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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6일> 때가 찼습니다(막1:12-20) | 이정식 | 2013-10-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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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판하실 때가 찼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로버트 귤리히에 따르면 이 문장은 "the appointed time has come to pass, The Kingdom of God has come in history. Repent! Believe the gospel!"로 영역됩니다. 헬라어로 '엥기켄'은 '엥기조'(다가오다)의 현재완료형 시제입니다.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막 도착했다'라는 뜻이 강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닥쳤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심판이 함께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걸인으로 변장한 이몽룡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상 앞에서 "금잔의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고기는 만 사람의 기름이다.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또한 높다"(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性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 칼을 쓴 춘향이가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함성과 함께 장정들이 뛰어들어옵니다. 기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양반들은 상 밑으로 머리를 쳐박고 벌벌 떱니다. 남원부사 변학도는 오줌을 지리며 벌벌 떨고 있습니다. 치도곤을 맞으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려보지만 결국 압송당하고 맙니다. 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어사 출두 장면은 실제 출두 장면과 다르지 않습니다. 박래겸이라는 사람이 평안남도 암행어사로 나갔습니다. "어사 출두요!" 하고 외치니 "사람들이 두려워 마치 바람이 불어 우박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같았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마패를 보여줄 때에는 군졸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암행어사라고 하면 울던 손자도 울음을 뚝 그친다고 했습니다. 난리통에서도 건짐을 받은 사람은 오직 춘향이 한 사람입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서로의 정표인 가락지를 맞출 때에는 그토록 그리던 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모든 위협은 사라지고 기쁨과 감격을 얻습니다. 한 회사원의 고백입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서, 내가 좀더 야생적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리 저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나의 감정에 솔직해 지려 하고, 회사 내부, 외부 변화에 민감해 하는 등... 동물적인 감각으로 날 선듯 책상에 앉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바로 내가 '들짐승'이 된 것이다. 긴 시간동안 '집짐승'처럼 지내왔던 내가 울타리를 벗어나 야생에 나오게 되니, 규칙, 룰, 경계 그 모든 게 사라지게 되니, 생존의(이라는) 단어가 현실임을 깨닫고, 환경에 나를 맞추어가야 하는 본능과 속도가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규칙 룰의 경계가 없는 이곳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고 내 스스로 힘을 기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게 된다." 계속되는 고민과 대응 속에 있다보면 드디어 전에는 결단할 수 없었던 것을 결단합니다. "집짐승에서 벗어나 들짐승이 되니 두려움이 바로 옆에 있지만 두려움이 친근하고 익숙하다. 두려움과 친근해질 수 있는 본능이 앞으로 나의 가장 '단단한' 무기가 될 것이다."(네이버 블로거 azure1236).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정리해보면 '단언컨대 나는 생존을 위한 들짐승이 될 것이다'가 될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쿨한 직장인, 세련된 신사가 될 준비를 마친 이 사람은 광야로 몰려간 사람입니다.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모든 선한 법이 무너진 곳입니다. 광야는 오직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오직 생존의 법칙과 생존을 위한 말이 가장 필요한 곳입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행동요령만이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그곳은 어두운 곳입니다. 그곳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들여지지 않은 들짐승들과 마주하는 곳입니다. 한 번의 결정적인 선택이 사는 길이 되기도 하고 죽는 길이 되기도 하는 곳입니다. 이 회사원은 온실에서 벗어나 현실을 깨달았으니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철이 든 것같지만 그 자신이 세상이 되었고 세상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부터 말세는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때 그가 들어야할 말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닥쳤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새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으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복음이 되시기 앞서서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울타리가 없고 법이 없이 생존만 있는 그런 광야에서 예수님은 40일 동안 주리셨습니다. 들짐승이 있는 광야에서 힘을 쓸 수 없을 만큼 주리셨을 때, 마귀가 유혹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온몸이 오직 생존을 위해 민감하고 육체의 정욕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b). "교회에 간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교회 온다고 밥이 나오고 떡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씀이 나오는 곳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육신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짐승이 되기를 선택하는 곳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서셨습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길이요, 주 예수께서 가신 길은 생명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마귀는 또 한 번 유혹합니다. 거룩한 성 꼭대기로 데려가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4:6). 이번에는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합니다.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시91:11-12) 하나님의 하신 말씀이 진실인지 아닌지 다루어보라는 것입니다. 시험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6장 16절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신6:16) 하나님은 순종으로 대할 분이지 시험당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안목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여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영혼이 죽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로 마귀가 유혹하기를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 이르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그 말을 하는 자가 누구인지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마4:10a).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6:13) 하였느니라"(마4:10b). 아담은 유혹하는 자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뱀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정확히 아셨습니다. 너는 사탄이라. 너는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라. 너는 하나님께 교만한 자라. 예수님은 이생의 모든 자랑에서 자유케 되었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섬겼습니다. 들짐승조차도 그분의 발 앞에 그 입을 다물었고 그 발톱은 겸손해졌습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막1:13b).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따라갔던 마귀의 길은 멸망길이니 그 길을 따르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따르라. 그 길만이 생명길이다. 그러니 그 길을 열어주신 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길만 열어놓으신 것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시고 이기셨으니 더욱 복된 소식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라야 여유도 있고 문화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말씀대로 이루어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경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을 하는 자는 네가 아니라 사탄이라고 하십니다. 오직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막1:14a)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침례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하러 와서 외쳤고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막1:4)를 전파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준비한 자가 잡혔습니다. 친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침례요한이 잘 말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요한이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눅3:15) 요한이 대답하기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요3:28). 마음 수련이 그리스도신가,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그리스도신가, 뇌를 깨우는 것이 그리스도신가, 깊은 생각과 묵상이 그리스도신가... 그리스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가 아닌 모든 것은 쇠하여야 합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참빛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복음'(막1:14)을 전파했습니다. 때가 찼다. 도토리 떨어질 때가 찼다. 추수할 때가 찼다.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는 주님께서 오셔서,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태우실 주님이 오셨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b).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닥쳤다는 것을 믿고 뜻을 돌이키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 말씀을 들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로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두말없이 기록하기를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자기 생업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많은 돈벌이가 있는데 나와 같이 하자'고 새로운 사업을 권유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런데 냉큼 따라나섰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응답할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어부의 손놀림을 익숙하게 하면서도 늘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그리스도가 뭘까' 하는 질문입니다. 기쁨과 평화, 감사, 거룩함은 어디서 올까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열심히 용쓰다가 죽고 마는 이것에서 우리를 영원히 건져낼 것이 뭘까 궁금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이미 요한의 제자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36).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요1:38)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네 주님, 우리가 주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요한을 따라다니면서도 늘 궁금했던 그분이 찾아온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죄와 어둠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어부가 되기 전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야고보와 요한은 먼저 자기들이 건짐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그분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요15:22,24). 세상 모든 사람이 야수로 살기를 선택하고, 점점 더 들짐승이 되기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지금은 응답할 때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수많은 핑계거리를 가지고 올 수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발견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마음을 보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응답하십시오.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겠다고, 주님 가신 길을 따르겠다고 응답하십시오. 우리의 첫 응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속에 주님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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