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엡6:1-4) | 이정식 | 2013-0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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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거울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영광의 아버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보면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내려오다가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면서 1973년 '어버이날'로 변경 지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행하는 일로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선물을 하거나 효도관광으로 모시기도 하며, 양로원과 경로당을 방문하여 위로하거나 민속놀이와 국악행사로 격려하는 일 등입니다. 효부, 효자상을 수여하여 그 섬김을 장려하기도 합니다. 멀리서 있는 경우에는 전화 연락을 드리고, 특별히 돈도 좀 챙겨드리는 날입니다. 저는 다음 주간에 잠깐 방문을 드리는 것으로 짧고 뭉툭하게나마 뵙고 올까 합니다. 보고싶으시답니다. 우리 중에 칠순, 팔순 때마다 또는 해마다 여러 번 함께 여행도 다녀오시고 가까이에서 섬기시는 가정이 있는데 무척 부럽고 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모친들과 성경공부하면서 제가 여쭈어봤습니다. "부모님 생각, 많이 나지 않으세요?" "네, 잘해드린 건 생각나지 않고 못해드린 것만 생각이 납니다" 저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그림처럼, 또는 생생하게 납니다. 이럴 때 꼭 맞는 말이 바로 '불현듯'이라는 말이죠. 정말 불현듯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서 잘해드린 것을 애써 찾아봅니다. 여러분, 부모님과 좋았던 시간들, 소박하게나마 부모님을 섬겼던 기억들을 떠올리실 수 있기 원합니다.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저녁 식사상을 차려드린 딸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음식솜씨가 있는 줄 이제 알았다"고 했다는데, 참 훈훈한 소식입니다. 이런 훈훈한 소식이 하나님 앞에서도 확실한 소망이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엡6:2). 순종할 뿐만 아니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세상에서도 충분히 알려져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비록 모두가 알면서 대부분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생각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계명을 주실 때 앞에 네 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고, 뒤의 6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존 스토트 목사는 쓰기를, 유대인은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에 각각 다섯 개씩 들어있다고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에 대한 5번째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계명 속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듯이,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뜻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부모들에게도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가장의 권위를 가진 아버지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부모는 자기의 권위를 잘못 사용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조금 어렵고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자녀의 어린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을 시키기도 하고, 가혹하게 대하거나 잔인하게 대하기도 하고, 편애하거나 지나치게 방치해두기도 하고, 말로써 은근히 모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빈정거리기도 합니다. 그 인격이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상처,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라면 이런 일이 습관적으로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며, 부모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내 방식대로 내 인생대로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에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대로 주의 자녀로 서야 하겠고, 자녀는 자녀대로 주의 자녀로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언제나 주 예수께서 계시게 하는 것이 온전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가정이 주 안에서 서로 공경하며 사랑으로 양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다스리시는 분도 가장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 속의 세 가정을 통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노아와 세 아들을 살펴봅니다(창세기 9장18-27절). 이 가정은 아버지는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고 아들들도 아버지를 잘 섬긴 가정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은 노아가 500세 된 이후에 낳은 아들(창5:32)이었고, 노아 나이 600세에 홍수가 났습니다(창7:6).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 후에 홍수를 대비한 방주를 짓기 시작했으니까 80년에서 10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버지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창6:9) 아버지입니다. 방주에서 나와서 온 세상은 멸망당하고 노아의 식구들만 은혜를 입었고, 홍수 후에 무지개 언약,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으니까 세 아들이 생각하기에 '참 하나님도 대단하시지만 아버지의 믿음도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거기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는 옷을 다 벗고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노아의 벌거벗고 골아떨어진 모습을 보고는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셔서 다 벗고 누워계셔요." 아버지의 실수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것이 아니라, 다만 형들에게 말을 한 것입니다. 셈과 야벳이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행동이 정말 놀랍습니다.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창9:23). 아버지가 실수를 했어도 아버지는 공경할 대상이었습니다. 술에서 깬 노아가 그 이야기를 듣고 셈과 야벳은 복을 얻게 했지만,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순종했던 아버지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의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이 되었고 그의 저주는 하나님의 저주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많은 가정들에서 형제들간에 질서가 굳건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무리 이상한 일을 해도 형제들이 서로 아버지를 허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혹여라도 동생이 형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힐난하면 그 형이 도리어 그 동생을 혼을 냈습니다. 그 어떤 일도 아버지의 권위와 질서를 무너뜨리도록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허락하신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 또 한편 부모의 권위는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을 무너뜨린다면 가정의 복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사울과 요나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는 하나님께 범죄했지만 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가정입니다. 다윗을 시기 질투하는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그후 사울은 다윗을 처리하기 위해 고심하고 그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다윗이 수금으로 그의 마음을 평안케 해주었어도 단창을 던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 요나단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갈등하며 다투는 한이 있어도 다윗을 지켜주려고 했습니다. 부자지간의 연보다는 더욱 다윗과 영원한 언약 세우기를 더 기뻐했습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삼상20:16). 손아랫 친구인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사랑보다 더 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을 미워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끝까지 함께 있었고, 그의 최후도 아버지 사울의 최후와 같이 전장에서 맞아들였습니다. 아버지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대적이 되었고,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아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9:4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호의적으로 아낌없이 대한 아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같은 날에 삶의 최후를 맞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상을 잃어버렸지만,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상을 잃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없다고 해도, 부모에게서 선한 교훈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결국은 그 자신의 믿음에 따라 상을 얻게 되기도 하고 잃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서 주의 교훈으로 가르치고 공경하면 상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엘리와 두 아들을 살펴봅니다. 이 가정은 아들이 아버지의 교훈을 듣지 않아 하나님께 버림받는 가정입니다. 엘리와 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삼상1:3b). 한나의 아들 사무엘의 멘토요 선생은 엘리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2:12)고 했는데, 이들의 행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해 그것이 삶은 고기든 생고기든 자기 뱃속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빼았았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피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무시한 아들들이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심하여서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음행을 했습니다(삼상2:22). 그 소문을 들은 엘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시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뜻하셨음이더라"(삼상2:25b). 엘리의 복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을 양육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첫 선지자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훈련하여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세우실 때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2:35)와 같은 사람을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가정은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결국, 홉니와 비스하스는 블레셋 군대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엘리는 언약궤를 빼았겼다는 보고를 듣는 순간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선택한 제사장이었고, 그 아들들이 어렸을 때부터 제사를 드리면서 자랐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들의 선택에 따라 그대로 갚아주셨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아와 같은 어버이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셈과 야벳, 또는 요나단과 같은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족으로 불러주신 교회의 부모님들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실 때 곁에 계시던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6-2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르신들을 부를 때 부친과 모친으로 부릅니다.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말입니다. 주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네 어머니라고 하신 것처럼, 교회에 속한 부친과 모친은 모든 성도의 부친과 모친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부를 때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a)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교회 가족은 모두 내 아버지와 어머니요, 내 아들이며 내 형제 자매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개별 가족 가운데서도 자랑이 없진 않겠지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로 한 가족된 것을 알고 서로 존중히 여기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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