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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사람의 열심 하나님의 열심(행21:15-36) 이정식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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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부모님이 가끔 말 안 듣는 자식을 골려주려고 하는 말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말입니다. 한 번도 곧이곧대로 믿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전혀 없지.' 그래도 그 말이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듣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버지를 별로 닮은 것같지도 않고 어머니도 별로 닮은 것같지 않고, 생각해볼수록 더 안 닮은 것같아서, 자기가 정말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지금까지 아껴주신 사랑이며, 앞으로 주실 수 있는 사랑이며 집이며 선물이며 장난감이 아주 많다는 걸 안다면, 그래서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죽어도 빼앗기기 싫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아마도 저라면, 있는 힘을 다해서 친아들처럼 보이려고, 아니 친아들처럼 되려고 무척 애를 쓸 것입니다. 아버지가 무슨 심부름을 시키면 틀림없이 해놓을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말을 하시면 될 수 있는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거 꼭 해놔'라고 하시면 안달해가면서라도 해 놓을 것입니다. 이를 악물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친한 친구가 '너, 니네 아버지 친아들 아니지?'하며 잊어버리고 싶은 말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눈치라도 준다면 또 어떨까요? 제 생각같아서는 아마 엄청나게 그 놈이 미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친아들된 사람들(곧, 사도 바울과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과 하나님의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같은 유대인 백성들이 벌이는 한 판 소동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행21:17)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행21:36).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갔더니 함께 친아들된 사람들은 기쁘게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미워하여 없애버리려고 독기를 품었습니다. 시키는 모든 일을 다 잘 하여서 잘 보일 수 있고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사랑받을 수는 없습니다. 손주가 뭘 잘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으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니까 잘못하는 것도 이뻐보이는 것입니다. 조금만 잘하면 아주 넘어가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열심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들을 친아들 삼는 일입니다. 아들 아닌 사람을 양자로 삼아 친아들처럼 보살피는 일입니다. 아들이 되면 아버지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됩니다. 아들만 되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달라고 구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일은 아들 삼는 일입니다. 부요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친아들 삼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고하니"(행21:19). 무슨 일인가 하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일들입니다. 에베소에 가서 예수 십자가를 전했더니 믿지 않는 자들도 있었지만 믿고 하나님의 아들된 역사가 있었습니다. 부자동네 고린도에 가서 예수 복음을 전했더니 믿지 않는 자들도 있었지만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더니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테네에 가서 똑같이 예수 십자가를 전했더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중에 몇몇은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분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기 위해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우리가 바로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친아들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친아들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법을 주셨습니다. 그 길과 그 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친아들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받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전 안(행21:27-29 참조)에서나 성전 밖(행21:30)에서나 로마군대의 영문 안(행21:34)에서나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성전되신 예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밤새 동풍을 불어 홍해바다를 가르셨던 하나님보다 더 큰 능력으로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휘장을 찢어 여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사흘 후에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단번에 죄를 깨끗이 씻으시고 하나님의 의를 옷입히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복을 주시기 원하시니까.

 

2. 사람의 열심

 

  사람들은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의 친아들이 되려고 합니다. 엄청나게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것을 자기가 결정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행21:20) 수 만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세를 따르며, 할례를 받으라고 하고, 전통을 지키라고 합니다(행21:21).' 법은 이미 개정되었는데, 폐기된 법을 따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1954년 10월 26일에 국회에 제출된 민법 상속편에는 출가한 딸은 재산상속에서 제외된다고 제1007조에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에 따라 딸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런데 1989년에 수정 보완되어 1991년에 시행된 상속법에는 직계의 경우 아들 딸, 장남 차남, 기혼 미혼의 구별없이 균분 상속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개정된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개정된 교과과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에 있던 법을 들고 나와 그것을 주장하려고 아득바득 애를 쓴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까?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것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사람이 하는 일이고, 할례를 하는 것 역시 친아들이 아니라는 표시이고, 전통을 지키는 것으로 친아들 될 수 없습니다. 죽순에게 '야 죽순아 너는 어린 대나무니까 너를 가지고 활을 만들어야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연약할 때, 어릴 때 만들어놓은 법을 가지고 어른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때가 되어 주님께서 새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친아들되는 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서는 거룩한 척했고, 성전 밖에서는 혈기란 혈기는 다 부렸고, 로마 군대의 영문 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어디에서도 거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는데 이들은 인정받기만을 원하는 것같습니다. 사랑없이 인정을 받아서 어디다 쓰겠습니까?

  이미 끝난 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썩을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는데도 그것을 붙잡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해놓았지만 속은 시커먼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되는 길을 놔두고 안 되는 길로 자꾸 올라가려고 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들 두셨던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폐허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속은 텅 비었는데도 겉을 치장하는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지 맙시다. 아무리 해도 그 양심 밑바닥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아들이 아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나는 그분의 아들이 되려고 무척 애썼다' 그뿐입니다. 결국 그는 아들이 아닙니다. 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려고 해도 못되었던 것을 사도 바울이 되었다고 하니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간증을 했습니다. 15년 동안 공부를 통해서도 얻을 수 없었던 일을 예수 안에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한 스님이 일어나서 저의 멱살을 세 번을 치면서 기차간 가운데서 한 쪽 칸 끝까지 몰아갔습니다.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고 도를 닦고 있으며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 예수 앞에서 수포로 돌아간다고 하니 그 마음 속 고갱이를 친 것입니다. 분하여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할 일

 

  믿어야만 믿어집니다. 사랑해야만 사랑합니다. 처음부터 사랑이 있어야만 사랑합니다. 아들이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웅장하고 거룩하게 지어놓은 예루살렘 성전을 원하지 않습니다. 크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성전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성전이 되는 방법은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는 무슨 거룩한 것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분이 우리 속에 계셔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둠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은 속박되지 않습니다. 교회 안이든 교회 밖이든 내무반 안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며 우리가 가는 곳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친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습니다. 율법에 열심인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강제로 끌어다가 성전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쾅!' 소리나게 닫았습니다(행21:30). 감히 네가 들어올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닫아버리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들이 곧 닫히더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전 안이나 밖이나 영문 안에서나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정작 하나님의 성전에서 쫓겨난 것은 바로 문을 닫은 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자기 영생의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 바깥에 있겠다고 자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심으로 다 이루신 일을 마음으로 믿어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친아들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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