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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성령충만의 기도(행 4:23-31) 이정식 201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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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복잡하시다면 기도합시다. 생각이 자꾸 엇길로 간다면 기도합시다. 걱정이 많다면 기도합시다. 할레스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적들,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사실들, 작은 것들과 큰 것들, 힘든 것과 쉬운 것 등등에 관해서 보고 듣는 모든 것, 즉 우리의 일상생활을 채우고 형성하고 있는 모든 관찰과 경험들이 아직도 마음에 생생하고 실제적인 관심거리로 남아 있을 때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염려와 책임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가 있습니다. 기도란 당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며 이리하여 당신은 홀로 있을 때나 남들과 함께 있을 때, 일할 때나 쉴 때, 혹은 길을 걷고 있을 때 아니 그 어느 곳에 있든지 기회 있을 때마다 기도 이상으로 유익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냉장고 안에 콩 삶은 물을 넣어 두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보니까 냉장고 안에서 발효가 되어 있었습니다. 쉰 거지요. '아까운 건데 버려야 하나' 하다가 아까워서 마셨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는데 몸이 가뿐하고 숙취가 해소된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발효식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잘 나가던 갈비집을 그만두고 6개월을 준비해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의 지역 기업인 콩그린 콩박사  윤성순 대표의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을 불문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크게 하시거나 강하게 하실 때 볼 수 있는 고백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망한 일인데 바로 거기서 보배로운 미래가 나옵니다. 원효대사는 해골 바가지의 썩은 물을 마신건데, 마신 건 썩은 물인데, 거기서 일체유심조라는 사상을 탄생시켰습니다.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그런 일들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일하십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특권이 기도 속에 있습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행4:23). 별로 안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말을 내면 낼수록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주눅들게 만들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그 말은 비난이었고, 위협이었고, 하지 말라는 금지였고, 경고였고, 입을 다물라는 함구의 명령이었고, 나가라는 추방의 말이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며 닦아 세웠고,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며 겁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법과 정치와 종교를 모두 관장하던 사람들입니다. 어기고 위반할 때 잡아가두고 때리고 실형을 선고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안 좋은 소식을 사도들이 자기 동료들에게 다 말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위축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좀 잠잠히 때를 보자'라고 마음이 숨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믿음의 사람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 분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이신 대주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겁 주는 말을 듣고 뒤로 물러간 것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행4:29a) 모든 처지를 다 하나님께 고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바로 이 말씀을 그때 그시간에 적용했습니다. 실천했습니다. 주장했습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그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응답받았습니다.

  또한 성령충만의 기도는 말씀 충만의 기도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뜻이 가득차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일신상의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요청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닥친 이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행4:25-26) 다윗이 시편 2편에서 미리 말한 성경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시편 2편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모습 '세상의 군왕과 관리들이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한 것같이 지금 우리가 사도들이 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듣고 보니까 같은 일입니다. 똑같이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눅들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대적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말씀 속에서 똑똑히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종이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능력입니다. 응답입니다. 한마음을 기도하면서 이 사람들이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전할 때 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덤벼들었는가를 이해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과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과 대제사장의 문중이 모두 하나가 되어, 사도들을 위협했습니다. 보통 때에는 이 사람들이 서로 분당이 다르고 파당이 달라서 의견 충돌이 있던 사람입니다. 맡고 있는 직책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한 뜻으로 사도들을 대적하였습니다. 종자연이라는 기독교를 비방하는 단체를 살펴보니까 그 속은 불교 단체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서로 종교가 다른데 자기들만 진리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점잖고 고상하게 말하던 그들이 실상은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기독교를 비방했던 것입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행 4:27) 똑같은 일이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사이에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헤롯과 빌라도는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1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수가 친구가 되는 이 기적같은 일이 예수를 미워하고 그리스도인을 미워할 때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은 서로 상종치 못할 사람입니다. 서로 상종치 않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데 언제인가 하면 주의 교회를 비방하고 예수를 미워할 때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누구와 뜻이 맞을 때 생각해 보십시오. 기적같은 일이 벌어져 뜻이 맞을 때가 있는데, 하나님을 대적할 때도 뜻이 맞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뜻이 맞을 때는 하나님을 위하여 뜻이 맞습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는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중재와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우리의 기대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미학 중에 하나는 반전의 미학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대적하여 십자가에 죽이고 못박기 위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대주재 하나님은 바로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행 4:28).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예수를 못박았지만, 바로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원수를 사랑하신 뜻을 이루시고, 죄사함의 일을 이루시고, 구원의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재앙을 축복으로, 원수를 사랑으로, 저주를 소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아니, 재앙을 통해서 축복을,  원수를 통해서 사랑을, 저주를 통해서 소망을 탄생시키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여,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4:29-30) 하며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예수의 이름을 더욱 높이는 기도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 속에 우리 자신을 높이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을 높이고 있습니까? 예수를 높이는 사람은 구원을 위해 일합니다. 전도를 위해 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증거를 보여주셔서 저들이 할 말이 없도록 하옵소서 하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왔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기도하니까 더욱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담대함이 다시 새롭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일할 때 죄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복음을 위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갈 때 죄를 위한 사람들도 하나가 되어갑니다. 복음의 일이 흥왕하여 갈 때 죄의 일도 더욱 강하게 일어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 세상에 드러나 보인 것입니다. 우리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기도를 가만히 한숨으로 바꾸어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숨을 기도로 바꾸어놓습니다. 마귀에게 지면 기도로 응답받을 일을 한숨으로 주저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한숨을 기도로 응답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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