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그분은 하나님이시다(행12:18-24) | 이정식 | 2012-10-31 | |||
|
|||||
한 사람의 미술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초대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오직 미술에만 평생을 전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여 초대전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이감을 느낍니다. 어떤 화가는 뇌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닥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온 끈/ 닳고 닳은 붓을 놓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몸이 고장난 게 아니었다/ 붓만 쥐고 있으면 유영한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떠다닌다"(화가 이목일). 낚시가 잘 안 된다고 낚시를 그만두는 사람은 낚시꾼이 아닙니다. 사업이 잘 안 된다고 사업을 그만두는 사람은 사업가가 아닙니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고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화가가 아닙니다. 무엇이 그를 이끌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감추어진 일이 도리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이는 일이 되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역전을 이루도록 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갑니다. 성경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 25:2) 이 세상의 왕은 일을 살피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드러난 일 뿐만 아니라 감추어진 일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가가 보고 기록한 헤롯왕 사건을 요세푸스도 기록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황제의 안녕을 위한 축제를 시작하면서 가이사의 영광을 보여주려 하였다. 둘째 날 새벽에 아그립바는 은으로 만든 옷을 물결치듯 하며 극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 은으로 만든 옷이 아침 첫 햇살을 받아 멋있게 번쩍거니 그것을 보는 자마다 그 찬란함에 압도되어 경외심마저 느끼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으로 하면 팬들의 환호 속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같습니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절제된 동작과 퍼포먼스, 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안무, 밧줄을 타고 희뿌연 안개 속으로 내려오거나,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연출을 통해서 신비롭게 무대에 등장할 때 그들을 보며 팬들은 환호합니다. 실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리지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멋있습니다. 무대 전면만이 아니라 그런 무대에 서기까지 여러 가지 가난과 연습과 좌절과 무명의 시절을 딛고 일어선 일대기가 주목받게 된다면 한 사람의 가수가 아니라 신화가 되고 우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헤롯 왕은 유대를 정상적으로 다스렸습니다. 그가 다스린 모든 내용은 왕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교회 중에 몇 사람을 헤하려 하여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정치하는 땅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지도자를 단죄한 것입니다. 그런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까 의외로 자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더욱 힘을 얻어 베드로라는 더 유명한 지도자를 다스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왕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나 죄수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옥했습니다. 베드로를 지키던 파수꾼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경계에 소홀함은 없었던 것인지 심문하고 추궁했습니다. 상관으로서, 아니 왕으로서 당연한 업무였습니다. 주의 천사의 행한 일을 파수꾼들이 앞뒤 맞게 변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의 한 일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 같은 일이었습니다. 답변은 신통치 않고 임무는 완수하지 못했으니 파수꾼들은 죽음을 면할 길이 없었습니다(행12:19). 왕은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국내 문제만이 아니라 국외 변방의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무역을 하지만 양식은 헤롯 왕이 다스리는 유대 땅에서 수입해서 먹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왕의 최측근인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왕과 다시 예전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습니다(행12:20). 오늘날 소수 민족이나 이민사회를 대하는 정치인의 태도와 같습니다. 가이사랴에 내려간 헤롯 아그립바 왕이 그들에게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격이 있었습니다. 크게 소리지르기를 "우리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이제까지는 당신을 사람으로 공경했지만 이제부터는 당신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여기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행12:22)고 기록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왕이 왕의 위엄을 나타냈을 때, 더욱 추앙받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세계 역사에 있어서 왕이나 왕조를 기념하고 신의 반열에 올리지 않은 때가 거의 없습니다. 박혁거세는 우물가에서 흰말이 절하는 곳을 찾아보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그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몽은 유화의 몸에 햇살이 비추어 잉태하고 알에서 태어난 신비가 있었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그 조상 6대조까지 해동의 여섯 용으로 추앙받도록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12:23). 요세푸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가 심하게 아파옴을 느꼈다. 이것은 극심한 통증으로 변하였다...그는 재빨리 궁궐 안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는 닷새 동안 통증으로 매우 고생하다가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54세였고 왕좌에 오른 지 7년째였다." 헤롯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헤롯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떤 우주적인 신이 있다는 것을 믿기야 했겠지만,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가 모르는 하나님께 어떻게 자기에게 일어난 일로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신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모르고 있는 사람이나를 불문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축복에 대하여서, 심지어 고난에 대하여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헤롯이 자기 감옥을 지키는 파수꾼들을 다루신 일과 하나님께서 헤롯을 다루신 일이 겹쳐서 생각납니다. 헤롯은 자기 감옥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자기 임무를 소홀히 하여 왕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파수꾼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래도 책임을 물었습니다. 사병이 잘못해도 별이 떨어지는 것은 사병의 책임과는 달리 장성들도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 모태에서 조직하실 때부터 알고 계시고 그의 자람도, 그의 가정도, 그의 생명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으로 헤롯을 왕의 자리에 서게 하셨습니다. 헤롯이 알든지 모르든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날의 연설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헤롯이 알든지 모르든지. 그러므로 주인 되신 하나님,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은 마땅히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으로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롯에게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은 영원한 형벌 지옥까지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르고 한 일'에 대해 성경은 용서와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정말 그런 줄 몰랐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다' '정말 성경 말씀이 진리말씀이며 성경대로 된다는 것을 잘 몰랐다' '지옥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지옥이 있는 줄 몰랐다'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살아있는 날 동안 우리가 모르고 행한 범죄라하더도 이미 피해자의 마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하신 통치로 당신의 피조물들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에는 추호도 틀림이 없고 변함도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 왕의 뜻을 거스리는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꺾어놓으시는 것입니다. 그의 교만을 꺾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징계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차가 마구 달려오는데 건너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헤롯은 죽음에 맞딱그린 후에야 자기보다 위에 참된 왕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호령하는 왕이었지만 자기 장기에 있는 회충들도 다스리지 못하는 인생에 불과했습니다. 흥왕하여 가는 것은 헤롯의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4) 사도행전 12장 전체로 헤롯이 주인공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마침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헤롯의 잘못이 분명히 있었던 것을 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죄사함과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알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달리신 그 언덕 그 십자가가 아직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직 그 십자가에 예수님의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던 때입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그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자기 통치 영역 속에 있던 그 십자가를 의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그는 그런 데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로마에 잘 보이고 그 지위에 보장을 받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왕국을 잘 다스린다는 이름을 얻을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관심이 있으니 십자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 영광에는 관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을 떠난 죄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었을 때, 헤롯도 성경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만 것입니다. 감옥에 있던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빠져나간 이야기도 거짓부렁으로 여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심과 주권을 이 가을 계절의 변화만 보아도 알 수가 있었을텐데, 하나님의 절정 십자가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기생 라합은 비록 기생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요단강을 넘어온 사람들, 바산 왕 옥과 헤브론 왕 시혼을 전멸한 사람들, 저 사람들 속에 저 사람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다는 사실을 라합은 알아챘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붉은 줄을 매어두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000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1948년,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다시 약속의 땅에 모여 자기 나라를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중에 회사 생활 속에 하나님 말씀이 힘없는 메아리로 들리는 분이 계시다면, 자기 앞에 닥친 일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교회에서 사람들만 보이고 하나님이 안 보이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초대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또한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