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믿음에 굳게 서라(학2:1-9) | 이정식 | 2013-09-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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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학2:3) 중국에는 명나라 때 지은 자금성이 있고 우리 나라에는 경복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사진으로 보니까 자금성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경복궁에 몇 번 가보았는데 규모가 웅장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중국인들은 경복궁은 자금성의 화장실 정도라고 했다고 하는데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제가 조선왕궁 5개를 헐고 궁궐을 훼손한 결과입니다. 원래는 경복궁 하나만으로도 자금성 규모의 75% 정도라고 하고, 5개 궁전과 궁전터를 모두 복원하면 7481칸의 330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가끔씩 한양 도성을 복원한다는 보도를 들을 때 괜한 낭비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경복궁을 자금성의 화장실 정도로 생각하며 스스로 작게 여기는 민족적 자격지심을 회복하는 데는 아낌없이 투자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고 재목으로 쓸모없는 소나무들만 보지 말고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금강송의 자태를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상쾌통쾌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의 웅장하고 거대한 것들과 교회를 비교합니다. 그리고는 때로 주눅들기도 합니다. 솔로몬도 7년 동안 성전을 지은 후 13년 동안 자기 궁궐을 지었는데 그 규모는 성전보다 큽니다. 길이가 백 규빗(46m)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23m)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13.5m)이라(왕상7:2b).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집사님이나 헌신된 성도들을 보면서 '천사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일에 열심히 직장의 업무에 충실하다가도 주일 예배시간 되기 전에 교회에 나와서 이것저것 돌보며 가르치는 모습을 봅니다. '저렇게 모든 일을 열심히 하면 언제 쉬며 무슨 재미로 사나'하는 생각이 들고 대단해 보이는 것입니다. 한참 빙빙 돌다가 '나도 저런 신앙을 가져야겠다'라고 결단을 합니다. 하지만, 결단을 하고 자기 자신의 사는 모습, 교회에서 섬기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보잘것없어 보이는지 모릅니다.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도 아름다운 꿈, 야무진 꿈을 꿉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셨고, 천국열쇠를 네게 주노라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동역자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귀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셨다는 생각에 감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순종해갈 때 우리 자신이 그 말씀의 축복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꾸짖기 전에 자기 자신이 속으로 '이래서야 뭐라도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굳세게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축복하며 약속하십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두 번째 성전이고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할 때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바사)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은과 금과 그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또 예물을 드리라'(스1:4)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레스 왕은 70년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 접시 서른 개, 은 접시 천 개 칼 스물 아홉 개 금 대접 서른 개 은 대접 사백열 개, 그밖의 그릇 천 개를 다 내어주었습니다(스1:7-11참조). 성전 공사가 방해공작으로 15년 동안 중단 되었다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다리오 왕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왕의 재산(세금) 가운데 성전 건축에 필요한 경비를 끊임없이 제공하라(스6:8)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것,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라(스6:9)고 했습니다. 비록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페르시아 왕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돈이 없었던 것도 재목이 번듯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지원을 한 것같지만, 페르시아의 안녕을 빌 수 있는 일개 사찰 정도의 규모이면 족했던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두로 왕 히람에게 레바논 백향목과 잣나무 재목을 공급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역군의 수가 삼만, 짐꾼이 칠만, 산에서 돌 뜨는 자가 팔만, 관리감독자가 삼천사백 명이었습니다(왕상5:13-16참조). 하지만 지금 재건하고 있는 스룹바벨 성전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 모두 합해도 사만 이천삼백육십이요,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스2:64-65)일 뿐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세력이 커서 이웃 나라의 조공도 받고, 협조도 받을 수 있었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27m)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9m)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13.5m)이었습니다(왕상6:2). 솔로몬 왕은 온 성전을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1/4 정도의 규모로 지었습니다. 70년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 중에 노인들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들 눈에는 새로 지은 성전이 양에 찰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전이 완성되어갈수록 더 시시해보였습니다. 이전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들의 탄식 소리를 들으면서부터는 일을 할수록 마음이 식어지고, 열정이 식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굳세어라 금순아! 우리가 1.4 후퇴로 흥남 부두에서 헤어져 영도 다리에서 만나자고 철썩같이 약속했지만 못 만났다. 하지만 금순아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날까지 굳세게 살아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우리 눈에 보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고 시시해 보이지만, 그 마음으로 굳세게 하여 계속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솔로몬 성전의 규모를 추억하면서 탄식하는 어른들의 말이 일하려는 사람, 헌신한 사람의 단단한 마음을 물렁하게 만들지만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총독 스룹바벨도 마음이 식어지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최선을 다해도 한 등급 떨어지는 성전을 지을 뿐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함께 일하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런 분위기가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불러가면서 '굳세게 하여 계속 일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4b) 짓고 있는 성전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이 계실 때 성전은 성전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솔로몬이 지은 멋있고 웅장하며 금빛 찬란한 성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서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이방신을 함께 섬기며 범죄하게 되었을 때,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겔7:2-3a)라고 했고, 성전에 계시던 "여호와의 영광이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겔10:18-19a)고 말았습니다.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식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왕상9:4-9). 하나님은 성전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슥12:1)라고 했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하늘보다 땅보다 더 귀히 여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기를 힘쓰는 것이 성전의 화려한 규모보다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굳세게 하여 일할 또 하나의 이유를 말씀합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건져 내었더니 3일만에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다고 불평했던 이스라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과연 살아계신가 하고 시험했던 이스라엘입니다. 광야에 들어간 1세대들이 모두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한 민족과 국가를 이루어 다윗왕의 번성과 솔로몬 왕 대의 태평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이방신을 섬겨 나라는 두 쪽으로 갈라졌고, 이민족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성전을 지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의 자존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어 웃음거리가 되었고 바벨론에게 사로잡혀서 70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세월 동안, 곧 하나님께서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던"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굳세게 계셨는가.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 우리를 구원하실 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4-6) 이 약속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서 내 영광을 떠나게 했고 성전이 비웃음거리가 되게 했어도, 나의 이 말과 나의 영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17:24-25). 솔로몬 왕도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왕상8:13)고 했지만, 다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라고 고백했습니다. 시내산에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40일을 참지 못하고 그 밑 하나님의 등 뒤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춤추며 섬기던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던 중에라도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영이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영광이 떠나가실 때에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영은 계속해서 돌아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왜 낙담하며 손에 힘을 빼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전을 짓고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일은 규모와 상관없이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시작한 신앙이 여리게 보이고 나약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굳세게 하여 계속 배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르고 여러 가지 시험 중에 헤맬 때에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이루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신앙이 빨리 성장하지 않아 조금 답답하신 분 계십니까? 굳세게 하여 계속해서 교회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6-7). 사람들이 기가 죽는 것은 이 세상 하늘과 이 세상 땅과 이 세상 바다와 이 세상 육지와 그 위에 건설된 세상 나라의 영광이 크고 영원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교회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듯 하며, 해변으로 무수히 밀려온 불가사리를 한두 개씩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며, 70억 명 가운데 구원받고 돌아오는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그렇게도 견고해보이며 영원해 보이는 세상나라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진동합니다. 흔들립니다. 무너져 내립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을 향하여 '끝이 났도다'라고 선포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세상 나라에 대해서 '끝이 났도다'라고 선포하실 것입니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최근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1999년 옷로비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검사로서 무수한 죄인을 보내던 구치소, 그리고 법무 장관이 되어 자신이 관리하던 구치소에 자신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2003년에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구치소에서 받은 것은 3223번이라는 죄수번호였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집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등 많은 사람이 연루되었던 옷로비 사건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감방에 들어선 순간은 무덤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온몸을 덮쳐오는 수치스러움에 죽고 싶었습니다. 자식들에게,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 수치를 벗을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2시 무렵에 하나님께서 무언지 모를 마음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비록 구치소였지만 편한 잠을 잤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폭탄주를 마시며 귀가했던 많은 날들을 회개했습니다. 신앙생활조차 출세의 방편으로 여기며 검찰총장이 되게 해달라고 새벽기도 다니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교회 다닌지 10여 년이 되었지만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구치소에서 성경을 처음으로 통독했습니다. 검찰총장으로 시대의 권력을 손에 얻더라도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어찌 신앙생활을 전심으로 행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따라 원숭이 흉내내듯이 따라쟁이 삶에서 돌이키십시오. 만일 계속 그렇게 한다면 불쌍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지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9).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바로 세우면, 구원의 신앙을 세우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신실하게 자라가면 여러분과 저의 눈에 그렇게 좋아보이던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그것을 추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웃 나라의 조공을 받게 해서라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원하던 것은 방 한 구석으로 밀쳐놓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가고 성전이 되어가면 주께서 그 밀쳐놓았던 것들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황영조 마라톤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땄습니다. 마지막 결승선에 골인하기 전에도 다리가 풀리지 않고 처음 페이스대로 가볍고 웃음을 띤 황영조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황영조 선수는 중학교 때 육상 선수로 시작하지 않고 사이클 선수로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사이클 선수들이 입고 있던 옷과 헬멧, 그리고 자전거는 잘 갖추어진 장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상 선수들을 보니까 촌스러운 유니폼에 운동화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원도에 사이클 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하면 우승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상은 웬만해서는 동네에서도 우승하기 어려웠습니다. 먼저 사이클 선수로 등록되었고 육상은 곁가지로 대회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사이클 선수로 입학하려면 자전거와 트레이닝복을 스스로 구입해야 했습니다. 어렵사리 8만원짜리 삼천리 자전거를 사서 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55만원짜리 가볍고 날렵한 자전거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게는 안 된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멋있는 사이클이 좋아 보였지만, 황영조 선수에게는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시시해 보였던 육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선수를 제치고 2시간 8분대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세상 가치에 너무 주눅들지 마시고,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하십시오. 우리의 미련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의 지극한 사랑은 항상 변함없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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