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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2일> 의로운 사람 비열한 사람(막6:14-29) | 이정식 | 2014-0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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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헤롯 왕 곧 헤롯 안디바는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거룩한 사람이었고, 헤롯 왕은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열한 사람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비열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내 삶의 소망이 비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각만큼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칭호를 듣고 싶어할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어떻게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1:15-16). 침례요한은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혈통으로, 육정으로 태어난 것이지만, 사람의 뜻으로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났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1:13b)라고 말한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요한이 태어난 후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눅1:76-78a). 창원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했는데 그 아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5년 동안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과학도에게 '영생, 구원, 천국, 지옥, 믿음'이라는 단어들은 증명할 수 없고 이성적이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교회를 다니다가 어느 날 '구원받아야 합니다'라는 말씀이 그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날따라 그 말씀이 자기에게 부담을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5년 동안 읽어본 성경말씀이라고는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봉독하시는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창세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창세기를 전부 읽어가면서 그 말씀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동료 교수님 한 분이 '창세기 1장이 가슴벅차게 믿어지는 창조과학 콘서트'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 제목처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장 1절이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뜻과 육정과 혈통으로 태어나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도 침례 요한처럼 혈통으로 육정으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면 구원을 얻어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로운 사람의 출생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돋는 해가 비취고, 그것이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눅1:78b-79)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거듭나는 것이 의로운 사람이 되는 첫 번째입니다. 다시 태어났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거듭났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의로운 길을 따라 자라가야 합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으로 난 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랐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1:80). 침례 요한은 빈 들에서 자랐습니다.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우리가 좋은 아파트에 살고 현대화된 도시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빈들에서 살겠습니까? 사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세상과 구별된 삶을 말합니다. 빈 들이나 광야나 모두 세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짝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떨어져서 주님과 짝하는 곳입니다. 요한은 거기에 걸맞게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마3:4)을 먹고 자랐습니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 몽골 선교 여행을 준비하면서 딸과 함께 패딩을 사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좀 괜찮은 걸로 사줘야 되겠다 생각하고 갔는데, 손으로 잡은 옷에 가격표를 보니까 70만원이 넘습니다. 감사하게도 거기에 덧붙은 할인 가격은 30여만원이었지요. 제 옷도 준비하려고 가보니까 점퍼 두 벌에 11만원 남짓했습니다. 제 정서와 수준에 딱 맞는 옷이었습니다. 우리는 좀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좀더 나은 옷을 입고 좀더 좋은 집에 살고 싶습니다. 실제로 가격이 높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다 누리려고 하면 얼마나 벌어야 합니까? 정해진 상한선이 없습니다. 더 많이 벌면 벌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삶을 위해 충분한 돈을 거머쥐려고 하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배울 수가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났으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침례 요한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는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막6:17a). 헤롯 안디바가 자기 동생의 아내에게 새 장가를 들었습니다. 일국의 왕이 아리따운 여인을 취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누이라고 속인 사래)를 취하려고 했고,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의 아내를 취하는 일은 빈번했습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레18:16).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셨습니다. 헤롯이 헤로디아를 취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눈감아 주었습니다. 헤롯 왕의 생일 잔치에는 국회의원도 오고, 고위급 장교들도 오고, 경제계의 유력한 사람들도 왔지만 어느 누구 하나 헤롯 왕의 결혼 문제에 관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수군수군대기야 했겠지만 남의 가정사이기도 했지만 왕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침례 요한은 말씀 한 귀퉁이에 숨어 있는 것같은 그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마땅히 금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요한은 헤롯 왕에게 말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막6:18). 요한은 과연 하나님께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라며,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의롭고 거룩한 자라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헤롯 왕은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비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비열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헤롯은 사실 꽤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말을 들을 때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을 줄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일국의 왕이 권력을 휘두를 줄만 안다면 용렬한 왕입니다. 헤롯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그 선지자의 거룩한 말을 두려워할 줄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내였던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같이 여겼습니다. 자기가 왕비가 되는 길을 막아선 사람이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습니다. 여러분 선한 일에도 기회 좋은 날이 있지만, 악한 일에도 기회 좋은 날이 있는 법입니다. 아내가 되었던 헤로디아에게 가장 기회가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헤롯 왕의 생일 날이었습니다. 생일 잔치를 벌이는 곳에는 국회의원들과 고위급 장교들과, 갈릴리의 경제계 인물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잔칫 날에는 흥을 돋우는 무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었습니다. 왕의 연회에서 추는 춤은 기녀가 추는 야하고 사랑받을 만한 춤인데 그 춤을 왕비의 딸이 추었습니다. 헤롯 왕이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공개적으로 약속하기를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또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막6:22b-23). 헤로디아의 딸이 그 어미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가로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급히 왕에게 들어가 구하기를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막6:24-25).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이 말은 헤롯 왕의 정신을 깨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그 말을 듣고 "왕이 심히 근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다. 침례 요한을 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내 비록 그의 말이 나를 번민하게는 했지만 그의 말은 단 말씀이었다.' 심한 괴로움과 자책이 그를 사로잡았지만, 그의 균형 감각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막6:26)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위인이었습니다. 그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또 여러 국회의원들과 장교들과 재계 인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약속한 말이니 지켜야 했습니다. 헤로디아의 간사한 생각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지만, 헤롯 왕의 균형 감각은 그 일을 넘어설 만한 것은 못되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비열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헤롯은 자기 자신이 한 말과 맹세에는 책임질 줄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자기 인생에는 책임질 줄 알지만, 하나님의 보내신 인생이라는 데 대해서는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줄 알지만, 하나님의 눈동자를 의식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침례 요한을 존경하고 두려워했던 헤롯이 침례 요한을 죽게 하고 말았습니다. 박사학위를 막 끝낸 자부심이 교만이 되었습니다. 마침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었고, 서울대학교에 교수 모집 공고가 났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모든 서류가 차례차례 준비가 되었는데, 교수 추천서가 필요했습니다. 한 분 교수님이 그때 해외 출장을 가셔서 귀국을 며칠 앞 두고 계셨습니다. 서류 제출 날짜는 다가 오는데 귀국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몸이 달았기 때문에 제가 추천서를 써서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귀국하신 교수님께 그 말씀을 드렸을 때 아주 언짢으신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눈이 어두웠던지, 그제서야 마음에 찔리고 죄스러워서 제출한 학교에 다시 가서 모든 논문과 서류를 되찾아왔습니다. 서류는 다시 찾아왔어도 이미 범한 일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로운 삶에 그 심령이 강하게 자라있지 않으면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아마도 계속해서 그 길을 가며 일신의 영달을 추구했더라면 그 인생은 비열한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세상살이 속에는 우리를 충돌질하는 악녀 헤로디아같은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균형 감각을 무너뜨리고 오직 내 위신과 체면을 위해 선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확실히 서 있지 않을 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젖줄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세상과 짝하지 않고 세상을 견딜만하기까지 심령이 강하여지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것이 한 귀퉁이 있는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격으로 진리의 위엄으로 하신 말씀인 줄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의로운 삶을 사는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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