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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성탄메시지_예수님의 탄생(마2:6-11) 이정식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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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네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를 위해 나올 것이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그는 아주 먼 옛날, 멀고 먼 옛날로부터 온다)"(미5:2)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 안에 착상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배아는 22일째부터 심장박동을 시작하고 5주째가 되었을 때 크기는 고작 4mm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작은 것 안에 생명이 잉태되고 몸으로는 마리아를 닮은 유전프로그램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배아는 태아를 보호하고 있는 양막 안의 양수 안에 있으면서 탯줄을 통해 마리아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배설물을 내보냅니다. 예수님의 배아는 점점 자라면서 각 부분이 분화되어 뇌, 귀, 머리, 손, 발, 다리, 팔등을 만들어졌습니다.  

  서서히 인간의 형태를 갖추어가는 예수님의 태아는 뇌가 발달하면서 기본적인 반사작용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뇌세포는 임신 10주부터 급격하게 증가하여 임신 12주부터 빛을 감지합니다. 예수님의 태아가 17주쯤부터 어머니의 배를 발로 차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는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눅1:41)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임신 26주가 지난 순간부터 예수님의 태아는 생존선을 넘어 생존가능성이 높게 된다. 요즈음 같으면 삼차원초음파사진을 이용해서 임신 32-38주된 예수님의 다양한 얼굴표정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굿간에서 시작된 진통과 출산, 탯줄을 자르고 예수님은 새 생명을 얻어 요셉과 마리아에게 무한한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을 글로 써본 것인데, 그럴듯한 것같으면서도 아주 어색해 보입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이렇게까지 쓰지는 말아야 할 것같기도 합니다. 주님의 탄생은 훨씬 더 거룩하고 훨씬 더 성령충만한 어떤 비밀을 가지고 계셔야 할 것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께까지 상세하게 탄생의 과정을 살핀다는 것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입니다. 에누리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아기가 거쳐가는 과정을 따라 그대로 자라시고 복중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우리와 똑같은 그 살이요 그 피였습니다.

  단지 생명의 경이로운 탄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사람이 되는 경이롭고 거룩한 탄생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미5:3-4)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은 여전합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마2:13-15a)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하고 볼품없는 젖먹이 신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목적은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살후3:5)는 것입니다.

  장성하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오천 명을 먹이시고 칠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일을 바라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능력 많으신 분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이 날마다 빵을 못 먹어 안달인데, 고작 한 번 그리도 많아봐야 또 두 번 먹이시고 말았단 말인가. 그 지혜로우신 분이 빵 만드는 기계나 이모작을 삼모작으로 해서 곡식을 더 많이 생산하는 영농의 방법을 가르쳐서 자자손손이 굶는 자가 없게 하지는 못했단 말인가'하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법을 가르쳐서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아버지의 돌보심 속에 서는 법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오르시기 전, 주먹으로 침을 당하셨을 때 볼에 있던 모세혈관이 터져서 발그레하게 달아올랐습니다. 또한 그 수치 때문에라도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분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감정이 심하게 상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말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뜨거운 감정을 가지고 또한 작은 타격에도 터질 수 있는 모세혈관을 가진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는 모두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인내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님을 자꾸 하늘 위로 거룩한 곳으로 올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오신 분을 왜 자꾸 높고 높은 곳으로 올려보냅니까. 저를 포함해서 한국 사람은 자꾸 위로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두 발을 지면에 딛고 서 계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와이어에 의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낭떠리지에서 밀쳐뜨리려는 사람들을 피할 뿐, 떨어지면서 망또를 달고 위로 날아오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단지 그분은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길이라고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배고프셨습니다. 단지 그분은 성령의 인도받기에도 배고프셨을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단지 그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우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가져야 할 기준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성탄 전야 예배와 찬송의 밤 즐거우셨습니까. 몇 가지 뭐 이런 저런 생각이 있지만 박수를 보낼만 하셨습니까. 그런데 그런 작품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몇 번의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해서 흘린 눈물도 있었습니다. 하참, 기가 막혀서 성탄 전야 예배에 다른 데 가 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저도 속이 상했습니다. '이놈들을 그냥 콱!'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도 수많은 세월동안 그렇게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이놈들을 그냥 콱!' 하지만, 그렇게 힘이 들어갈 때 나의 신앙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그냥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이 성탄 예배니까 굳이, 억지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시작은 '굳이' 했는데, 나중은 '맞다'로 끝나는 것입니다. '나 어릴 때 어땠나' 그리스도의 인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냥 육체였을 뿐이었습니다. 영원히 육체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갓난 아기였을 때 그분은 홀로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셨습니다. 우리 중에 갓 잉태된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서툴러서 전혀 습관이 되어 있지 못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이 나오고 또 바로 그 입에서 저주가 나오는 정도만 되어도 대단한 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 그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성숙한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실 수 없어 마리아의 젖을 먹고 눈만 말똥말똥 뜨시고 주위의 사물을 구별하기에 여념이 없던 예수님처럼, 우리 지체들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아기 예수 앞에서 동방의 박사들은 무릎을 꿇어 경배했고, 보물함을 열어서 각종 보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바로 그런 아기 예수님을 위해 하늘의 별이 종이 되어 그분의 나신 장소를 알려주는 종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믿음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의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겠습니다. 그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아야겠습니다. 그를 향한 우리 주님의 인내를 확신해야하겠습니다. 온 땅에 내린 흰 눈보다 온 천지에 가득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2:16-17) 이 말씀이 우리와 똑같이 탄생하시고 성장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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