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1-10) | 이정식 | 2013-08-13 | |||
|
|||||
세상에 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그 중에 제일은 '희망봉'(Cape of Good Hope)입니다. 희망봉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며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습니다. '한 번 가볼까' 하는 엄두를 내기도 어려운 곳인데 '마나엄니'라는 블로거 가족이 다녀왔습니다. 가족 여행을 간 모양인데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습니다. 'hope도 예쁜 단어인데 good hope는 더 이쁜 단어다. 여기서 소원 빌면 다 이루어질 것 같았지' 어라, 이 무슨 하나님 모르는 사람의 고백인가 했는데,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면서도 360도 돌아서 내려다 보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가슴이 너무 벅차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언제나 넘 아름다운 걸 보면 그렇듯이.' 하니 보고 싶고 가고는 싶습니다. 바로 이어서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우리 가족을 여기다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기도했고... 천천히 생각나는 모든 이들의 건강을 한 명 한 명 위해 빌었다'는 표현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아는 가족이어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나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벅찬 마음으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 얼마나 좋습니까? 다닐 수 있으면 많이 다니시고, 기도할 수 있으면 많이 기도하십시오. 1년에 한두 번 있을 이런 날만 축복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주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좀더 씁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갈6:1a)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믿음과 사랑을 헤치는 어떤 일을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육체의 소욕에 관한 말씀이 16-19절에 기록되어 있고, 육체의 소욕을 위한 열매들이 무엇인지 20-21절에 제시되어 있으니,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받았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으로 살지 않고, 자기식대로 자기 마음에 원하는대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떤 블로거의 대문글에는 '내식대로 내 마음 중심대로 살고 싶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듣다가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 가운데 하나를 행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얻기 위해 헌신하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흔들게 됩니다. '이거 잘 가고 있는건가 나 바보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면에서 이런 사람을 대할 방도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범죄한 지체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잡으라'(카타르티조 katartizw; restore)는 '돌이키다' 즉,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그 온전한 이전 위치나 바른 상태로 되돌이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릇 행하는 형제에게 무관심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체가 어떻게 되든지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자는 주의가 아닙니다. 도리어 참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견이나 간섭이 아닌, 오직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가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가 처음 믿었을 때 신령한 상태를 회복하도록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 곧 '신령한 너희'에게 부탁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 맡길 때 가능합니다. 또한 잘못 행한 그 형제 자매에게 성실할 때 나타납니다. 참다가 갑자기 폭발하면 독설이 됩니다. 국가대표급 축구 선주 중에 이천수 선수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가 되었고, 2002년 월드컵 대표로 뽑혔습니다. 각종 MVP를 독차지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그 선수가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천수 선수가 3학년이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헤딩 연습을 하도록 공을 올려주는 선수였습니다. 선수이면서 코치격이었으니까 이미 클래스가 달랐던 선수입니다. 그런데 그가 6-7년 동안 '풍운아'처럼 떠돌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기량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했지만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국내로 복귀했습니다. 복귀했지만 여러 가지로 코치와 주먹다짐을 하고 심판 판정에 불복하여 '감자주먹'을 내지르기도 했습니다. 어려울 때 자기를 받아준 감독에게도 항명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었습니다. 일본 J리그에서도 활약하다가 중동 리그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임의탈퇴 선수가 되어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가 잘 안 될 때 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주영 선수나 이영표 선수처럼예수 믿는 선수라고 했습니다. 어쩌다 겸손하게 다시 시작하겠다고 반성하듯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다시 성질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쟤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많은 감독과 코치,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다시 한 프로팀에 들어가서 전성기 때의 기량을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그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나이는 24-5세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어린 선수였습니다. 최고의 선수로 자타가 공인하던 선수가 길이 막혔을 때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러울 수 있었겠다. 그리고 5-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어도 제어할 수 없었던 젊은 패기와 충동을 이제는 제어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이천수라는 선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권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야생마처럼 날뛰는 사람을 향해서 기다리며 언젠가 돌아올꺼라는 믿음을 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잘못된 행동을 했고 또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행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함부로 좌충우돌할 때에도 희망을 가지며 기다린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 말합니다. 둘째로, 그를 바로잡을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b) 다른 사람을 돕다가 자기가 시험을 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보기'는 쉽지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훈수'는 쉽지만 직접 하면 쉽지 않습니다. '해설'은 쉽지만 필드에서 '뛰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권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의 사정과 형편은 서로 이야기 나누면 누구든지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결국 자기도 같은 일을 겪게 되면 학습효과가 있어서 육체의 욕구대로 처리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먼저 다른 형제들이 잘못한 것을 보아서 학습되었기 때문에, 똑같이 해도 오히려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입니다. '당신도 막상 닥쳐보면 별 수 없을꺼야'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하든 그 말에는 울림이 있습니다. 합당한 말이든 합당하지 않은 말이든 우리 마음에 새겨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있지 않으면 합당하지 않는 말이 도리어 우리 마음 속을 파고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에서 '민준국'과 '박수하' 두 사람은 모두 복수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복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민준국은 복수의 삶을 살다가 자기 인생을 망쳤습니다. 그러나, 박수하는 아슬한 순간에 돌이켜 자기를 건졌습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가 있습니다. 똑같은 부모와 똑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어도 한 사람은 건실한 사람으로 자라가고 한 사람은 아버지처럼 알코올중독에 빠져듭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탓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준비된 사람은 압니다. 이 행동이 선한 행위인지 악한 행위인지 압니다. 그러나 말씀을 앞세우지 않고 '내식대로 내뜻대로'를 내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예배 때 핸드폰 만지작거리지 마시고, 다리 꼬며 말씀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마시고, 아이들이 왔다갔다 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예배 시간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1대1로 만나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가급적이면 10분 전에 오셔서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누군가를 존중히 여긴다면 존중히 여기는 태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장님 앞에서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긴장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자기 집 안방에 있는 건지 동창회를 온 건지 모를 정도로 예배하면서 '나 하나님 사랑합니다'하는 꼴은 얼마나 이상합니까? 하나님이 자기 애인만큼도 못 된다면 그건 허수아비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경계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도 곧 따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늘 자기식대로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좋아하는 육체를 부추기면 금방 배웁니다. 예배를 저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시간을 무의미함으로 채우지 마십시오. 듣고자 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목요청년연합 예배가 끝나고 한 자매가 간증문을 올렸습니다. 그 자매는 종암교회에서 중1때부터 오전예배 반주를 했고,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교회의 반주자였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고 거기서 형제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사역에 공백이 있었습니다. 첫 아이의 백일이 지난 지 이제 두어 달밖에 안됩니다. 청년연합예배 반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하나님 섬기는 건 아이를 좀더 키우고 쉬었다가 다음에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맡겨놓고 찬양연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주 한 주 찬양으로 섬기며 말씀을 들으면서 '나중에 해야지' 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의 두 손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쓰임이 된다는 이 사실을, 결혼하기 전에는 당연하던 그 섬김을 회복하게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결혼한 모든 자매가 신앙이 나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삶이 더 괴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한 형제가정이었을 때 백일도 안 된 아이들을 교회 수련회에 데리고 다니면서 성도들과 교제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짐을 서로 지라고 하셨습니다(갈6:2a) 또한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갈6:5)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짐을 져야 합니다. 매임 속에 진보가 있습니다. 힘든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말씀의 짐을 지는 것이 영혼에 유익합니다. 그 속에는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짐을 질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돈과 땀과 눈물과 피가 함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돈을 줍니다. 사랑하는 일을 위해 땀을 흘립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안타까움의 눈물도 흘립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곳에는 이 네 가지가 따라갑니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자기 밥그릇 자기 숫가락 챙겨서 싱크대에 넣으십시오. 주일학생도 애가 아닙니다. 여선교회 여러분, 주방이 복잡하니까 관두라느니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미 식사당번하는 여선교회 회원들은 힘에 겹습니다. 허리 어깨 무릎 다 고장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도울 때입니다. 애기 엄마들도 잘 듣고 순종하십시오. 애기 본다는 핑계로 자기 밥그릇도 자기 상도 치우지 않는 태도 보기에 참 딱합니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야겠습니까? 아이처럼 행하지 마십시오. 자기 할 일을 하십시오. 짐을 나누는 것이 사랑입니다. 거창한 데서 찾을 것도 아닙니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도 청소하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청년여러분, 청소하고 계실 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십시오. 설마 발만 들거나 의자에 드러누워 있는 청년은 없겠지요? 제가 믿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하신 분들만 들으십시오. 교회 청소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빠르면 하반기부터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청소할 것을 제안합니다. 여러분, 교회 일에 봉사하십시오. 제가 믿는 바가 또 있습니다. 교회 일에 봉사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청소하고 사랑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 일에 자기 몫을 빼먹으면 다른 성도에게 갑절의 짐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교회 일에 봉사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헌신된 사람만이 그렇게 섬깁니다. 다른 사람의 귀중한 시간을 훔치지 맙시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맡았으면 전문성 있게 하고 끝까지 책임을 집시다. 그래야 자기 하는 일을 스스로 귀하게 여기며 자기 교회를 사랑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된 명분대로 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한 말씀으로 통합니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갈6:3) 자기 앞에 놓인 말씀의 짐을 지는 싸움을 싸우지 않고 감놔라 팥놔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내주신 믿음의 숙제가 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좀더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목사와 사모를 섬기십시오. 구역원과 부서 식구들은 구역장과 교사를 섬기십시오. 진실하게 섬기는 자가 진실하게 섬김을 받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결혼할 때 주례하신 목사님께 제대로 섬겨드리지 못했습니다. 결혼한지 15년이 지나서 비로소 그 사랑을 보답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목사님은 객관적으로 어떤 목사님일까요 저는 여러 가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배우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도 우습게 여깁니다. 영혼이 잘 되지 않는데 범사가 잘 되기를 어떻게 바라겠습니까. 다시 하나님의 원리가 나타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일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낙심이 반복되면 피곤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선을 행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됩니다. 고진감래니, 고생 끝에 낙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6:10).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의 믿음을 서로 책임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있는 한 서로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함께 있는 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됩니다. 좋은 영향 선한 영향을 끼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향한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모여서는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배우고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우리의 소망이 있고, 생활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 희망봉이 희망봉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열리기 전에 유럽의 배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멀리 돌아야만 무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아프리카 해안선을 따라 망망대해를 한참 돌다가 돌다가 남아프리카의 끝자락인 희망봉을 돌면, 이제 가야할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말입니다. 혹시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자주 실망한 사람이 있습니까 남아프리카 대륙 끝에 이른 것처럼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기가 희망봉입니다.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그 자리가 예수 우리 주님께서 계신 자리입니다. 예수 구원에 여러분의 희망이 확실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범사가 잘 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 아닙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영혼이 잘 되도록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범사가 잘 되는 희망이 시작됩니다. 내 마음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도 됩니다. 내가 희망 안에 살고 있을 때 내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합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