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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참된 믿음의 시작(행2:37-47) 이정식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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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993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다양성 국가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이라는 보고서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중요한 종이어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 종을 말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 팬더, 코알라, 두루미처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종도 있고, 강원도 홍천의 열목어와 같이 한 지역에 국한된 종도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덕유산국립공원의 깃대종인 금강모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금강모치가 왜 사라지는가 하고 봤더니 외래종인 무지개송어와 산천어에게 잡혀먹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덕유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외래종인 무지개송어와 산천어를 포획하기로 했고, 금강모치를 보호하는 일에 착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맑고 맑은 1급수에서만 사는 깃대종 금강모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또한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태계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 안에 있습니다. 세상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적인 가치관이 교회로 흘러들어 오기 십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패역한 세상,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상에서 따로 구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만일 교회가 세상과 뒤섞이어 혼탁해진다면 그 가운데 누군가는 지켜져야 하고 누군가는 걸러져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걸러내어 새로운 공동체로 세우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는 성도를 따로 세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 우리는 바로 이런 사람을 성도라고 한다' 자랑스럽게 추천할 만한 하나님의 깃발을 들고 가는 성도 말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부터 47절 상반절까지에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성도로 지켜져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행 2:44). 교회에서 내 것 네 것 구분하지 않고 서로 함께 사용했습니다. 볼링장에 가면 볼링 좀 친다 하는 사람들은 자기 볼링공이 따로 있습니다. 당구장에 가면 당구를 좀 친다 하는 사람들은 개인 큐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골프를 친다고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골프채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탁구를 좀 친다 하는 사람들도 자기 라켓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몸과 신체 조건에 맞는 자기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내 것 네 것이 없으면 막 쓰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서로 통용했기 때문에 막 썼다는 뉘앙스가 전혀 없습니다. '내꺼! 내꺼! 내꺼!' 하며 자기 소유에 집착되었던 마음에서 해방되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좀더 분명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행 2:45) 자기 사유재산이나 밭을 팔아서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다는 것입니다. 내 꺼 내 집이라는 집착보다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소중히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쓰다 남은 것을 교회에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닙니다. 버리기는 뭣 하고 남 주기는 싫은 그런 물건을 교회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비싼 것 새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헌신들은 정성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정성이란 일년 내내 고생스러운 일을 하고 모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교회의 필요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그 마음 속에 일어난 생각을 그냥 물리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에 나오면 될 것인데, 이 사람들은 날마다 교회를 왔습니다. 할 일도 참 없는 사람들인가요? 전도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골프에 빠진 사람은 날마다 골프장에 갈 것입니다. 부자되고 싶어 몸이 단 사람들은 날마다 부자되는 일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계신 곳에 모이는 것을 즐겨합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 지키는 것도 힘들어요' 하고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 세상 말해도 자기 할 건 다 하고 챙길 건 다 챙기잖아요.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바빠도 사랑하는 남녀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납니다. 못 만나면 전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매일 만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매일도 아닌 수요 예배나 토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버거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저는 듣습니다. '매일 만날 만큼 좋은 하나님을 나는 못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 2:47) 성도는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는 무엇을 노래하는 것인가 하면 자기 자신을 노래합니다. 자기 마음을 노래합니다. 자기 마음을 달래고 감싸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감사하며 찬송합니다. 노인정에 전도하러 가보면 날마다 거기 모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날마다 모이는 것이 좋은데 그분들이 하는 게 뭐냐 하면 동양화를 가지고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걸 하면 좋은 게 있는데 시름을 잊어버립니다. 재미도 있습니다. 친구도 있습니다. 마음을 달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소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위로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자기 마음은 소중하니까요. 하나님을 모르니 소중한 마음을 자기가 달랠 밖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위로요 자랑이요 기쁨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유형의 인류를 이 세상에 탄생시키셨습니다. 참된 믿음이 시작된 순간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성도를 구별해 내셨습니다. 수만 명이 모인 곳에서 삼천 명을 구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깃대종, 하나님의 깃발을 든 성도들을 자랑스럽게 세상에 내놓으셨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이런 영광스러운 인생으로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그 변화의 열쇠는 그들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베드로가 행한 설교였습니다. '이 말'을 들었습니다. 41절에는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하고 나옵니다. '이 말'이라고 했고 '그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도를 따라 행한 사람들은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자기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는 것밖에 모르던 패역한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꺼 내꺼 내꺼' 하고 집착하며 꼭 쥐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는 성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매일마다 자기 좋은 것만 일삼던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말씀을 배우는 기쁨을 누리며 사는 성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십시오. '그 말'을 들으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사가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회사가 어떻고 스마트폰이 어떻고 이런 잡설이 아닙니다. 모든 인생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능멸했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하나님은 예수를 모든 사람의 주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의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내꺼 내꺼 내꺼'를 섬기는 사람은 내꺼가 바로 내 주인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멸시합니다. 돈을 섬기는 사람은 돈이 그의 주인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멸시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그의 주인입니다. 세상이 끄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예수를 멸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예수를 주님이며 그리스도 구원자라고 인정하시고 높이 드셨습니다. 모든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그분에게 돌리셨습니다.

  이 말을 받은 사람은 그 마음에 찔림이 있습니다. 무감각하고 심드렁하게 듣는 사람들은 찔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시는 순간입니다. 찔림받은 사람을 성도로 구별하시고 심드렁한 사람들을 세상 사람으로 구별하십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하나님의 방법은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하나님을 세상 살아가는 방편이나 도구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을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 예배드리는 것을 아주 많이 헌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아니면 교회가 굴러가겠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이 정도 섬겼으면 목사님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이 모든 말들이 그 마음 속에서 하는 말이 무엇이겠는가 하면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못 만났습니다' 하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받은 것이지, 패역한 세대에서 버티고 살기 위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패역한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종노릇하던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고 구별하실 하나님의 깃대종, 하나님의 깃발을 들고 성도답게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또 하나 보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하나님을 배우지 않으면 어느새 자기 속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이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새 자기 뜻을 위해서 기도를 끌어댑니다. 말씀을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혼자서도 잘 산다고요?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 뻔히 다 보입니다. 세상 사랑하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이정식 목사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찬양과 존귀가 그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어느 새 사람들이 그분을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구원받은 증거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도 그분을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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