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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그러나 오늘부터는(학2:10-19) 이정식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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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을 해보다가 잘 안되면 '어떻게 좀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하고 어떤 비결을 찾게 됩니다. 이 책 저 책을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배우기도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다 이마를 탁 치면서 허망하게 깨닫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건 깨달았다고 하는 그 비결이 자기도 전부터 다 알고 있던 해답이었을 때입니다. 이를테면 '한 우물을 파라 끝까지 파라' 이런 해답같은 것이죠. 영어 문장을 해석하다가 실망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언제냐 하면 다 아는 단어고 문장도 쉬운데 해석이 안 될 때입니다. 어려운 단어 복잡한 문장을 해석하지 못하면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아는 건데 왜 해석이 안되지?' 할 때는 기둥에 머리를 찧고 싶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질문으로 물어올 때 대답하지 못하는 건 '어려우니까~' 하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아는 걸 질문할 때는 '이거 분명 무슨 뜻이 있는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명백해서 생각할 여지도 없는 질문도 있습니다. 엄마들이 묻습니다. "너 니가 알아서 숙제한다고 했어 안 했어?" 그 다음에 나올 말이 뭔지 아시죠? ("근데 왜 안 했어!") 

  제사장들을 향해 첫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학2:12a). 제사장이 입는 옷에 관해서는 레위기 6장 10-11절에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를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 갈 것이요"라고 해서, 제사를 드리는 공식 복장과 생활 복장을 구별해놓았습니다. 또한 거룩한 고기에 관해서는 레위기 6장 27-29절에 말씀하시기를 ,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은 거룩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구별되지 않은 떡이나 국, 포도주와 기름이나 다른 일상 식물에 닿으면 성물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사드려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삿상에 올리는 밥에 국물이나 잡티가 들어가면 살짝 걷어내고 올리는 것이 아니라, 새 밥으로 다시 퍼 올립니다. 누구나 아는 지식이며 상식적인 일입니다.

  제사장들에게 두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학2:13a) 제사장들은 이에 대한 율법을 민수기 19장 11-13절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민19:11-13). 책망이나 경고 수준이 아니라 자격이 박탈되는 중요한 율법입니다. 제사장들에게는 상식이었고 일반 사람들조차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시체를 만지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니까요. 그 손을 씻지 않고 누가 밥을 먹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로 하여금 이처럼 상식적이고 당연한 율법에 대해 제사장들에게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옷이나 거룩한 고기를 드리는 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들이 깨끗지 못한 모습을 분명히 짚어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에 드릴 고기의 거룩함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입고 나가는 옷자락의 거룩함에 대해서 관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에 그런 규례를 명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의정결함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고전9:9-10)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손에 모두 쥐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학2:14).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손으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 재목을 다듬었습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오니까 그만두었습니다. 꼭 가고 싶은 대학이 있으면 재수도 하고 삼수도 하고 오수도 합니다. 하지만 꼭 가고 싶은 대학이 없으면 되는 대로 갑니다. '세상에 대학이 거기밖에 없나' '거기 아니면 안 되나' 맞습니다. 거기 아니어도 됩니다. 그 대학 아니어도 대학은 많습니다. 문제는 '꼭'이라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연애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사귀면 '이 남자(여자) 아니면 남자(여자) 없어!' 합니다. 하지만 '이 남자(여자)다' 싶으면 자세 낮춥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려움이 왔을 때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꼭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이러지 말고 우리집이나 짓자'고 했습니다. '꼭 이때에 아직 내 집도 제대로 못갖춘 이때,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세워야 하나''때가 아니라'. 사실 이스라엘이 맞닥뜨린 상황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스4:23-24). 권력으로 억지로 중단시켰습니다. 만일 그 권력에 도전한다면 생명도 위태로울 일이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 이해가 됩니까. 동감이 됩니다. 저렇게 정부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 굳이 하겠다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예리한 칼로 긋듯이 선언하십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면 부정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헌신으로 드리는 것은 부정한 일이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한 번에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되듯이, 한 남자가 두 여자를 한꺼번에 사랑하는 것이 못된 일이듯이, 하다가 안 되면 언제라도 그만 둘 준비가 되어 있는 정도의 마음이라면 그가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단단하면 길이 생길텐데, 뜻이 물렁하니 하나님 알기 전에도 방황이요 하나님 알고 난 후에도 방황입니다. 하나님은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여러분의 삶이 어떠했는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학2:15). 여러분의 소망대로 공사가 중단된 때로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라.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러 이른즉 이십 골뿐이었었느니라"(학2:16). 실리를 얻으려고 선택하였지만 도리어 반토막이 났습니다. 현실을 선택하고 실리를 택하고 실용을 택한다고 했지만 도리어 손실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학2:17a)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깨닫게 하려고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고난을 주었습니다. 고생을 주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다가 고난이 왔을 때는 그만두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움이 오면 포기하는 정도의 '멘탈'이었으니까 자기 일에도 고난이 오면 그만둘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요. 고난이 와도 고생이 되어도 계속해서 자기 집을 세웠습니다. "내가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학2:17b).

  명백해진 것입니다. 아하, 모든 것이 탄로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처음부터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명백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기는 부르지만 그 마음의 뜻은 오직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이 없으니 그 고난과 이 고생이 어디로부터 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학2:18-19). 전심전력하여 농사일, 직장일에 많은 수고를 하였으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우리만큼 지혜롭습니다. '매해 잘 될 수 있나, 어떤 해는 풍년이 들기도 하고, 어떤 해는 흉년이 들기도 하고 다 하늘의 뜻인데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나' 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위로하지 말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7:14a).

  하나님은 꾸짖기 위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위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향해서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단되었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이제 막 두어 달 동안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손에 모를 들고 열심히 꽂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9월 24일 하나님의 성전에 돌 위에 돌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헌신된 이스라엘은 열심히 손을 놀리면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비분강개하면서 슬퍼하고 분하고 의분이 복받쳐 하면서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선택하고 내 일을 선택한 것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고 가족을 다스림이 없이 어찌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의 위업을 이루어가랴. 나의 선택이 어찌 고민하면서 택한 것이 아니었으랴. 수많은 날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선택하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분하고 분한 것은 내 입술로 그렇게도 하나님 이름을 불렀건만 내 속에 하나님 사랑함이 없는 것을 알고 나 자신에게 분한 때문이라,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 나를 본 때문이라.'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찬양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위하여 주님을 버린 것을 알았음이라.' 울면서 벽돌을 나르며, 울면서 나무를 베어내며, 성전 돌 위에 손을 얹고는 나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에 눈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2:19b). 이제서야 돌이켜 주의 교회를 위하여, 주의 말씀을 위하여 헌신하기로 작정한 오늘부터, 나의 손과 발이 내 이름 석자가 아닌, 주를 위하여 빠르기로 작정한 오늘부터, 그리고 그 첫 걸음을 시작한 오늘부터 하나님이 복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뭔가를 손에 쥐려면 뭔가를 손에서 놔야 한다' 요즈음 화제의 인물인 허민(37) 씨의 말입니다. 고양 원더스 야구단의 단장이자, 던전앤파이터라고 하는 게임을 개발해 3천 억 재벌이 된 사람이며, 과거 이력으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나중에 가수가 되기 위해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고, 올해는 미국 독립 야구단의 너클볼 투수로 공식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가 뭔가를 외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헛소리' 취급했습니다. 서울대를 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고등학교 때 사업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도, 너클볼 투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도 모두 '말같지 않은 소리'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외쳤던 것을 모두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한 말입니다. '뭔가를 손에 쥐려면 뭔가를 손에서 놔야 한다' 세상 일도 뭔가를 이루려면 먼저 쥐고 있던 그 뭔가를 내려놔야 합니다. 왼손에도 한 아름 쥐고 또 오른손에도 한 아름 쥐고, 입에도 한 가득 물고 다리 사이에도 끼우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짓는 일,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시는 일은 무엇보다 먼저, 꼭 이루려 하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하는 그날부터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를 복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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