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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교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다 이정식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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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bbc1.onmam.com/bbs/bbsView/75/5268200

전도나 선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이 다른 죄인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이다.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쟁취한 게 아니므로 결코 교만할 수 없고(엡 2:8∼9), 타인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도 교만한 자세로 해선 안 된다. 작금의 현실에 교회가 오만불손한 집단으로 사회 속에 비쳐지고 기독교가 비호감을 넘어 ‘극혐’ 종교로 인식되는 상황은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를 교정해야 할 숙제를 안겨준다.
 
세계화에 따른 거대규모의 인구이동으로 ‘땅 끝’에서 우리 곁에 다가온 고넬료(행 10)를 교회는 어떻게 보듬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일한 사람으로 그들을 대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당연해 보이는 이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외국인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우리네 현실 때문이다. 교회는 잘하는데 바깥세상만 그런가. 그렇지도 않다. 타문화권에 선교사를 2만명 넘게 파송했다는 한국교회는 정작 우리 곁에 다가온 고넬료들을 동일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차별 없이 대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해외선교의 열심과 규모가 한국에서 두 번째라 말하면 섭섭해할만한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실화다. 주변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지자 어려움을 당하는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교회당 한편에서 모임을 갖도록 지원하며 전도(선교)의 기회를 엿보던 한 중직자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교회당에 갔다가 외국인들이 교회 성가대가 사용하는 식판으로 배식을 받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고 한다. 식판이 필요하면 따로 사줄 수 있지만 한국인 성도들이 쓰는 식판을 사용하는 건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관점에선 신분도 다르고 위생도 불결해 보이는 그들에게 동정의 빵을 던져줄 수는 있어도 같이 먹고 싶지는 않았던 게다. 

선교란 도대체 무엇일까. 불쌍한 대상을 동정하는 일일까. 육적인 빵이든 영적인 빵이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동냥하는 거라면 그건 갑질이지 선교가 아니다. 초대교회가 극심한 핍박과 가난 속에서, 즉 갑질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로마제국에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데도 사람으로, 그것도 왕이나 고위 관료가 아니라 가난한 평민으로 오신 모범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감당할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한국에 경제발전을 주셨다는 논리는 성경적으로 맞는 것인가. 그래서 혹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갑질 선교’를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왕국(Christendom) 시대가 되고 교회가 힘과 권력을 갖고 갑질을 시작하면서 영적 암흑기가 시작된 역사적 교훈을 잊었는가.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 고넬료가 구원에 이르는 회심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는 듯하지만 곱씹어보면 베드로의 ‘선교적 회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대인이 주류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이방인과 대화하고 식탁 교제를 나누며 마침내 이방인의 집을 방문해 머물기까지 단계적이고 파격적인 변화의 과정을 담아내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선교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시는 의미심장한 장(章)이다.  

그 선교적 회심의 하이라이트는 베드로의 방문에 황송한 마음으로 달려나가 발 앞에 엎드려 절하는 고넬료에게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6)고 외치는 장면이다. 베드로의 안중에도 없던 고넬료를 하나님께서 세 차례 환상을 통해 인식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시며 마침내 보듬게 되는 과정의 절정은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자각이었다. 

1907년 평양부흥운동을 촉발했던 1903년 원산부흥운동도 감리교 선교사인 로버트 하디가 한국인을 동일한 인간으로 여기지 못한 내면의 죄를 고백하면서 시작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구 저편에서 우리 곁에 다가온 수많은 고넬료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홀대하지 않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예우하며 보듬어야 한다. 선교는 인간이 인간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그래서 주님도 인간으로 오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 20:21) 

- 국민일보 2017.5.12. 정민영 (성경번역선교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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