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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거룩한 시작을 위하여(막1:1-11) 이정식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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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양반의 종교가 무엇이냐?" 한 여성지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한마디로 대답했습니다. "쇠(鐵)죠". 쇠가 종교만큼 인생의 전부를 차지했던 사람, 그는 故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입니다. 1970년 4월 1일 오늘날 포스코(포항제철) 착공식에서 박태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귀한 선조의 피값으로 시작한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몇 사람의 사표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우향우' 하여 동해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한다." 그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등소평 주석 일화가 유명합니다. 등소평 주석이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소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이나야마 회장은 "제철소는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짓습니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습니까?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으면 포항제철소 같은 제철소를 지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회장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토와 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박태준 회장. 그의 네 가지 좌우명은 "무엇이든지 세계 최고가 되자" "절대적 절망은 없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설계하라"였습니다.

   강철같은 사람 박태준에게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1977년 포항제철에 입사했고 그날부터 박태준 회장의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992년 박태준과 함께 방콕의 수상시장을 돌던 때, 떨리는 마음으로 복음의 '4영리'를 전했습니다. 기도와 더 많은 이들의 중보 속에서 19년만에 이 강철같던 남자의 마음의 빗장이 열렸습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아무런 재산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박태준 회장은 다다미방 한 구석에서 이 그리스도인의 눈물로 쓴 전도 편지를 읽었습니다. 비록 불 가운데 구원을 받았지만 고 박태준 회장은 소망교회를 다니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 부부를 교회로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쇠와 조국이 전부였던 사람이 주 예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거룩함은 우리 마음의 깊은 소원입니다. 거룩함이 없는 사람은 길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 앞에서 머리를 숙인다고 해서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지시에 따른다고 해서 그를 존경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설령 그분을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전부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 이해가 맞고 자기 목적에 합할 때 따르며 예우해줄 뿐이죠. 한편, 어록을 남길 만하고 삶의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 중에 스스로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 중에 스스로 거룩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몇 가지 삶의 모습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 자체로 거룩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참된 소망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거룩함의 소원을 이루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우리의 소망이요 길이요 진리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거룩한 자"일 뿐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2:11).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십시오!

  예수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왔습니다. 아담이, 에녹이, 노아가, 아브라함이, 모세가, 엘리야가, 예레미야가, 이사야가, 다윗이 왔습니다. 이들 중에는 선지자도 있고 제사장도 있고 왕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가장큰 사람이라고 칭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침례 요한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7:28). (1)요한은 그는 나실인의 율법을 따라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 대지 않았고, 머리를 깎지 않으며, 세상과 짝하지 않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술이 있어야만 하는 모든 일들로부터 구별되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모습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막1:6)고 지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초라하고 볼품없는 행색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제도권 속에 들어오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준비를 했습니다. (2)요한은 다른 선지자가 오리라고 예언한 사람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막1:2a). 선지자 중 단 한 사람도 다른 선지자에게 소개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3)마지막 6개월 동안 그는 광야에서 모든 이스라엘과 유대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치는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외쳤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막1:5). 그는 입증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4)심지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만났고 침례를 주는 복을 받았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막1:2-3). (5)침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제사장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태어났고, 그 이름 요한도 천사가 주신 이름이고,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했고,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태어났습니다(눅1:13-15). 많은 사람이 요한의 태어남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눅1:14). 또 구약 선지자 중에 가장 능력있었던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눅1:17). 이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 그가 말하기를,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막1:7)고 했습니다. 그렇게 큰 사람 침례 요한이 자기를 바짝 낮추기를, 나는 종일 뿐이며 주인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물러꺼라"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는 사람이 먼저 앞서서 옵니다. 대통령이 지나갈 때는 반경 안의 도로 전 구간이 사전에 통제되고 모든 신호등은 점멸등으로 조정됩니다. 지나가는 그 일대에서는 휴대전화도 쓸 수가 없습니다. 방해전파를 쏘기 때문입니다. 민방위 훈련할 때에야 '생업이 바쁜데 왜 이러냐'고 불만할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이 지나간다면 멀리서라도 그 장면을 보고 싶어합니다. 침례 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막1:7).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온 것은 어떤 사람의 전도로 왔습니다. 친구가 좋아서 왔습니다. 말씀이 좋아서 왔습니다. 집에서 가까워서 왔습니다. 축복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녀서 습관적으로 왔습니다. 다른 곳을 찾기 귀찮아서 그냥 옵니다. 마당과 상수리나무에 정들어서 왔습니다. 교회 빚이 없다니 왔습니다. 헌금을 강요하지 않아서 왔습니다. 만만해서 왔습니다. 너무 크지 않아서 왔습니다. 문제 해결을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쉴 곳을 찾아서 왔습니다. 인정이 좋아서 왔습니다. 수많은 이유로 교회를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그것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제 주인이기 때문에 왔습니다."

  쇠와 조국은 한 사람의 전부를 바칠 만한 것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쇠(鐵)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쇠는 우리를 전념시킬 수는 있어도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침례 요한이 주는 침례로 죄를 고백하며 회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로부터 깨끗케 될 수도 없고, 거룩함을 입을 수는 더욱 없는 것입니다.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모짜르트 베토벤 같은 사람에게 음악은 그의 전부가 됩니다. 하지만 음악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고흐같은 사람에게 그림은 그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전도사로 탄광촌에서 일하기도 했던 목사지망생이었지만, 결국 그의 생의 불꽃은 그림에서 불살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분부하신 일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헌신케 한 것이 그림일수는 있어도 그것이 그의 그리스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분!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과 모든 만유의 주인 되신 분, 그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람의 아들 중에 가장 큰 자인 침례 요한이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분입니다. 침례요한의 탄생은 극적입니다. 자식이 없었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이 의심스럽게 태어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은 예수님이 유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자이셨으니 XY염색체를 가지셨지만 남자의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침례요한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침례요 물로 침례를 베풀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침례요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십니다. 침례 요한 앞에서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침례였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알곡은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불로 사르는 침례였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침례받으시러 오셨습니다. 침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께 내려왔습니다. 하늘이 갈라진 일은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뿐입니다. 창조주께서 사람이 되셔서 그 사랑의 뜻을 이루려고 하실 때 피조물인 하늘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하늘은 창조주의 피조물인데 기꺼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b).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인 침례 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눅1:14)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내가 기뻐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분이었습니다. 또한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인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사자요 종으로 쓰임받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침례받으실 때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 삼위일체께서 하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침례요한은 말했습니다.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요3:30). 다시 말했습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요3:28)

  퓰리처 상 수상작 가운데 베트남 전 사진이 유명합니다. 전쟁의 폭음이 들려오는 한 가운데 총을 멘 군인들 사이로 도로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벌거벗은 여자아이 사진입니다. 울고 있습니다. 자기 손을 잡아줄 부모님도 형제도 잃어버렸습니다. 다다미방에서 눈물로 쓴 편지를 읽고 있던 거함 박태준의 마음이 그 소녀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요? 평생을 들여 조국 근대화를 이루고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룩한 그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여러분 자랑스러운 포항제철소가 있지만, 그 쇠를 다 떼내어 사다리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모든 인생을 투자한 쇠 사업이지만, 그 쇠가 하나님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에게 구원이 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두 번 받으셔야 했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받으신 것은 요한이 준 침례가 아닙니다. 요한이 준 침례는 앞으로 주께서 하실 일을 친히 승인하신 일일 뿐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그분은 그 몸으로 침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49-50). 모두가 세상 속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을 쫓아 자기 소견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따르지 않고 죄악 중에 살아가며 거짓말 하는 마귀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오셔서 기적을 베푸시고 말씀으로 교훈하셨어도 그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없으신 주님께서 세상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림의 침례를 받으시는 생각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예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받으실 때는 하늘이 갈라졌지만,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흘리셔서 죄의 값을 다 지불하시고 나면 세상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을 땅에 던지시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과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12:51-53). 십자가에서 받으신 침례는 세상을 심판한 침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죄를 심판하심을 알고 자기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온 하나님의 자녀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마귀의 자녀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같은 집안 식구라 하여도 섞일 수 없습니다. 한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 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께서 미리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침례는 아담으로부터 생긴 죄의 결박을 푸는 날이며, 모든 불순종의 역사가 심판받는 날이며,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 마귀가 멸망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임이라"(요3:18). 누가 여전히 죄악의 날을 누리려고 한단 말입니까. 누가 날마다 심판의 날이 되게 한단 말입니까. 죄값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형벌, 영원한 고통, 영원한 답답함을 어찌 견디려고 한단 말입니까. 거룩하지 않은 모든 자는 죄인입니다. 거룩함을 입지 않은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례 요한 앞에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침례받으러 나왔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침례 요한조차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다"(마2:5-12참조) 능력 많으신 이가 침례 베푸실 때에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2:12b). 내 속에 죄악됨이 불탐이 없이, 내 속에 죄된 행실이 자백됨이 없이, 거룩함이 없는 내가 심판받지 않고서야 어찌 거룩함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2:11). 그러므로 전에는 나의 근원이 마귀였고 마귀가 나의 아비였으나,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후에는 나의 근원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시작을 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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