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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복음과 생계(행19:21-41) 이정식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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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석 하나가 러시아 우랄 산맥으로 떨어지다 폭발하면서 운석우를 뿌리고 사라졌습니다. 대기 중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의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깨어진 유리 파편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폭발을 목격한 사람은 지구의 종말에 볼 수 있을 것같은 장면이었다고 하고, 또 어떤 노인은 정말로 지구의 종말이 온 것으로 생각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지구상에 공룡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도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일어난 일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스쳐지나가는 작은 운석 하나가 한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의 무릎을 꿇리시고 영원한 승리를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관해서는 무덤덤할 때가 많습니다. 복음은 운석의 충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학생부 친구들이 주일 대예배를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주일학생 4명이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송포성서침례교회에 운석우가 떨어진 만큼이나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별빛보다 더욱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복음은 세상의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후에 로마에까지 복음을 들고 나갈 것을 작정하였습니다. 디모데와 에라스도는 다시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바울은 계속 아시아 에베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술하던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면서 자기들의 마술 비법서들을 몽땅 불태운 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사람은 믿고 순종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비방하면서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 순종치 않았던 무리 가운데 데메드리오라는 은세공장이를 중심으로 소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울과 함께 그들 생업의 구역에 들어온 복음이 생계를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계는 우리의 먹고 사는 일입니다. 생계보다 더 큰 일은 별로 없습니다. 밥벌이보다 더 소중한 일도 별로 없습니다. 인생에 대부분의 슬픔과 비애는 생계수단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좀더 잘 먹고 좀더 여유롭게 살고 좀더 만족스럽게 사는 모든 것이 생계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삶의 현장에서는 전사戰士가 됩니다. 법을 지켜가기도 하지만 수많은 편법과 위법과 변칙이 생기는 곳도 바로 여기 생계입니다. 아무래도 제일 큰 문제는 '뭐 먹고 사나' '뭐 하고 사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메드리오의 사업은 크게 번창하였습니다. 에베소 시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신상 모형을 제작하는 것이 그의 사업이었습니다. 에베소 시의 서기장에 따르면 에베소 시는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행19:35)였을 정도이니 아데미 신상 모형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저가품에서 고가품까지, 문양에서 모형에 이르기까지 안 만드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데메드리오의 사업에 대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 쯤 되었던 데메드리오 밑에서 사회적 지위를 얻고 생계를 꾸려가는 많은 직공들과 영업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데메드리오는 에베소 시에서 고위 관료들과 인맥을 쌓았을 것이며, 자기가 버는 수입에서 상당한 부분을 에베소 시를 위해 기부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는 연설을 보면 그의 상당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에베소 시와 시민들을 쥐락펴락했던 것을 봅니다. 데메드리오의 연설로 온 시내가 떠들썩했습니다.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또 많은 수입을 올리게 해준 데메드리오를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칭찬했겠습니까.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행19:25) 데메드리오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목매달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행19:26). 만약에 누군가 당신이 믿고 섬기는 것이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정상적인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참 신입니까?" 그래서 내가 섬기는 신이 신이 아니고, 아데미 여신을 모신 신전은 거짓된 것이며, 아데미 여신의 위엄도 가짜라는 것을 알면 돌아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데메드리오나 그의 직공이나 영업하는 사람들은 전혀 그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 마음에 들어온 생각은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행19:27)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리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계가 위험해진 것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업을 훼방하고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활동을 방해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마도 2만 명의 근로자들을 먹여살리는 '에베소 10대 기업'쯤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관대하게 대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생계입니다.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않는 것은 얄미운 것이지만 직장일로 집에 못간다고 하면 모두가 수긍합니다. 집안 행사를 불참한다고 하면 싫은 소리 들을 수 있지만 사업차 출장갔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들이 훨씬 관대한 부분입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국경이 없는 것은 생계와 경제활동입니다. 사랑은 들어가지 못한 곳은 많지만 코카콜라는 못들어간 곳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 섬(일본: 센카쿠 열도)을 중심으로 충돌을 할 때 일본 기업들은 울상을 짓습니다. 정치적인 활동이 기업활동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유명세를 타서 주가가 높아질수록 국적이 변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쇼트트렉 선수 안현수는 이제 러시아 국적을 가진 러시아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러시아 이름은 빅토르 안입니다.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부자증세를 피해 러시아 국적을 획득했습니다. 1위를 수성할 것인가 만년 2위에서 벗어날 것인가, 늘 뒤따라가는 기업이 될 것인가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기업의 사활을 건 싸움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싸움이 얼마나 많은 수모와 억울함과 삶의 비애를 가져다 주는지 안다면 한낱 '목사 따위'가 한낱 '교회 따위'가 한낱 '하나님 따위'가 감히 생계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가?"

  이 편한 세상, 이 좋은 음악, 마음 먹은대로 발걸음 가는대로, 톡톡 터지는 삶의 비타민, 느낌이 다른 것, 우리 마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연비를 계산하며 차를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연비 계산 없이 손잡이부터 승차감이 확실히 다른 차는 느낌이 벌써 다릅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값싼 옷을 사고서는 보풀이 일어날 때 느끼는 비애감, 비싸지만 느낌이 다른 옷을 입을 때 '이게 사는거야!' 생각이 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유지하고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바로 우리의 그런 아름다운 삶을 도와주기 위해서 계신 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와 복종을 원하지만, 사람들도 하나님께 똑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우리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 소망과 우리 바라는 것에 복종해주십시오!" 하나님 없는 비참을 알지 못하며, 주 예수 구원이 없는 비애는 알지 못하며, 말씀을 갖지 못한 불쌍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감각없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듣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사람들이 생계감각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합니다.

  생계가 위기에 빠지니까 사람들이 신념을 내세우며 분노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생계를 보호해준다고 믿고 있는 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행19:28). 온 시내가 요란하여 자기들의 사업을 방해하는 바울의 동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극장으로 들어가서는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며 외쳤습니다(행19:34). 얼마나 흥분했던지 자기들이 모이긴 했는데 왜 모였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나 되었습니다. 그 분노는 살기가 가득한 분노였고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였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성을 잃습니까 생계가 끊어질 때입니다. 진리를 잃어버렸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끊어졌을 때가 아니라, 말씀을 향한 감동을 상실했을 때가 아니라, 구원의 감격을 잊어버렸을 때가 아니라, 우리 생계가 끊어지려 할 때 우리 정신은 황망하게 되고 맙니다.

 

  2. 하나님은 복음 가진 사람을 돌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복음은 이런 소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위험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늘 어떤 사람은 믿고 순종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훼방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바울 편에 선 사람이 있었고, 또 언제나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를 말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온 에베소 시가 분노로 들끓을 때 하나님이 바울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하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람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울의 제자들로 하여금 그곳에 가지 못하도록 말리게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하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또 바울과 친하게 지내던 아시아의 관리 몇 사람을 사용하셔서 바울을 말렸습니다(행19:30-31). 사람들이 너무 흥분했으니 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말리고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가 들어가지 말라고 연락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흥분한 군중들은 어떤 결과라도 손에 쥐고자 했을 것입니다. 칼을 뽑았으니 썩은 무라도 잘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무지 식지 않을 것같던 이 흥분한 무리들을 잠재울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바울과 상관이 없는, 복음과 상관이 없는 에베소 시의 서기관이었습니다. 에베소 시의 유력한 정치관료였습니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과 제우스를 섬기는 곳이라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이 사람들을 여러분이 끌고 왔지만 이 사람들은 신전에서 무엇을 훔치지도 않았고, 우리 여신을 모욕한 적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고소할 일이 있다면 우리에게 재판정도 있고 재판관도 있으니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아무 이유도 없이 소동을 일으킨다면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비난받을 때 변명할 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심은 첫째로 제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바울의 친구 관리들을 통해서, 그리고 에베소 시의 고위 정치관료를 통해서 성실하게, 아주 성실하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 함께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친히 돌보십니다.

  올해 83세인 홍윤희씨는 63년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1950년 당시 국군 보병학교 입교를 위해 대기하다가 전쟁이 나면서 낙오한 군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향 친구에게 돌아가 도움을 청하니 의용군으로 들어가면 전투 중에 다시 국군으로 넘어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공산군 인민위원회 간부였던 친구의 형은 북한 부수상이었던 벽초 홍명희의 친척이라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주었고, 7월 10일에 친척 이름으로 의용군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8월 24일 인민군 1사단 직할 위생반에 편입되었는데, 거기서 '9월 1일 0시를 기해 전장 서쪽에 위치한 인민군 제1군이 먼저 진격하고 48시간 후 북쪽에 있는 인민군 제2군이 총공세를 펼친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8월 31일 밤 부대를 빠져나와 육군본부 정보국과 유엔군 사령부에 차례로 심문을 받으면서 9월 총공격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킬 수 있는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9월 11일 느닷없이 간첩혐의로 헌병에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옥살이를 하고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1990년 중반에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총공격에 대한 제보자가 전쟁 중 귀순한 김성준 인민군 소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결국 2011년 6.25 전쟁사의 최고 권위자인 로이 애플먼의 '홍의 정보'(The Hong's Information)라는 메모를 찾아냈습니다. 애플먼의 메모는 홍윤희씨가 '9월 총공격' 제보를 했다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죄를 입증할 만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실은 사태를 반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진리는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을 드러내는 반전과 역전이 있습니다. 생계에 관한 일은 분명히 우리 마음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남몰래 눈물 짓게 하는 일입니다. 거기에 아픔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마도 우리 삶 전체를 통해 나 자신이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만신창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한가운데 서있을지라도 왜 우리 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장엄한 믿음이 없겠습니까. 두 발로 땅을 든든히 딛고 서서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까. 학생은 공부의 압박을 받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겠지만 주일을 구별하여 끝까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 것이 자랑이 될 것입니다. 나의 생애에 수많은 갈등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의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노라는 그런 고백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내가 때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여 주님께 범죄함이 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깨달았을 때에 나는 어김없이 돌이켰노라는 간증이 왜 없겠습니까. 나는 죄인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셨노라는 그 말이 왜 다른 사람들의 말이기만 하겠습니까. 생계를 위한 갈등이 닥쳐올 때 그 생활수첩에 메모해둡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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