은 씻지 않아 땟국물이 흐르고 입으로는 중얼중얼하며 대상없이 욕하는 '미친 사람'입니다. '신이 계시다면 왜 저런 사람을 만드셨을까' 할 정도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 예수님은 그 사람을 지적해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더러운 영을 견디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영은 영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신 이유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멸하러 왔습니까" 요한일서 3장 8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숨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던 귀신이 딱 걸렸습니다. 마귀와 더러운 귀신은 모두 영인데, 하나님께로 쫓겨난 영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었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1:25)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더러운 귀신에 끌려 미친 사람으로 살던 사람이 일순간 제정신이 돌아와서 조용히 앉아 있게 된 것입니다.

  서기관들이 말씀을 전할 때 이 사람은 회당 바깥에서 늘상 중얼중얼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매 안식일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중얼거리는 그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능은 그 현실을 바꾸어놓았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내어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을 본래대로 회복시켰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이는 권위있는 새 교훈이다"하며 놀랐습니다. 이 일은 소문이 되어 삽시간에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

 

  2. 예수님은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열병은 죽음의 병이었습니다. 헬라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도 33세에 열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로마 황제 디도(티투스)도 황제의 자리에 오른지 2년 만에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당시에 열병은 오늘날 암처럼 생각되는 병이었습니다. 아무도 이 현실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오늘 내일'한다고 이웃 사람들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좀전에 더러운 귀신을 좇아내셔서 미친 사람을 제정신 있는 사람으로 돌려놓으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기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소문과 함께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손을 만지시고 일으키셨습니다. 그러자 성경은 쓰기를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 라고 했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은 내렸어요 하지만 여전히 기운은 없어요. 다음에 오시면 대접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볼이 벌겋게 되고 온몸이 불덩이 같이 달아오르며 목구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오한도 있었을 것인데, 그 모든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열병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의 기력도 즉시 회복되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기까지 했습니다. 의사들이 하는 말처럼 '6개월 항암치료 받고 식이요법도 병행하시면 회복될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은 단지 좋은 말씀을 듣고자 하거나 사람의 위로를 들으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의원이라는 의원을 찾아다녔어도 돈만 허비하고 병은 고치지 못해서 고생하던 사람들이 옵니다. 점을 쳐도 안 되고 용하다는 무당을 모셔놓고 푸닥거리를 해보아도 해결이 안 되어서 고민이 깊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기도 합니다. "날이 저물어 해가 질 때에"(막1:32a)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몰려온 것입니다. "온 도시가 함께 (예수님 계신) 문 앞에 모였더라"(막1:33) 시청 앞에서 월드컵 응원하기 위해 모여들듯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려고 몰려들듯이, 12시 땡하는 순간 자판을 두드려서 선물로 패드를 장만해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듯이. 

  그 다음날에는 "모든 사람이 주를 찾"(막1:37)았습니다. 일상 속에 소망을 찾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낀 사람도 찾아옵니다. 잘 살고 있는데 문제 없지는 않다고 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집안에 우환이 거푸 겹쳐서 낙담된 사람도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고치시는 은혜와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든 삶에는 기적이 필요한데, 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입니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고 해서 모두 부요한 믿음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듣는대로 은혜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도리어 파리해질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병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누가 필요합니까? 무엇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의 권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한 나병환자(곧 문둥병자, 한센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를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막1:40). 이 나병환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대단합니다. 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대접받습니까. 그들은 일반사람들과 격리되어 살게 됩니다. 전국의 곳곳에 나병환자들의 촌락이 있습니다. 소록도도 그렇고 울산 시레8반이라는 곳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줍니다. 손이나 코, 발가락 등 몸의 일부가 함몰되어 없거나 썩어 문들어져 있습니다. 오늘날도 약이 없습니다. 더디 진행되게 하는 약은 있어도 완치되게 하는 약은 없습니다.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인 조건이 큽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병환자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변화의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이게 현실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천형(天刑)이라 생각합니다. 나병환자 시인 한하운이 나병수용소로 가면서 지은 시입니다. '보리피리 불며/봄언덕/고향 그리워/피-ㄹ닐리//보리피리 불며/꽃청산/어린 때 그리워/피-ㄹ닐리//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피-ㄹ닐리//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눈물의 언덕을 지나/피-ㄹ닐리'

  성경에 나오는 이 환자도 그럴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꿈도 못 꿀 말을 예수님 앞에 쏟아놓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것같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더러운 귀신도 쫓아내신 권능을 가지신 분, 죽음의 열병도 쫓아내신 분은 이 천형같은 나병에서도 저를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무슨 한맺힌 응어리를 푸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풀이를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죄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병과 죽음이 들어오기 전의 온전한 상태로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이 가기도 싫어하는데,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시며 말씀하기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막1:41). 성경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 진지라"(막1:42). 예수님이 원하시면 나병도 고칩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면 귀신도 쫓겨가고 죽을 병도 떠나고 천형같은 나병도 낫게 됩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어그러진 것을 고치며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현실을 이기시는 주님이 내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하여 이전에 그렇게도 억눌렸던 세상 모든 짐에서 해방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라는 뜻입니다. 입만 열면 욕하고 험담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축복하는 말을 합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던 사람이 나서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의심 많은 사람이 신실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현실을 뿐입니다. 그 현실 속에 마음이 눌려서 사는 이유는 그 마음 속에 현실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지선은 예쁜 대학생이었습니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몸 전체 55%가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살아난 게 기적이었지만, 치료받는 동안에는 사는 게 고통이었습니다. 그래도 원래 얼굴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해서 계속 묻습니다. '정말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이지선은 말합니다. 유복할 때에 감사치도 않은 교만한 인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고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일이 둘입니다. 처음 태어난 날, 그리고 사고를 만난 날..." 이지선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지 마세요 다들 찬양할 때 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잇몸이 다 내려앉을 것같이 당기는 턱 때문에 도저히 입을 벌려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누구보다 큰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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