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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교회를 낳는 교회(행 11:19-26) 이정식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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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교회가 꿈꾸어야 할 표어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낳는 교회'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라고, 자라는 모든 것은 몸집도, 키도, 생활영역도 뻗어나가듯이 생명이 있는 교회는 또 다른 교회를 낳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의 모든 기록은 성령께서 복음을 어떻게 모든 세계에 전파하시고 예수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교회는 건물을 소유하여 '이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의 생명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기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지구촌 오지로 나아가서 무료 진료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그렇게도 얄미운 일본을 눈물로 기도하며 선교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팔리고 호프집으로 바뀐 영국 웨일즈 지방에 다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협력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를 벌입니다. 어떤 교회는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활동을 합니다. 모든 교회는 복음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모든 교회는 복음을 중심으로 모든 사역을 결정합니다. 교회는 안으로 향하기보다는 밖으로 향하는 기관입니다. 내부를 튼튼히 한 후에 밖으로 내다본다는 순서를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꺼렸을 때, 이미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행 8:4)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행 8:14)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로 보건대 과연 사도행전이 아니라 성령행전이 옳습니다. 성령께서 앞서 일하시고 사도들이 그 일을 뒤따라 돕고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행 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했습니다. 빌립이 자기 뜻대로 한 일이 아닙니다. 사울이 여전히 살기가 등등할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비추어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의 택한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먼저 일을 시작하셨고, 주를 극렬히 반대했던 사울을 꺾어 당신의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중풍병을 고치고 죽은 도르가를 일으켜 세운 후에 이방인 고넬료에게 갔습니다. 자기 뜻으로 간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를 보내셨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한창 일하시니, 먼저 예수 믿은 사도들이 그제서야 깨닫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하고 무릎을 친 것입니다. '아하! 이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구나' 수만 명이 모이던 예루살렘 교회가 그 많은 사람으로 자랑하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 모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를 세우신 뜻이구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이후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행 2:4)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해졌습니다(행 2:41).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행 2:47).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습니다(행 4:4).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하니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행 4:31). 사도들의 표적을 통하여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습니다(행 5:14).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행 5:42).

   다시 이 말씀을 주목합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그들이 흩어지기를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을까요? 유대는 이스라엘의 남쪽이고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북쪽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행 11:19)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 11:10) 땅끝 전도의 시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복음은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행 11:21)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뜻에 동참할 때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올해 초에 우리는 태권도 선교단을 초청하여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학생부 친구들에게 친구를 초청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몇몇 학생이 "꼭 데려와야 되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받을 사랑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니 다른 친구를 데려온다는 것이 마땅치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관심이 분산되지 않겠습니까? 좀더 집중적인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겠구나. 저도 뒤로 물러났습니다. 더 말하면 '목사님은 사랑에 관심있기보다는 친구 데려오는 일에만 관심있다'고 생각할까봐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사랑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사랑만이라면 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분산될 수 있습니다. 파이가 작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수가 많아진다고 내게 돌아올 몫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파이는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에만 얽매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의 주 되심이 다스리는 교회는 도리어 복음이 전파되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더욱 큰 힘이 됩니다. 교회와 성도의 힘은 주의 일이 더욱 왕성해질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여덟 식구와 함께 생활하는 한 슈퍼우먼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둘이나 셋이면 서로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격렬하게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덟쯤 되고 나면 그 속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중간 언니가 엄마가 되어서 동생들을 챙깁니다. 서로가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모든 것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들지 않는 철을 일찍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슬픈 일이냐 하면 아닙니다. 자기 삶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개성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을 봅니다. 나눠줄 사랑이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힘이 더욱 생기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허약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서로 같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강건한 사람이 됩니다. 자기 욕심껏 충분히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너무 늦게 배우는 것이 오히려 걱정인 것입니다. 이 비밀을 미리 알았더라면 두세 명은 더 낳았을텐데 말입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자랑하려는 교회는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넉넉히 인정하고 존중하는 스타일로 진보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는 더욱 흥왕하여야 합니다.

  요나는 자기 백성들을 잔혹하게 다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로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다시스는 요나의 생각을 계속해서 고집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게 하시고 그 책임을 요나에게 물어 큰 물고기 배속에서 사흘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큰 물고기 배속은 하나님의 생각을 요나에게 다시 가르치는 재활학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요나에게 말씀했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욘 3:1-2).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어야 돌 수 있을만큼 큰 성읍인데 억지춘향으로 복종하는 요나는 하루동안만 외치고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고 숨어버렸습니다. 요나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니느웨 사람의 꼴을 보기가 싫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요나의 생각을 돌리셨습니다. 초막을 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고 있는 요나의 머리 위에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그늘을 만드셨습니다. 요나는 박넝쿨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에 하나님은 벌레를 준비하셔서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했고, 해 뜰 무렵에 뜨거운 동풍을 불게 했고, 그 해가 요나의 머리에 집중적으로 쏘이도록 했습니다. 요나가 거의 일사병이 들어 스스로 죽기를 구하며 하는 말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욘 4:8b).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12만의 어린 아이와 수만의 가축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주 예수를 믿고 어두운 삶을 떠나 빛의 아들로 살기를 무척 원하십니다.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이 주께 돌아온 헬라인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었습니다. 이번에도 성령께서 먼저 일하시고 사도들이 나중 일을 돌보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내려가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모든 헬라인들에게 권면하기를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행 11:23).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고,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자기 고집을 복종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뜻하신 것을 믿음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큰 무리가 더해졌습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서 다소에 내려가 있던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무리를 가르쳐 제자를 삼았는데, 그 주 예수를 위해 사는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세상에 처음 있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christianoi!

  수년 동안 우리 교회의 표어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가정, 넘치는 축복"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표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최소 5년 동안은 달라져야겠습니다. 3가지 표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교회를 낳는 교회'입니다. 저는 생애에 한 번 정말로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한 분의 소망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소망을 품으실 분이 계실 것을 믿고 도전합니다. 내 생애 동안 '교회를 낳는 교회' 안디옥 교회를 낳은 예루살렘 교회, 지교회를 개척하는 모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은 도리어 우리 교회를 든든히 지키고 세우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흩으실 것입니다. 그 대상에는 모두가 포합됩니다. 목사와 집사, 교사, 견고한 성도, 갓 구원받은 성도, 청년 학생 가릴 것 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모신 사람이라면, 예수를 나의 주라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의 뜻에 순종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일로 인해 신앙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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