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노예근성에서 벗어나라(갈4:1-11) | 이정식 | 2013-07-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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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왕자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009년에 행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국산담배보다 외산담배를 더 많이 피우는데 그 이유를 맛의 차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100명 중에 60명이 담배맛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말로는 '맛의 차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속빈 강정이라. 좀더 멋있어 보이고 있어 보이려고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외모와 외양을 중시하는 태도입니다. '폼생폼사'는 대한민국을 패션 강국과 디자인 강국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비밀은 속깊은 곳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멋있고 성공적이고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의 축복도 속사람의 어떠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 이름으로 된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할 만큼 성공한 여성입니다. 201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아픈 상처가 있었지만 그는 세상에 뭔가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는 성공적인 방송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습관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적 성폭력을 당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성이 어릴 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도중에 오프라 윈프리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라도 tv를 마구 때려부수고 싶더군요. 그래서 '그만! 그만! 카메라맨! 녹화 중단하세요!'라고 외쳤어요." 오프라 윈프리는 9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후로도 친구와 친척들에게 5년 동안 계속 당했습니다. 14살에는 아이를 낳기도 했습니다. 윈프리는 고백하기를 "그건 계속되었고, 끊임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인생은 원래 이런 건가 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출연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픈 부분이 다시 떠올랐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날 이후 '아, 그렇지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건 다 이유가 있어. 내 잘못이 아니야'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그 일을 바라볼 때 흘린 눈물이 도리어 그 기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갈4:2)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만물은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낳자마자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는 것은 없습니다. 번데기 시절이 있습니다. 올챙이 시절이 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이 있습니다. 젖먹던 시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아직 미숙한 세상입니다. 왕자로 태어나도 곧 바로 왕노릇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자는 수업을 받았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끊임없는 시문 암송과 유교 경전과 역사서에 대한 문답식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따로 있었습니다(왕하10:1,5).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가정교사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갈4:3) 우리도 학교에서 세상에서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성숙한 세상이 나타났습니다. "때가 차매"(갈4:4a)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서 충만한 때가 찼습니다.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말합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가 어떻게 세찬 비바람을 견디겠는가" "책상머리 교육이 아니라 현장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러나 깨닫기 원합니다. 학교 교육이든 현실에 부딪친 상황이든 그 모든 것이 다 미숙한 세상에 속한 것일 따름입니다. 비유하여 말한 것입니다. 율법은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미숙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주신 선한 법입니다. 이 율법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갈4:3). 60 평생이면 60평생, 80평생이면 80평생 그 많은 날 동안 사람들이 가진 것은 세상 초등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연약함을 더욱 더 깨닫게 하는 율법은 초등학문입니다. 율법 아래서 살 때는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서 해방될 수 없고, 죄에게서, 과거에게서, 인간의 본질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또한 당신도 곤고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 모두가 곤고한 세상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면 우리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라고 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미숙한 세상 한가운데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다면 거기로 가자 더 받는 만큼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을꺼야.'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만 그렇습니다. 그 후에는 생활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더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성취감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이리저리 날뛰는 토끼를 뒤쫓는 것처럼 방향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지' 하지만 그 넘치는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남에게 뒤지지 말아야지 약한 모습 보이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과 속마음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없이 세운 모든 아름다운 계획은 곳곳에 함정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말씀은 좋은데 그것을 지키는 게 너무 어려워. 하나님은 너무 높고 나는 너무 낮아, 실망이야' 우리를 살리고 복을 줄 말씀이 도리어 우리를 옭아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쇠멍에가 꺾이고 쉽고 가벼운 멍에만 매신다고 했는데 이것도 무겁기만 합니다. 삶이 이렇게 복잡하고 길이 안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찾고자 몸부림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다른 선생을 찾는 것이고, 그 중에 하나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럴 바에는 쪽집게 점쟁이가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연년생이든지 두세 살 차이이든지 먼저 난 사람은 언니고 나중 난 사람은 동생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니에게는 언니답게 동생을 돌보기를 요구하고, 동생은 동생이니까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생이 예쁨을 받는 것을 본 언니가 갑자기 이미 졸업한 어리광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나 다시 그때로 돌아갈래'하는거죠. 언니로 사는 것보다 동생으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이 어떻습니까? 언니의 어리광이 예뻐보입니까 언니다워보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퇴행'입니다. 회사의 CEO 한 사람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소파에서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암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소망은 오로지 병을 고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 포기하고 마음을 내려놓자 방안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불현듯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이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때까지 병에서 낫기만을 바라고 기다렸지만, 그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많은 시간 동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그리고 앞으로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암을 치료받은 후에 이전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만난 사람은 다른 인생을 삽니다. 원래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마귀의 속삭임이요 세상의 유혹입니다. 미숙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때가 차지 않았을 때 바라보던 세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찼습니다. 때가 차기 전, 창조하기 전부터 이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때가 차면 내가 보내리라 하는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그 아들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이십니다.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性)도 없으신데, 세상을 위해 구별하신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한 여자의 몸에 하나님이 태어나셨다는 것을 깨우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는가 하면 여자에게서 난 모든 사람을 해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분은 이 세상의 왕이요 하나님 나라의 왕입니다. 왕이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의 주관자가 나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또한 율법 아래 나셨다고 했습니다. 율법의 주인이 율법 아래서 태어나셨습니다. 율법의 주인이 연약한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율법을 그 몸에 정하셔서 율법의 짐을 다 가져가셨으니,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갈4:5). 우리의 첫 출생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는 출생이요, 우리의 첫 출생은 율법 아래서 태어나는 출생입니다. 아직은 길이 없고 생명도 없고 소망도 없고 사랑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 이런 세상은 길에 목마릅니다. 생명에 갈급합니다. 소망에 갈증을 느낍니다. 사랑에 목마릅니다. 길에 목마른 때가 찼고, 생명에 갈급한 때가 찼고, 소망에 갈증이 심한 때가 찼고, 사랑에 목마른 때가 찼을 때, 우리를 건져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 속에는 두 번째 창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낳으시는 것입니다.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당신의 몸과 정신과 영혼이 찢김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낳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당해야 할 율법의 저주를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손만 대어도 혈루 근원이 말라 치유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영접만 하면 세상의 무게에서, 인고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이 기쁨 안에서 삽니다. 우리를 억누르던 과거의 죄책감에서 해방된 사람은 그 평안 안에 있습니다. 이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뭐가 좋은가요?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또한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4:7).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너희 것임이요, 내 것이 네 것임이라. 우리를 붙잡아 매어 놓고 있던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멸하셨습니다. 더 이상 죄 안에 있지 않고 예수 안에 있습니다. 죄에서 시작하지 않고 예수께로 시작합니다. 이 세상 부정부패한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서 출발합니다. 내 살아온 인생길로부터 운명을 점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서 확신 가지고 삽니다. 몸에 좋다는 약을 이 약 저 약 먹으려고 돈 쓰고 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을 먹습니다. 오직 내 위에 계신 상전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갈4: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모세에게 주셨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을 뿐, 하나님을 나타내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본질상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본질상 우상에게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실망과 낙담과 한숨이 우리를 이리저리 이끌고 다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에게 실망하셨습니까 세상에 실망하셨습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실망하셨습니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수억 만번 실망할 일이 있었지만 실망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주 예수께서 오셔서 그 모든 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음 밑바닥에 실망을 쌓고 거기서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내 마음에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거듭난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갈4:9a)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생년월일시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갈4:10). 이제는 부모님도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내 땅도, 심지어 이 세상도 내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주인은, 나를 사랑하는 참된 남편은, 선하신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걸어갈 참된 길은, 인생의 소망은, 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사가기 좋은 날이 없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특별히 태어날 달도 없고, 변함없이 떠 있는 태양도 우리의 주인이 아니니 태양신이라고 제사드릴 것도 없고, 바다의 신에게 풍어제를 올릴 까닭도 없습니다. 우리가 달랠 귀신도 없고, 찔러넣어 줘야할 노잣돈도 없습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부할 일도 없고, 가족을 내버려둔 채 성공해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헛된 사랑을 쫓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유혹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 삶에 성실하게 임하되 이 세상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장막도 이 세상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원한 삶은 없는 것처럼 돈을 움켜쥐어야 할 일도 없습니다. 돈을 움켜쥐고 떠난 탕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원히 주인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지옥문에 들어갈 때까지 돈을 끼고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망하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을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2:20a). 나는 죽었다! 그리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 실망과 낙담과 한숨,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대한민국의 보수논객의 대표격인 조갑제씨가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의 중대사가 생겼을 때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대주의요, 심하게 말하면 노예근성이다" 그리고 "북한은 흉악무도한 죽일 놈들이지만 자주국방 문제만큼은 스스로 해결했다. 그래서 핵개발을 했다" 계속해서 "미국의 도움 없이도 능히 이길 수 있다. 국력차이도 크다. 문제는 국가관과 용기다. 이스라엘에는 외국군대가 없다. 물어보니 외국군대가 있으면 국민정신이 타락한다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홀로 서기를 해야 할 때는 용기있게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누이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꾸짖었습니다.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뭔가 하면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 의지할 이유가 없는 것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았고, 또 하나님도 나를 알았습니다. 어째서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겠습니까!(갈4:9) 내가 소중히 여긴 것이 무엇인지 기록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중에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면 지워보십시오. 그래서 예수님 오시기 전, 예수 만나기 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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