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시몬의 관심(행 8:4-25) | 이정식 | 2012-08-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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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는 혼합의 도시였는데, 인종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결혼하여 생겨난 혼혈족이어서 순수혈통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도시에 시몬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자타가 공인하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마술을 행했는데,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시몬 외에는 누구도 그런 일을 행할 수가 없었는데, 애굽의 술사들과 같이 딱딱한 막대기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만드는 일도 행했을 것이고, 때로는 귀신을 내어쫓거나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일도 했습니다. 또한 어떤 신적인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어서 다음 정치인이 누가 될 것인지 예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인물이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높은 관료들까지도 그를 따랐으니, 시몬의 영향력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행 8:10b)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간에 그 모두가 신적인 도우심과 신적은 통찰을 소망합니다. 시몬은 그런 사람들의 소망을 만족시켜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시몬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와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삶에 찌들려 살던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듣고,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어렴풋이나마 듣고 있던 시몬도 자기 눈 앞에서 전도하는 빌립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시몬밖에는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알던 시민들이 남녀 구별없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의지하던 자가 시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시몬이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걷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보니까, 그도 이전에 자기가 믿던 것을 내버리고 예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예수 복음을 대적할 만한 유명한 인물이었던 시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 복종하였으니 교회 안에서 얼마나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역시 전능하시다"하며 간증하며 서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하는데, 사도행전 1장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울을 비롯하여 교회를 거세게 핍박하던 때에 성령께서 일을 만들어 가시는 것을 보는데, 큰 핍박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행 8:4)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소문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사도들이 기쁨으로 사마리아에 내려왔습니다. 사도들이 내려와서 현장을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대로 사마리아에까지 퍼져가는 것에 찬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마음을 받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라"(행 8:16). 우리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공중에게 나타내고 기념하기 위해 침례를 순종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말씀을 듣고 빌립을 따라 침례를 순종한 사람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 마음에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삶과 인생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잃어버린 에덴, 그 기쁨의 땅을 다시 회복하는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고백할 때 죄를 시인하고 그 죄값을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입술의 고백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공중에 나타내고 첫 순종의 표시로 침례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구원과 침례 순종으로도 하나님의 마음이 그 속에 없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한 사람이 학생부에 올라와서도 다시 구원을 받겠다며 손을 듭니다. 또 청년이 되어서도 다시 구원이 의심스러워서 손을 들고 침례에 순종합니다. 이렇게 여러 번을 하고 나서야 믿음의 확신을 갖는 경우가 지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서 구원의 찔림을 받았는데, 그동안 구원받은 것처럼 섬기고 한 역사가 부끄러워서 손을 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받았다는 고백자체가 아니라, 침례에 순종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거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그 속에 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몬은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가 신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빌립은 하나님 나라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와서 안수기도로 성령을 받게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 마음에 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침례에 순종한 후 사도들의 기도로 성령을 받았는데, 단 한 사람 시몬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시는 권능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성령께 복종하지는 않고 도리어 사도들을 찾아가서 돈꾸러미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주소서"(행8:19). 오늘날 믿는 사람 중에 시몬과 같이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표적과 큰 능력이었습니다. 그가 빌립을 전심으로 따라다닌 것도 자기가 발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마술을 행하던 자기의 죄값을 십자가로 대신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좀더 나은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취를 쫓는 모든 신앙인은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아닙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신실한 한 청년이 저에게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술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술에 대한 기준이 다릅니다. 저는 술을 조금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 만일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그리고 세상과 교회 둘 모두에 균형잡힌 사람이 되는 것이 신앙의 목표라면 술을 하고 말고는 상관이 없겠죠. 술을 하지 않는다고 간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하나를 지킨 것밖에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만일 형제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진리를 증거할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있다면 술을 끊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결단과 확증이 서기 전까지는 계속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시몬이 사마리아의 유력한 사람이었고 신과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시몬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은 교회의 큰 간증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거세게 대적할 사람 1호가 있다면 시몬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고 침례에 순종하고 빌립을 전심으로 따랐으니 교회에 큰 간증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려시대 '신돈'은 그의 영적 통찰력으로 왕권까지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개종을 했다고 하면 이것은 국가적인 뉴스거리가 될 것입니다. 시몬도 사마리아 성에서 아주 위대한 사람이었으니, 그가 예수를 믿고 침례에 순종했다면 빅뉴스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에서 시몬을 예화로 하여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여기 돌아온 탕자 우리의 시몬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가 마귀의 대장 종이었더니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우리 모두 시몬과 같이 예수를 믿고 침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그런데 그 믿음이 거짓된 믿음 깨끗하지 못한 믿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저라면 시몬을 조용히 불러서 타일렀을 것입니다. "아니, 믿음의 간증이 있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니 성령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기를 원하세요"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사람에게 시몬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의 도시인데, 그 도시를 대표하던 시몬의 신앙도 하나님과 자기 욕심을 섞어놓은 혼합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살던 가장 유명한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에 회원이 되었다는 것은 당시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그를 잘 타일러서 그의 믿음이 바로잡히도록 친절히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은 모양새일 것같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엄히 꾸짖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행 8:21) '시몬아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다시 생각해 봐' 하지 않고, 예수 믿는 믿음에 네가 관계도 없고 복될 것도 없느니라 한 것입니다. 그동안의 간증도 그동안의 섬김도 그동안의 헌신도 모두 관계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을 받을 권리도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만일 제가 베드로에게 이런 식으로수모와 거절을 당했다면, '당신이 날 버렸으니 나도 당신을 버릴꺼야 당신은 당신 길로 가고 나는 내 길을 갈꺼야' 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수치스러운 책망이었습니다. 목사는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동시에 미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성도가 실족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의 연약을 담당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믿음의 목표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친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먹이는 모든 사람은 이런 두 마음을 품게 됩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은 진리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복음이 나아가는 길은 바른 길이어야 하고 순전한 길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그렇지 못한 모든 신앙은 뿌리 없는 신앙이요, 거짓된 신앙인 것을 성령 하나님은 잘 알았습니다. 네가 아무리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을 하고 침례에 순종했다고 할지라도 네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악한 사람이야. 더군다나 성령을 받기를 사모하기보다는 성령을 돈으로 사서 그 능력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음에랴!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권면하면서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이라고 했고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고 했습니다. 예수 우리 주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믿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는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은 알았습니다. "당신의 모든 말이 제게 이루어지지 않게 해주소서"하며 탄원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믿었습니까? 시몬의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까 빌립의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까? 성령을 받아 주를 모시기를 사람입니까 성령을 사서 다른 것을 위한 궁리를 하려는 사람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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