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행13:13-41) | 이정식 | 2012-11-14 | |||
|
|||||
인생의 모든 목표를 이룬 사람이 많은데, 그 정상에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축복이라면 축복인데, 제대로 된 축복이 아닙니다. 로또복권에 수십 억원이 당첨된 사람은 아무도 몰래 모든 짐을 챙겨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축복이라면 축복인데 뒤가 좋지 못한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친 사고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축복이라면 축복인데 그가 도리어 삶을 얕보게 된다면 불행한 축복입니다. 인생을 누리지만 죽음이 끝이 되고 마는 삶이 있습니다. 축복은 축복인데 허망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면 그 축복은 빈 축복입니다. 이 모든 인생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 55:2a)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양식이 아니니 잔뜩 사놓았지만 배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위해 평생을 수고했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참된 양식을 위해 일하며 배부르게 할 것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확실한 축복을 찾되 그 축복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축복일 때 우리는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에게 청하기를 "형제들아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행13:15)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 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셔서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요 종 되었던 그들을 높이시고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축복을 받고도 광야에서 약 40년 간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의 소행을 참아주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약 450년 동안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셔서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선지가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들을 인도할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에도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세워주셨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처음에는 잘 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어겨 왕의 자리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누가 대통령이 될까 궁금해하다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는 소망 없는 생각을 하게 될 무렵에 다윗을 왕으로 세워주시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이 사람 다윗에 대해 하나님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좋은 왕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왕 중에 가장 뛰어난 왕이었고 지혜로웠고 용맹스러웠고 겸손하였고 정직하였고 또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못먹고 살던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모른다고 축복하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그 원망을 참아주시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좋은 땅 강남 어딘가의 금싸라기 땅을 미리 보시고 준비하셔서 차지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게다가 어질고 좋은 지도자까지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이 모든 축복을 받고도 배부르지 않습니다. 이 어질고 능력있고 선한 다윗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기까지 했지만, 그는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습니다(행 13:36). 모든 것이 좋았지만 썩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원하지 않는 모든 것, 결국에는 썩어버릴 모든 것은 우리의 바랄 만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준비하신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 나올 수 없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 하나님의 유일한 축복이 나타나시는 데 어찌 전조가 없겠습니까. 침례 요한이 세상에 와서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습니다(행13:23). 사람들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을 다 가졌어도 그것이 만족이 되지 않자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을 찾았습니다. 돈도 가져봤고, 힘도 가져봤고, 좋은 지도자도 만나봤지만 배부르지 않았습니다. "복을 찾는 것은 너희의 행할 일이지만 복의 근원된 하나님을 버린 것은 회개할 일이다. 그것은 죄니 그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목사의 사명처럼, 침례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의 쩌렁쩌랑한 소리를 듣고 보니까 "당신이 우리가 바라는 그분입니까?" 하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랬을 때 요한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바라는 그분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구원자가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푸는 일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다." 이제 고개를 조금만 들어 강단 위에 있는 십자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자 하나님 자신이었던 분이 한 가난한 집 아들 예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자라셔서 나이 30이 되던 해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고, 눌린 자,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고 약한 자를 고치며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때가 되어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그분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안식일마다 외우던 말씀, 선지자들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에 관한 말씀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잘못이나 죄가 하나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점점 구원자가 되고 계셨습니다. 성경에 예수임을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시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감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사람들은 십자가에 예수를 못박아 죽인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이시니 그에게 죽음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도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죽음에 잡혀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썩음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죽으시고 장사지내어 3일 동안 계신 것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나님을 떠난 죄, 하나님을 원망한 죄,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산 죄, 심지어 하나님의 보내신 거룩한 자 예수를 죽인 죄, 그 모든 죄의 댓가가 죽음인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죽음조차 우리 대신 지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어도 그들에게 좋은 땅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대신 죄값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냐 하면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건지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우리 죄가 씻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니라"(행 13:39). 이 예수의 구원과 죄씻음과 다시 사심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 하셨던 바로 그 사랑의 말을, 그 충만한 말을 더럽고 추악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향해 아낌없이, 후회없이 불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예수 믿는 축복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를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불러주십니다.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 충만함이, 다른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사랑이, 그 인도하심이, 그 응답하심이, 그 승리가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분의 아들이니까. 그분이 내 아버지니까. 여러분 돈을 벌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선한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내 방식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삶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내 안에 가져서, 그분의 죄사함과 의롭게 하심을 내 안에 가져서,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는 것입니다. 들어보셨습니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우리 남은 평생 동안 이 말을 매일 듣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끼리 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 유명 인사로부터 듣는 말이 아니라, 목사로부터 듣는 말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 그분으로부터 이 말, 이 사랑의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까? 예수는 모든 믿는 자들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이, 그분 자체가 거룩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모든 설교를 마치면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모든 말씀이 여러분에게 응하기를 원하지만 이 말씀만은 여러분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한 하박국 1장 5절 말씀만은 여러분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 믿음의 대상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우리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시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믿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거룩하고 확실한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