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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하나님의 네비게이션(행10:1-43) 이정식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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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은 우리의 갈 바를 지도하는 영적 네이게이션이십니다. 우리는 좋은 것, 좋은 길을 원하지만 우리 스스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아는 길이야 눈감고도 간다지만, 모르는 길은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마땅히 가야할 목적지를 선택하고 경로 안내를 부탁하고 안내 시작을 누르면 안내를 시작합니다. 가야할 경로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그려진 지도를 따라 우리를 인도합니다. '오른쪽 두 번째 차선으로 진입하십시오' '다음 안내때까지 직진하십시오.' 어쩌다 처음 경로를 놓치기라도 하면 '경로를 재탐색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속도를 넘어서 달리다가 무인카메라가 나타나는 곳이 되면 '시속 110km 구간입니다.'하면서 '딩동 딩동 딩동' 속도 줄이라는 신호를 보내줍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갈 때에는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하나님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가 만든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가야 할까요? 성령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이웃 사람들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가 비록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은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계심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따라 살기를 힘썼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으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참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천국에 갈 것같은 사람을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고넬료가 뽑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그대로로는 갈 수가 업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간절함을 들으시고 인도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박칠성 목사님은 작년 겨울에 주일학생 집에 갔는데, 천장도 없고 군데군데 허물어져 바람이 들어오는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마당 끝에 문도 없이 있었는데, 그때 목사님 마음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내가 집을 새로 지어주어야겠다.' 기존 집에다 10평을 추가하여 도면을 그리고 욕실 화장실 거실 부엌창고를 설계했습니다. 재료비가 없어서 군청에 찾아가 100만원을 보조받았습니다. 재료상에 가서는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면 갚을테니 재료를 대달라고 했습니다. '모든 기술적인 일은 제 손이 했는데 제 손은 하나님께서 재주를 주셔서 많은 일들을 제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있습니다. 제 손은 한 번도 불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효자손입니다. 일하다가 기계톱에 배어 10바늘 꿰매기도 했지만 이젠 다 나았습니다. 어느 날 건축 자재상에 갔더니 자재값을 어느 교회 집사님이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자재상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그분을 칭찬하는데 나 역시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으로 하사관 정도에 해당합니다. 군인이면서도 구제하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를 주목해 보시던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 그릇에 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삼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고넬료야!"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10:3b-5). 고넬료는 경건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베드로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b).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지키기 힘썼지만 아직 '주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 주목되었고 하나님의 지극한 복을 누릴 기회를 만났습니다.  

  한편, 욥바에 있던 베드로, 아직 고넬료를 알지 못하는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배는 고픈데 사람들은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 이름으로 중풍병자를 고치며 죽은 도르가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베드로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같습니다. 고넬료에게 은혜를 주시려면 이 위대한 사도를 얼른 만나게 하시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두 사람의 만남에서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베드로에게도 하실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배는 고파서 뭐든 먹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믿음의 사도 베드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한 짐승을 손대지 말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소리는 다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가 누굽니까? 삼 세판의 달인입니다. 그 소리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주여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마지막으로 다시 그 소리가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주여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비록 우리 중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속에 성령께서 일하실 수 없는 고집과 편견과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완강함 암소처럼 우리를 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담긴 하늘 그릇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 말씀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었던지, 세 번의 말씀을 듣고 그릇이 하늘로 올라간 후에도 베드로는 '이게 무슨 뜻일까'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다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행10:19-20). 모든 전후 사정을 다 듣고난 베드로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제게도 네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차를 구입할 때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좀 특별한 네비게이션이어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엔 물론 말을 했지만 어느 날부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도에 주황색 진행방향 선이 나오고 속도 표시가 나오고 경로를 바꿔야 할 거리가 그림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잘 보지 않으면 들어가야 할 길을 놓지고 맙니다. 말을 해야 편안하게 말을 듣고 따라 갑니다. 만재도에 다녀오는 길에 조광휘 집사님이 그 네비게이션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날은 여전히 말소리를 못들었는데, 지금 말을 합니다. 말하는대로 따라가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네비게이션입니다. 우리 마음을 감동하셔서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성령께서 사도 베드로를 지도하셨듯이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십니다. 폴 채플 목사님은 1986년 6월에 남부 캘리포니아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여행 중에 작은 교회 성도들이 랭캐스터에 와서 목회해 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목사님은 전혀 랭캐스터에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너무 작은 사막 도시였습니다. 그후에 12명의 교회 회원들이 투표를 해서 자기들의 목사님으로 선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채플 목사님은 기도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전혀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목사님이 전혀 원치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같았습니다. "나는 이 지역에 많은 가족들을 데리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까" 채플 목사님은 정말로 사막에 가기 싫었습니다. 성령님과 계속 씨름을 했습니다. 아내도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주님은 우리가 랭캐스터에 가기를 원하시는 것같아요" 목사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모님이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25년이 지난 지금 그 사막에 약 8,000명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났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만났습니다. 고넬료를 주목하시고 베드로를 깨우치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 원하십니다. 고넬료가 비록 구제 대장, 기도 대장, 합심가정의 대장이었다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주께서 베드로에 명한 모든 말씀"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깔끔하고 멋있는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에 담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먼저 택하신 유대인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가 듣고 순종해야 할 그 말씀,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신 그 말씀! 그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38-43).

  하늘이 열리며 내려온 그릇에는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함께 담겨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구별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다른 때에 깨끗케 하실 수 있었습니다. 죄 때문에 구별한 것입니다. 창조하실 때에는 그런 구별조차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죄를 멸하였습니다. 구별은 유효기간이 지났고, 하나님의 깨끗케 하신 은혜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 그릇의 네 귀는 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매어놓은 끈을 끌어올리면 그릇에 담긴 누구든지 하늘로 올려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자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갚으신 죄, 씻으신 은혜, 다시 살게 하신 사랑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덮고도 남습니다. 깨끗케 하고도 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이 일을 위해서 힘쓰십니다. 고넬료를 찾아가셔서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를 찾아가 세 번씩이나 교제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찾아오는 사람에게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선가 하면 고넬료와 고넬료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넬료는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두 모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고 영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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