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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8일> 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5-41) | 이정식 | 2013-1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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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함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지만 예수님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더 진실되이 상대방을 알아가기 원하고 더 정직하게 예수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성도들이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도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벧후3:18a)야 하는 이유는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벧후3:18b)기 때문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가르치신 후, 날이 저물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제자들이 많은 사람들을 떠나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갈릴리 호수였지만 바다로 불릴만큼 넓고 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무리들 중에 몇몇이 또 다른 배를 몰고 함께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갈릴리 바다 깊은 곳으로 나갔을 때 일기가 갑자기 변하여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돌풍에 갈릴리 바다에서 자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어부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도가 배를 때리며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모양으로 바닷물이 배에 가득했습니다. 물을 퍼내야 한다고 소리지르는 사람, 키를 단단히 잡으라고 고함치는 사람, 정신차리라고 서로 격려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를 처음 탄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앉은 자리에서 아무것이나 꼭 잡고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하면서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다급한 일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TWA 항공기 DC-4를 타고 10월 2일 목요일 아침 프랑스를 떠나 미국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비행기가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날다가 쉐퍼가 타고 있던 쪽의 모터 둘이 멈췄습니다. 불과 몇 분만에 비행기가 900미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그가 생각하기를 '만일 바닷속으로 내려간다면 코트가 있는 게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조금 후에 안절부절 못하는 부조종사가 나와서 "우리가 지금 곤경에 빠졌습니다. 서둘러 구명조끼를 입으시기 바랍니다."고 말했습니다. 비행기는 자꾸 아래로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달도 없는 한밤중이었어도 바다 물결이 보이는 데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쉐퍼는 기도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SOS 조난신호가 포착되어서 긴급 뉴스로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습니다. "한 비행기가 대서양 중간에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파된 것입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그 소식을 듣고 쉐퍼의 아내는 세 딸을 불러 모아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혼비백산하여 소리치며 우왕좌왕할 때 예수님은 전혀 딴 세상에 계셨습니다.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습니다. 아주 급할 때일수록 도리어 마음이 침착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생사에 기로에 선 순간에 베개를 베고 주무시다니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 것은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고를 보면서 메뉴얼 대로 행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갑작스런 사고를 만났을 때 침착한 현자들이 가지고 있을 어떤 메뉴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물을 퍼내는 일을 도울 수도 있고, 돛을 붙잡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갑작스럽게 일어난 돌풍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람이 듣고 바다가 순종한 것입니다. 조금전까지 바람과 바다를 두려워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막4:41). 맞습니다. 사람은 바람을 피하는 법을 알아도 바람을 꾸짖는 법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바다의 물결을 탈 줄은 알아도 바다의 물결을 통제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큰 배를 운전하는 선장은 파도를 타는 법을 자랑할 뿐 파도를 잠잠케 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를 피하는 법을 알 뿐 비를 내리게 하거나 멎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태양을 따라 일어나고 잠자리에 드는 법을 알 뿐 태양을 멈출 수 있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인류의 마지막 세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모든 일을 수습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단지 호흡에 의존해 있는 연약한 사람인 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무서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다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셔서 바람을 창조하셨다면 바람을 꾸짖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셔서 바다를 지으셨다면 바다에게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양을 만드셨다면 태양더러 멈추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를 만드신 분이시라면 3년 반 동안 비를 멈추게도 하시고 내리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만나도 무서워하지 말 것을 요청하십니다. 징기스칸은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로마가 400년 동안 정복한 땅보다 더 큰 땅을 불과 25년만에 정복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몽골 곳곳에는 징기스칸이 정복한 유라시아 대륙의 영토를 걸어놓았습니다. 민족적인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징기스칸이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심리전에 뛰어난 전략가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떤 나라를 점령할 때 본보기로 한 성을 택하여 살아있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멸하였고, 몇 사람만 살아서 도망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몽골 군대가 얼마나 흉포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했고, 그 소문을 들은 나라는 태반이나 싸우지도 않고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찾아오면 우리가 얼마나 작아지는지 알고 있습니다. 단지 살아야겠다는 데 몰리고 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는 커녕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꾸짖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믿을만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믿을 수 있는 어떤 단서도, 믿음을 시작할 만한 솜털만한 구름도 없을 때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3-4)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날씨를 위한 기도를 진실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보라가 치든 천둥번개가 치든 꾸준히 예배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쟁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믿음으로 헌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응답이 비록 더디어도 25년 동안을 기다린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이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보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꾸짖는 일은 돌이켜 새로워질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아예 제쳐둔 사람, 제외된 사람이라면 꾸짖지도 않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을 꾸짖은 그 일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광풍 가운데서도 주를 믿는 믿음으로 잠잠할 수 있는 믿음을 갖기 원하신 것입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두려움이 오더라도 담담히 하나님께 구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쉐퍼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자녀들이 기도했을 때 멈췄던 모터 두 개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 역사 상 두 개의 모터가 멈추는 일이 드물지만, 한 번 멈춘 모터가 다시 작동하는 일은 더욱 일어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일 앞에서 조종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쉐퍼가 대답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내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모터를 움직이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종사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듯이 돌아갔지만,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미소지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타개한 넬슨 만델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이상을 위하여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1964년 법정 최후변론에서 말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만델라가 없는 내 인생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만델라는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냈다. 오늘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용기 있으며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고 추모했습니다. 만델라는 자기 신념을 위해 살다가 2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를 기다렸고, 만델라는 자기 신념을 위해 2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오바마의 추모의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이뤄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믿음을 오늘 보았습니다. 생명을 다해 일생을 다하여 그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큰 물결이 일어나 바다가 뛰놀면 베테랑 선원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지면에서 그 온유함이 가장 뛰어났던 모세도 반복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 그 마음이 격동하여 반석을 두 번 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모세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해도 그런 사실에 무릎꿇을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일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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