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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학2:20-23) 이정식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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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힘이 있을 때에도 은총을 입고 힘이 없을 때에도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어릴 때에도 은총을 입고 나이 들었을 때에도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잘 모른다고 무시당하기만 하다가 나이가 들면 힘이 없다고 자리만 덩그라니 차지하게 한다면 슬픈 일입니다. 어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을 묻고 영적인 질문을 하는 아이라면 얼마나 대견합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름다운 백발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날 동안의 간증을 들려준다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때와 상황에 맞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맡아야 할테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총마저 물릴 필요는 없습니다.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 가문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베푸셨습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2b-16). 이 은총과 축복이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무엘하 7장 1-2절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7:1-2) 이때에 처음 성전을 지을 생각을 품었고, 그때 하나님은 영원한 다윗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난 스룹바벨은 그 언약을 약속받은 사람입니다. 은총 아래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은총'을 입을 터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솔로몬 이후 곧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고 모두 우상을 섬기는 길로 급히 나아가고 말았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렘22:2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렘22:24-25, 30).스룹바벨은 자기 직전 조상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고니야가 왕일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다윗 가문에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고 하신 말씀이 스룹바벨에게 임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스룹바벨은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 중에 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방해세력들의 대대적인 공작으로 15년 동안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스룹바벨은 낙담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실의에 빠졌습니다. 모든 백성들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모두 자기 일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사람들은 자기 일에 성공하였고 아름다운 이름을 얻기도 했을 것입니다.

  찬양사역자 박종호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와 선화예고 동기동창입니다. 예고 전체에서 장학생은 단 두 명이었는데 박종호와 조수미였습니다. 박종호는 서울대 음대 역사상 4년간 실기점수를 all A로 졸업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성악가로 성공하기 위해 준비하던 이태리 유학 한 달을 앞두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기대, 아니 대한민국 성악계의 모든 기대, 파바로티와 도밍고, 까레라스가 될 수 있었던 길을 접고 찬양사역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헌신한 박종호가 그 내면의 갈등을 고백했습니다. "조수미를 보며 비교당할 때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날마다 하나님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분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왜 하필 조수미와 동기동창이었을까요? 조수미가 성악가로서 세상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박종호는 오그러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합니다. '왜 그날 내게 하나님을 알게 했을까. 좀더 나중에 알려주셨으면 안 되었을까. 성악가로서 꽃을 피운 후에도 찬양할 수 있지 않은가.' 조수미가 성악가로서 대성공을 거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콘서트를 하는 것을 상상했다면 더없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다가 그런 생각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성악가의 길을 걷고자 뉴욕에 갔습니다. 그런데 오디션을 하루 앞두고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회복하던 중에 병원 침상에서 만든 곡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조수미와 박종호의 성악가로서의 실력차이는 너무 많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박종호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쓰임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찬양으로 지금까지 쓰임받고 있지만, 인생의 모든 야망과 장밋빛 소망을 꺾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드려진 그의 삶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의 시인이 더 탁월한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씁니다. 하지만 시인으로서는 그때부터 조금 약해집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낮아지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먼저 배우게 된 것, 그리고 내 삶의 고난과 고민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찾게 된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예수를 닮으며 살게 된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이를 어찌 잠깐의 콘서트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스룹바벨은 유다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지휘감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지휘하고 감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먼저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한 것은 아닙니다. 15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을 때 스룹바벨은 그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상황을 새롭게 하여 다시 성전을 재건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지자 학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다시 일어났습니다. 15년 동안 스룹바벨은 무슨 일을 했을까요. 일반 행정 업무와 정치적인 업무를 했을 것입니다. 그 일에 열심과 충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일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잘못된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일상 업무를 감당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아닙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일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스룹바벨이 선지자 학개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같이 여러분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저를 쓰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삼하7:5b-7) 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왕상8:12-13)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는 말씀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17:24-25)고 하셨으니 스스로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학1:4)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여섯째 달 초하루에 시작해서 전 공사가 시작된 것은 여섯째 달 24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여 23일만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일곱째 달 21일에 두 번째 말씀이 임하였고, 아홉째 달 24일에 세 번째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이 마지막 말씀은 24일 같은 날에 임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학개의 말씀을 받은 지 석 달이 채 못되어 이 말씀과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5년 동안 중단되었던 공사가 단지 3달 만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시작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왜 그렇게 시작하게 하셨나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셔서 이스라엘을 축복의 사람으로 쓰시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두 번째이었지만, 하나님께는 이스라엘이 첫 번째였습니다. 하나님은 제한받지 않으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어도 본래부터 영광이십니다. 그런데 성전이라는 건물에 스스로 제한하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성전을 짓는 데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영예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은총이 스룹바벨에게 임하였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signet ring)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23). 앞선 선조 고니야로 인하여 다시는 왕위에 오를 자가 없으리라고 저주하셨던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순종하니까요. 그보다 더욱 먼저 체결하신 다윗 언약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 것처럼,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스룹바벨을 기뻐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인, 하나님의 인감도장처럼 쓰시겠다고 했습니다. 듣지 않아서 저주받았지만, 순종하니까 은총을 입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늘 우리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미련을 이해하시고, 박종호 집사의 고민을 헤아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순종케 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그 까닭을 말씀해주십니다.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자를 엎드러뜨리니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학2:21-22). 세계 열강 가운데 우열을 다투던 만국이 엎드러질 것이니, 그 나라를 세우는 데 모든 에너지를 바치지 마라. 그들 중에 내분이 일어나 멸망케 될 것이니 그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수많은 사람들이 가치있게 여기는 그것은 마지막 날에 진동될 것이며 흔들릴 것이다. 세상 나라의 권력과 왕좌는 엎드러질 것이다. 그 모든 가치를 지탱해주는 국가의 정권도 멸망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안위를 든든히 보장해주던 군대들이 내분 속에서 엎드러질 것이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저주가 멸망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총이며 평화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 세상이 못박히고 하나님의 의는 영원히 사셨습니다. 고니야의 저주 속에서 태어난 스룹바벨이었지만, 학개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다윗의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저주가 있느냐 못된 과거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의 영원한 은총을 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로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스룹바벨이 되기로 작정하십시오.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자에게 은총을 입혀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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